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이화여대 재학생들의 본관 점거 농성이 13일째 계속된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대 정문에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재학생과 졸업생, 학부모 등 서명자 명단이 붙어 있다. 이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이날 오후 3시를 ‘총장 사퇴’ 시한으로 통첩했으나, 최 총장은 “겸허한 자세로 학생들의 어떠한 대화 요청에도 성심껏 응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로 이를 거부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년에 (교육부 대학재정지원사업으로) 19억 정도를 받는데, 정원감축 10% 해서 줄어드는 등록금 수입이 1년에 130억원 정도 돼요. 돈에 목이 마른 상황이라 몇 억이라도 아쉽고, 또 혹시나 정부 정책 안 따라가면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D등급 받을까봐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거죠. 교육부가 대학한테는 갑 중의 갑이에요.”
지방 사립대인 ㄱ대 관계자의 말이다. 국고 지원을 받는 대학재정지원사업에 선정되고도 대학 구성원의 불만과 갈등이 높은 현상은 ㄱ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화여대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평단사업) 등 교육부가 올해 신설한 대학재정지원사업을 휩쓸어 ‘3관왕’이라는 수식어까지 얻었지만, 최근 학생들이 대학 본부를 점거해 평단사업 선정을 철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동국대 등 다른 학교에서도 대학재정지원사업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막대한 국고가 투입되는 대학재정지원사업은 왜 대학 구성원의 지지를 받기는커녕 불신과 거부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일까.
■ 대학 목매는 이유는…“한푼이 아쉽다” 2012년 이명박 정부의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국가장학금 제도가 실시된 이후 5년째 각 대학의 등록금은 사실상 ‘동결’ 상태다. 9일 대학교육연구소 자료를 보면, 전국 4년제 사립대의 등록금 수입은 2010년 10조2640억원에서 2014년 10조3354억원으로 0.7% 느는 데 그쳤다. 전체 수입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인 ‘등록금 의존율’은 2010년 62.6%에서 2014년 54.7%로 7.9%포인트 줄었다. 부족한 부분은 국고보조금으로 충당됐다. 사립대 전체 수입에서 국고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13.0%에서 2014년 19.7%로 6.7%포인트 늘었다. 지난해부터는 대학 정원 축소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등록금 수입이 더욱 줄어들고 있다.
국가장학금 예산을 빼고 사립대가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교육부가 공모 방식으로 실시하는 대학재정지원사업뿐이다. 국공립대 역시 교육부로부터 최소한의 운영경비(인건비·시설비)만을 받기 때문에 추가적인 지원을 받으려면 사립대와 마찬가지로 대학재정지원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
■ 경쟁 점점 치열…대상·액수 줄어들어 박근혜 정부 들어 대학재정지원사업의 성격은 대학간 경쟁을 더욱 부추기는 측면이 더 강해졌다.
이명박 정부 초기인 2008년 시작된 ‘대학교육역량강화사업’(역강사업)은 교원확보율, 충원율 등 일정한 정량지표만 충족하면 30억원 안팎의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아 대학이 일반 교육여건 개선에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2009년에는 ‘역강사업’ 하나로 모두 2649억원의 사업비를 대학 88곳에 지원해 1곳당 평균 30억원을 받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이런 ‘일반지원사업’은 없어지고 교육부가 구체적으로 목적을 정해주고 예산 쓰임새도 통제하는 ‘특수목적사업’ 만 남았다.
선정 대학 수도 줄어들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역강사업처럼 학부 교육 역량 강화를 위한 대학재정지원사업이 2016년에만 4개 유형(프라임·코어·평단·여성과학기술인재)이 신설됐다. 사업 개수는 늘었지만 4개 사업비를 합한 규모는 2962억원으로 2009년 역강사업(2649억원)보다 300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원 대학은 59곳으로 줄었다.
역강사업은 경쟁률이 1.9 대 1 수준이었지만, 프라임사업은 3.6 대 1, 코어사업은 2.9 대 1이었다. 2010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학부교육선도대학 육성사업’(에이스사업)의 경우 올해 3곳을 신규로 선정했는데, 69개 대학이 몰려 경쟁률이 23 대 1에 달했다.
반상진 전북대 교수(교육학)는 “불필요하게 사업 개수만 늘면서 대학 1곳당 사업비 규모는 영세해지고 특정 대학이 계속 선정되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 등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 추진은 졸속…공고 한달 만에 신청서 마감 대학인문역량 강화사업은 사업 공고(지난해 12월24일)부터 사업계획서 마감(올해 2월4일)까지 1개월 조금 넘는 시간이 주어졌다. ‘이화의 난’을 부른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의 경우, 추가 선정 공고(올해 5월11일)에서 발표(7월15일)까지 2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방대학 특성화 사업은 2014년 338개 사업단을 선정할 때만 해도 평가에만 2개월이 걸렸지만, 올해 상대평가로 하위 30%(90개 사업단)를 탈락시키는 중간평가에는 단 5일이 걸렸다. 한 지방 국립대 교수는 “사업계획서 준비 기간이 2~3개월 넘기가 힘들다”며 “실효성이 없는 줄 알면서도 멋지게 작문해서 몇 푼이라도 받아야겠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프라임사업에서 탈락한 한 사립대 교수는 “지난해 12월 사업 공고가 났지만 1~2월 방학을 지나 마감을 코앞에 둔 3월에야 논의를 했다”고 말했다.
■ 비전은 실종…이것저것 묻지마 지원 지방의 한 사립대 기획과에 근무하며 여러 대학재정지원사업의 계획서를 만드는 데 참여했다는 한 교직원은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이 한 곳당 30억원이라 4년제 대학들이 관심을 갖는 편이었는데, 처음부터 4년제 종합대학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업이라는 얘기가 있었다”며 “그래도 대학들은 돈이 마르니까 우리 대학에 꼭 맞지는 않더라도 어떻게든 욱여넣어서 한번 지원해보자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 대학 육성사업’(WCU사업)에 선정된 이화여대가 갑자기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에 선정된 것 역시 대학 정체성에 대한 구성원의 혼란을 부르면서 반발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반지원사업에 대한 대학의 요구가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예산 쓰임에 있어서 대학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대학재정지원사업을 개편하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 중”이라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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