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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한국 대학엔 지식은 없고 A4 10장 논문만 넘쳐”

등록 2016-11-22 19:04수정 2016-11-23 13:35

[짬] 이론사회학 공부방 운영, 정수남 교수
정수남 교수(왼쪽)와 김덕영 교수.
정수남 교수(왼쪽)와 김덕영 교수.

서울 방배동 카페골목의 허름한 상가 2층에 공부방이 있다. 10여명 정도 세미나를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보증금 300만원에 월 30만원을 낸다. 철거를 앞둔 건물이라 싸게 구했다. 2014년 9월 문을 연 이 공간의 주인공은 사회학과 대학원과 학부생들이다. 이들은 여기서 사회학 이론 공부를 한다. 대학에 비싼 학비를 내면서 이들은 왜 따로 전공 수업을 듣는 걸까? 이유가 궁금했다. 이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정수남(41)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를 지난 15일 공부방에서 만났다. 공부방 강사인 김덕영(58) 독일 카셀대 교수도 함께했다.

사회학과 대학원에 이론 수업 없어
3년전 대학 바깥서 공부모임 꾸려
김덕영 교수, 박영도 박사 등 강의

“대학들 단기실적 급급 통계 연구만
이론과 경험 선순환 연결고리 깨져
한국의 사회이론가 배출하고 싶어”

이 공부공동체의 이름은 ‘사회이론 강좌: 나비’다. 여기선 ‘이론사회학’ 강의가 이뤄진다. 사회학은 서구에서 발원한 학문이다. 사회학 이론의 토대를 쌓은 오귀스트 콩트, 에밀 뒤르켐, 막스 베버, 게오르크 지멜 등은 모두 유럽인이다. 이 방에선 이들 고전 사회학 이론가들의 사유를 심도있게 학습한다. 지금은 김 교수가 2개 강좌(지멜과 니클라스 루만), 박영도 박사가 1개 강좌(비판사회학)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수강생은 모두 20여명이며 강좌당 30만원(10주 기준)을 받는다.

공부방은 정수남 교수가 개인 돈으로 마련했다. 강좌는 공부방 입주 1년 전인 2013년 9월 첫발을 뗐다. 정 교수는 당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대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고 있었다. 학위를 마친 뒤라 여유가 있었다. “지금 한국 대학의 사회학과엔 이론사회학 교수가 없어요. 대학원에도 이론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없죠. 이론을 깊게 공부하고 싶었어요.”(정) 독일에서 베버와 지멜을 공부한 김덕영 교수가 적임자라고 생각해 섭외에 나섰다. 초기 1년 동안은 국립중앙도서관 세미나실 등을 전전했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그동안 이론사회학 관련 역서와 저서를 30권 펴냈다. 여기엔 고전사회학의 대표 저작인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베버 지음), <돈의 철학>(지멜 지음)도 포함됐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땐 거절할 생각이었어요. 요즘 세상에 누가 사회학 이론을 공부합니까. 6개월 정도 하면 그만두겠지, 그런 생각으로 시작했죠. 그런데 3년이 흘렀네요.”(김)

의문이 든다. 대학원에서 이론을 공부할 수 없다니. “사회학과 대학원에 들어가 이론을 전공하겠다고 하면 교수들이 받으려고 하지 않아요. 들어가서도 이론 대신 통계 중심의 경험적 연구로 바뀌는 경우가 많아요.”(정)

“한국의 사회학과 교수들은 모두 미국 대학에서 한국 사회에 대한 경험적 연구로 학위를 딴 분들이죠.”(김) 쉽게 말해, 이론을 전공한 교수가 없어 대학원에 프로그램이 없다는 얘기다.

그 이유는? 통계 수치를 얻을 수 있는 경험연구에 대한 대학의 선호 때문이라고 두 교수는 밝혔다. 대학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얻으려면 유수 학술지에 논문을 많이 발표해야 한다. 경험연구를 할 경우 통계 수치의 이런저런 변주를 통해 논문 양산이 가능한데, 이론연구는 실적을 내는 데 시간이 걸려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수들은 A4 10장 분량의 논문만 양산하고 있어요. 이게 지식인 사회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국가나 기업이 보기 심히 좋도록 하는 것이죠. 대학 안에서 지식 생산의 의무가 있는데, 큰 대학들도 이 기능을 다하려고 하지 않아요. 국가와 자본의 틈바구니에서 기생하려고만 하죠.”(김) “경험과 이론이 선순환하면서 나아가야 하는데, 요즘 학생들의 글을 보면 이런 연결고리가 없어요.”(정)

올해 시행에 들어간 교육부 프라임사업도 기초과학이 설 자리를 좁히고 있다. 대학의 산업맞춤형 인재 양성을 유도한다는 명목으로 인문, 사회 쪽 정원을 줄이고 있다. “내년부터 고려대 세종캠퍼스는 인문대를 없애고 글로벌 비즈니스대학으로 통합한다고 해요.”(정) “한때는 통섭이라 했고 지금은 융합이라고 하지요. 융합은 사이비입니다. 계속 이름만 바꿔 다른 게 들어올 겁니다. 건실한 기초학문이 토대가 되어야 합니다.”(김)

김 교수는 최근 사회학 거장 12명의 이론 체계를 파고든 저서 <사회의 사회학-한국적 사회학 이론을 위한 해석학적 오디세이>를 펴냈다. 사회학 이론 분야에서 왕성한 학술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대학에서 강의를 한 경험이 없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귀국해 딱 한번 교수 자리에 도전했다. 모교인 연세대였다. 실패한 뒤 더이상 시도하지 않았다. 그는 겨울철엔 독일 카셀대에서 강의하고 나머지 9개월은 한국에서 저술에 몰두한다. 정 교수의 학문적 관심은 감정이 사회적 행위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다. 그는 올해 초 공저 <감정은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펴내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공부방의 미래는? “논문을 탄탄하게 쓸 수 있는 글쓰기 공부도 하고 번역 능력을 키우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어요. 최종적으로는 여기서 한국의 사회이론가가 나오는 것이죠.”(정) “연구공동체로 가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함께 한국 사회에 대한 경험연구를 할 수 있겠죠.”(김)

일반인도 들을 수 있나? “강의 강도가 센 편이어서 대부분 중도에 그만둡니다.”(정)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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