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는 11월 말 고입 일정이 끝난 전환기 중3 남학생들에게 ‘성인지적 인권교육’을 실시했다. 서울시교육청 제공.
“친구가 단톡방에 ‘야동’(야한 동영상)이나 ‘야사’(야한 사진)를 올렸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강사의 질문에 교실에 있던 중3 남학생 30여명의 머리 속이 분주해졌다. 조별로 삼삼오오 모여, 평소 단체 카톡방에 ‘야동’이 올라왔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각자 생각을 말했다. 저마다 어떻게 행동할지 열띤 토론이 오가고,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카톡 대화문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는 지난해 말 서울 지역 남자 중학교 21곳의 중3 남학생 349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인지적 인권교육’ 결과보고서를 최근 펴냈다. 성인권교육 전문강사 26명이 학급별로 두 시간씩 수업을 진행한 이번 교육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로 ‘카톡 성희롱’, ‘몰카’, ‘혐오 문화’ 등을 쉽게 접하게 된 청소년기 남학생들에게 생물학적 성 이해를 넘어 성인권 감수성을 높이자는 취지라 주목받았다.
현재 초·중·고 전 학년은 교과과정과 연계해 연중 15시간의 성교육을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 생물학적 성교육에 그치기 일쑤다. 김지학 강사(한국다양성연구소)는 “일반적인 성교육과 다르다보니 아이들이 의아해하며 ‘이건 성교육이 아닌데?’라는 반응도 나왔다. 성관계나 임신, 출산 등 성 지식에 대한 질문이 나오면 답변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성 인권의 문제로 들어갔다. 학생들이 굉장히 좋아했고 ‘새롭다’는 반응이었다”고 말했다.
‘성인지적 인권교육’ 교안의 활동자료. 일상에서 일어나는 카톡 대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임. 서울시교육청 제공
학생인권교육센터는 중3 남학생의 발달단계와 이들이 접하는 사회문화적 배경을 고려해 맞춤형 강의 교안을 만들었다. ‘남자답게 살아야 한다’는 내용을 강조한 자동차 광고를 학생들이 함께 시청하고, ‘남자답지 못하다’와 같은 성별 고정관념이 남성의 삶에 미치는 부담감을 예능프로그램을 보며 토론하게 했다. ‘극혐’(극도로 혐오함), ‘패드립’(부모님에 대한 혐오 표현) 등의 혐오 문화나 ‘단톡방 성희롱’ 등이 장난이나 놀이가 아니며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다뤘다.
학생들은 강의평가에서 ‘매우 좋았다’ 42%, ‘좋았다’ 26%로 10명 중 7명꼴로 호평했다. 학생들은 “누구나 혐오문화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와 같은 의견을 적었다. 21곳 학교의 담당 교사들도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단톡방, 패드립 등의 문제를 다뤄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했다”, “성폭력, 성희롱, 성매매 예방교육이 아닌 다른 주제라 좋았다”라고 말했다.
김현수 한양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기에 건강한 젠더 의식을 갖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성인지적 인권교육이 학교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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