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창의클래스' 프로젝트에 참여한 삼양초 6학년5반 아이들이 학교 공간을 바꾸기 위해 교내 구석구석을 다니며 조사에 나섰다. 하자센터 제공
‘시간, 공간, 친구, 놀이.’ 4가지 열쇳말을 중심으로 학교 안을 구석구석 뒤졌다. 시간과 공간, 함께 뛰어놀 친구가 있을 때 놀이는 자연스럽게 일어났다.
아이들은 맨 먼저 교실에 둘러앉았다. 학교에서 뭘 하며 놀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냈다. 각자 생각해낸 놀이 종류는 총 31가지였다. 술래잡기나 카드놀이 외에도 미래 예상하기, 비밀일기 쓰기, 누워서 바람맞기 등이 나왔다. 단순히 뛰어놀거나 규칙과 순서가 정해져 있는 게임 외에도 수다, 휴식 등 생활 자체를 놀이로 인식해 나온 아이디어도 많았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학생이 선택한 ‘피구, 누워 자기, 수다 떨기’를 실제 팀을 나눠 해봤다. 놀이하기 위해 적당한 장소를 직접 물색했다. 낮지만 좁아서 불편해 보이는 난간에 누워 잠을 청하거나 높아서 위험하다고 했던 곳에 직접 올라가기도 했다.
학교 공간 바꾸기 직접 나선
삼양초 6학년 5반 아이들
하자센터·건축가 등 함께
기존 공간에 대한 틀 깨고
놀이 통해 다양한 활용법 찾아
이색 공간…건축 책 등 뒤지며
같은 장소 다르게 보기도
똑같은 장소도 아이마다 활용하는 방법이 달랐다. 가령, 바닥에 보도블록이 떨어져 생겨난 작은 네모 모양의 여백이 있다. 어른들이라면 당장 그 공간이 문제라며 고쳤을 것이다. 여학생들은 이 공간을 ‘네모’라 부르며 이 네모 여백을 둘러싸고 각자 마음을 편안히 하고 둘러앉았다. 이 장소는 수다 떠는 장소로 정했다. 반면, 남학생들에게는 이 공간이 딱지치기 명당으로 꼽혔다.
서울 삼양초 6학년 5반에서 진행하는 ‘움직이는 창의클래스’ 내용이다. 하루 중 학생들이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학교. 이 공간이 아이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이는 이런 취지에서 어린이들이 ‘놀이’의 관점에서 학교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이야기를 꺼내놓으면서 직접 공간을 바꿔 나가는 참여 디자인·건축 프로젝트다.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가 8년째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전환과 연대’라는 주제 아래 이어가고 있는 다양한 시도 가운데 하나다. 삼양초는 서울시교육청 협조로 교문 디자인 바꾸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 하자센터 사업을 알고 참여하게 됐다.
'움직이는 창의클래스' 프로젝트에 참여한 삼양초 6학년5반 아이들이 학교 공간을 바꾸기 위해 교내 구석구석을 다니며 조사에 나섰다. 하자센터 제공
김현수군은 “학교를 직접 돌아다녀 보니 낙서가 많고, 우리가 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실제 공간이 바뀔 것 같지 않아서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활동하다 보니 나는 곧 졸업이라 바뀐 공간을 못 볼 수도 있지만, 후배들과 선생님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고 싶다.”
이 프로젝트는 건축가와 교육문화 분야 기획자,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석사 과정 학생들이 꾸린 ‘디자인어스’ 등이 참여해 학생들과 스무번 이상 만나며 이루어졌다. 학교 이곳저곳을 함께 탐색하며, 아이들만의 눈과 목소리로 공간을 둘러싼 문화와 놀이를 상상하고 의미를 찾게 하기 위해서다. ‘시선-상상-의미(중요성)’ 과정이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가며 기록하는 일을 했다.
하자센터와 함께 이 프로젝트 기획과 진행을 맡은 김희정씨는 “우리는 공간을 바꾼다고 하면 물리적으로 바꾸는 걸 상상하고 불편한 점, 요구사항만 떠올린다”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학교가 뭐 하는 곳이냐고 묻자 공부하는 곳, 배우는 곳이라고 말했다. 공감하면서도 아쉬웠다. 학교는 아이들이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다. ‘선생님이 주인’이라는 아이들에게 ‘그 속에 살고 있는 너희가 주인’이라는 걸 느끼게 해서 자연스레 공간에 관심을 갖고 바꾸려는 마음이 생겨나게 해주고 싶었다.”
‘옥상 따러 가자’는 아이들과 금지된 공간인 옥상에 가는 방법을 찾는 활동이었다. 학교를 한눈에 제대로 보려면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돌이나 실핀을 이용해 옥상 출입문을 강제로 열거나 기둥이나 계단을 이용해 밖에서 올라가자는 등 합법과 불법을 오가는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최진서양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찾다 교장 선생님 면담을 신청했다. 공간을 바꾸기 위한 우리 활동을 소개하는 영상과 발표 자료를 만들어 옥상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무조건 안 될 거라고 생각하기보다 구체적으로 가능한지, 어떻게 활용할지 직접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다. 지금 그들은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다.
아이들이 학교 공간을 돌아다니며 직접 그린 그림. 하자센터 제공
이처럼 프로젝트는 옥상 출입 금지, 불편한 난간, 지워야 할 낙서 등 기존에 생각했던 틀을 깨는 작업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다양한 상상을 하며 특정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고, 적극적으로 바꿔 나가는 것이다. ‘옥상은 학생에게 무조건 위험한가’, ‘높거나 혹은 낮은 난간 활용법’, ‘추억이 될 낙서를 무조건 지워야 하나’ 등은 아이들이 직접 찾아내고 고민한 것들이다.
담임 배성호 교사는 이전 학교에 근무할 때부터 학생들과 국립중앙박물관에 휴게 공간 만들기 프로젝트, 자전거 통학로나 우리 동네 안전지도 만들기 등 공간을 활용한 활동을 꾸준히 해온 바 있다. “이런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익숙한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고, 사회적 상상력이 길러진다. 사회적 상상력은 개인이 갖고 있던 기존 관점을 깨고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거나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대한 생각의 폭을 넓혀가는 것을 뜻한다.”
아이들은 실제 교문 입구 계단 넓이가 일정하지 않아서 1, 2학년 후배들이 오르는 걸 힘들어한다는 점 등도 알아냈다.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구글 사무실이나 지평선중고등학교 도서관 등 색다른 디자인으로 꾸민 공간도 찾아봤다. 관심이 생기니 건축 관련 책을 찾아서 먼저 교사에게 내밀기도 했다.
배 교사는 “자신들의 활동을 통해 학교 공간이 실제 바뀐다는 것도 자부심을 갖게 한다. 학교에서는 공간을 꾸밀 때 ‘안전’을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의 다양한 제안을 보며 교사와 학부모도 새로운 시각이 생겼다”고 했다. 지금 아이들은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하는 등 공론의 장을 마련하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아직 물리적으로 바뀐 공간은 없다. 하지만 아무도 아이들을 재촉하지 않는다. 아이들도 언제 만들 거냐고 묻지 않는다. 지내는 공간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겪어볼 뿐. 이 공간이 실제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공간을 꿈꾸는 동안 아이들은 ‘이미’ 달라졌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