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교육] 윤다옥 교사의 사춘기 성장통 보듬기
우리 가족은 매해 겨울에 가족여행을 다녔다. 이번에는 어쩌다가 함께 못했다. 나는 나대로 지인들과 여행을 다녀왔고, 아쉬워하던 남편과 둘째는 둘이라도 가겠다며 처음으로 부녀간 여행을 다녀왔다. 3박4일 마지막날 딸의 불평 폭탄을 실은 톡을 가득 받고 남편에게 힌트를 주기 위해 톡을 했다. 딸바보인 남편은 “사진도 잘 안 찍으려고 하고, 뭐 하자 해도 잘 안 하려고 하고. 데리고 다니기 영 피곤하네”, “뭐, 내일만 잘 데리고 다녀보지.” 이렇게 톡을 남겼다. 무슨 말인지 너무나 잘 이해가 돼서 “걘 나도 힘들더라…”라는 말밖에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사춘기 자녀와 여행을 계획하거나 여행을 할 때 부모들은 나름 기대하는 바가 있다. 아이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큰 변화를 맞고 있는 제2의 성장기이기도 하고, 부모·자녀 관계도 여느 때와 다르다 보니 생각이 많아진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새로운 안목을 갖게 되지 않을까, 학습동기가 자극받진 않을까 하는 마음도 적지 않다. 교육적 목적이 아니고서도 서로에 대한 이해나 더 친밀해진 관계 등을 바라기도 한다.
학교 아이들도 방학 때 하고 싶은 일 가운데 단연 상위에 두는 것이 가족여행, 해외여행이다. 어떤 것이든 집-학교-학원으로 이어지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고, 현재 생활과 다르게 시간을 보내고 활동하고 싶다는 말일 테다.
여기서 부모와 다른 지점이 생긴다. 여행이든 뭐든 부모들은 방학이란 시간을 맞아 학기 중 할 수 없는 활동에 덧붙여 유의미함을 넣고 싶어한다.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이것이 아이의 진로나 삶에 어떤 식으로든 보탬이 될 것이라 믿는다. 절대로 무의미하게 버리는 시간이 아니길 바란다. 그런데 아이들은 의미·무의미를 따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냥 자유롭게 맘껏 하고 싶은 걸 하거나 하기 싫은 걸 안 하고 싶은 거다.
이런 사춘기 자녀와 함께 여행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 자신이 원한 것이라도 그렇다. 일생에 또 볼까 싶은 여행지 광경과 경험들을 아이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건성건성 지나치고, 부모는 안타까워하며 하나라도 더 자녀의 주목을 끌어 새겨두고 싶어한다.
여행지나 여행 계획을 짤 때 주도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도 답답해하지 말자. 명확하게 자기의 취향을 밝히는 아이도 있지만, 다 좋다며 알아서 짜달라는 의존적인 태도를 취하는 아이도 있다. 단순히 귀찮아서이기도 하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몰라서 주저하는 거다. 자녀가 심드렁하더라도 너무 안타까워하지 말자. 그 속에서도 자신이 흥미 있어 하는 것에 대해서는 눈을 반짝이며 마음에 새겨둔다. 흘려버린 것 같아도 자기한테 의미 있는 것은 남겨둔다. 단지 그게 부모와 일치하지 않을 뿐이다.
사춘기 자녀와 많은 경험을 함께하고 싶다면 너무 큰 목표를 앞세우지 않길 바란다. 함께하는 장면에서 보이지 않게 느낀 것들이 켜켜이 쌓여 의미를 만들어낼 것이다. 한성여중 상담교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노워리 상담넷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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