윤다옥 교사의 사춘기 성장통 보듬기
학창시절 친구 가운데 시험기간을 앞두고 감기 증상으로 늘 고생을 하던 애가 있었다. “감기 때문에 공부를 잘 못했어”라고 말하는 그 아이한테 “또 감기야?” 하며 핀잔을 주곤 했었다. 골골대면서도 성적을 유지하는 모습이 얄밉기도 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리 낯선 모습도 아니었다. 내 경우도 부담이 되는 일을 앞두고 컨디션이 나빠 애를 먹었던 적도 많고, 그럴 때마다 속으론 ‘이번 일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어’라고 나도 모르게 변명을 늘어놓곤 했다.
예전에 상담을 했던 한 아이도 시험기간이 되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병원 진료를 달고 살았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이었지만 성적은 늘 그만큼 따라오지 못해 힘들어했다. 평소에는 잘 풀어내는 문제도 시험 때만 되면 놓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풀다가 막히는 문제가 있으면 그때부터 머리가 하얘져요. 첫번째 문제에서 걸리면 완전히 망하는 거고요.” 이 아이는 답안지 마킹도 한 칸씩 밀려서 했을 거라는 생각에 다시 확인하는 데 시간을 허비했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과 상관없이 대부분의 학생들이 시험기간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물론 스트레스가 표출되는 양상에는 차이가 있다. 시험공부에 전력을 다하기도 하고, 그 반대로 아예 책 한번 들춰보지 않고 피시(PC)방이나 놀이터로 직행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노는 애들은 시험 스트레스가 없지”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사실 그 아이들도 공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걸 우리가 놓치는 것일 수도 있다. 시험공부를 해서 성적을 좀 올리고 싶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곧 책을 덮는 것일 수 있다. 그냥 있기에는 불안과 스트레스가 너무 크니까 그걸 해소하기 위해서 다른 놀이에 빠져드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적당한 불안과 긴장이 시험공부를 하는 데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구실을 한다. 그런데 불안과 긴장이 지나치게 크면 시험에 대한 두려움, 공포로 연결되기 쉽다.
실제로 많은 아이들이 시험불안에 시달린다. 학교생활의 통과의례인 시험이 주는 압박감은 엄청나다. 단순히 지필고사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가창 수행평가나 발표 때 목소리가 떨려서 나올까봐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장면은 흔히 볼 수 있다. 이럴 때 나타나는 신체 증상들 탓에 더 힘들어지기도 한다. 떨림, 가슴 두근거림, 두통이나 복통을 호소하거나 식욕부진, 과식으로 고생할 수도 있다. 시험지를 받으면 눈앞이 하얘지거나 캄캄해지기도 한다.
특히 소심하거나 완벽주의 경향을 가진 아이들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부담감을 크게 느낀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라 해도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 탓에 시험과 평가에 대한 부담을 갖게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의 지나친 기대나 강요까지 더해지면 시험불안은 증폭된다.
일반적인 걱정으로 불안을 느끼는 것이라면 긴장을 완화할 수 있는 여러 행동요법들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긴장을 이완하는 방법들, 즉 신체 각 부위에 힘을 가했다가 풀어주는 활동을 해볼 수도 있고, 명상이나 쉼호흡, 상상기법(시험이나 발표 상황을 실제 장면처럼 세세하게 머릿속에서 떠올려 경험해보는 것)을 해볼 수 있다. 때로는 시험 때 문제를 자동적으로 잘 풀 수 있도록 평소에 학습량을 늘리거나 반복 연습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습량을 무작정 늘리는 것은 부담을 가중시킬 수도 있으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특히 부모의 태도는 아이의 병을 만들기도 하고, 병을 치료할 수도 있다. “열심히 해. 최선을 다하면 돼. 시험 잘 봐.” 이런 말조차 부담이 될 수 있다. “공부하느라 애썼다. 힘들었겠다. 옷 따뜻하게 챙겨 입고.” 이런 말로 따뜻한 마음이 전해지도록 하는 게 좋다. 그리고 부모 자신이 아이에게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으려면 자녀의 학습능력을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아이가 인지적 능력은 괜찮은 것 같은데 성적이 그만큼 나오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경우, 단순히 노력을 안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원인을 찾아야 한다. 목표가 없어서, 적합한 학습방법을 못 찾아서 또는 학습 문제가 아닌 정서적 문제로 집중을 못하는 것일 수 있다.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확인해서 도움을 줘야 한다. 아이가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을 정말 많이 해서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면 더 잘하도록 기대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이미 잘하고 있는 아이다. 좋은 행동습관을 갖고 있으므로 차라리 “너무 힘들 때는 쉬어 가도 괜찮아”라고 말하며 지속적인 관심과 격려를 전하는 게 좋다.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윤다옥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