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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영어, 조기교육? 어학연수? 책 한 권 통째 외면 ‘술술’

등록 2017-03-08 10:06수정 2018-10-15 18:35

[양선아 기자의 베이비트리]
김민식 방송사 피디의 ‘평범한 비법’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의 저자 김민식 피디는 영어 조기교육을 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쏟아붓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비판한다.  박근정씨 제공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의 저자 김민식 피디는 영어 조기교육을 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쏟아붓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비판한다. 박근정씨 제공

지난 1월11일 발행된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는 출간 한달 반 만에 25쇄를 찍었다. 동시통역사 출신 지상파 방송사 피디인 김민식씨는 이 책에서 30년 동안 큰돈 들이지 않고 영어를 공부한 자신만의 비법을 담았다. 책을 읽어본 이들은 배낭여행도 어학연수도 갈 형편이 안 되는데, 영어 암송을 통해 얼마든지 ‘영어 울렁증’을 극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평가한다. 평소 한국의 영어교육에 대해 할 말이 많다는 그를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한국 영어교육의 문제점, 자녀 영어교육 방법 등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드라마 만드는 피디가 영어 공부에 대해 ‘왜?’라는 생각을 하실 거예요. 제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입니다. 그때 그 유명한 ‘오린지 사건’이 있었지요. 갑자기 이명박 정부 인사들이 ‘영어 발음이 중요하다’ ‘영어 몰입 교육을 하겠다’는 식으로 말하기 시작해요. 이후로 영어 사교육 광풍이 불기 시작했죠.”

“정부가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이명박 대통령 당선 뒤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한 공청회에서 영어 표기법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미국에 가서 오렌지를 달라고 했더니 못 알아들어서 오린지라고 하니 알아듣더라”고 말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게 ‘오린지 사건’이다.

“정부가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이명박 정권은 인수위 시절부터 사고를 치더니 자사고를 도입해 공교육을 엉망으로 만들었지요. 그뿐입니까? 외무 공무원을 뽑을 때 외교관 자녀들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특채 범위를 넓히기도 했지요. 저는 그런 행태를 보며 왜 이 사회가 영어를 부의 세습 수단으로 삼을까 하고 분노했지요.”

이명박 정부 때 ‘오린지 사건’ 촉발
영어 사교육 광풍 몰아쳐

돈 쏟아부어야 잘할 수 있다는
신념이 어느새 종교처럼

사교육 업체 공포 마케팅도 적중
부모들은 불안과 자책 시달려

“영어를 부의 세습 수단 삼는 데 분노
통역대학원 다니면서 불공정 느껴”

블로그에 ‘공짜 영어 스쿨’ 연재하고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도 출간

교과서가 최고의 교재
“영어 못하면…” 협박하지 말고
조금씩 즐겁게 아이와 함께

돈이 있는 집안은 어려서부터 아이를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조기유학을 보낸다. 방학마다 영어 캠프나 어학연수로 영어교육을 시킨 뒤 외국유학을 보낸다. 유창한 영어는 어느새 돈 있는 사람의 상징이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유학 알선 업체, 영어 캠프 업체, 영어 사교육 업체는 돈 벌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조기유학의 필요성에 대해 목청을 높였고, 일부 전문가들도 가세했다. 사교육 업체의 공포 마케팅은 적중했다. 어느새 영어교육에 돈을 쏟아부어야만 영어를 잘할 수 있다는 비합리적인 신념이 부모들 사이에 종교처럼 퍼져나갔다. 돈 없는 부모들의 불안감과 자책감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김씨는 이 모든 것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했다. 또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전세계가 연결된 세상에서, 갈수록 수명이 길어져 부모들의 노후 대비가 중요해진 시기에, 그와 같은 고비용 영어교육이 과연 필요한지 의문이 들었다. 그는 “통역대학원에서 영어 공부를 한 사람으로서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돈 없어 못한다는 건 비겁한 변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의 저자 김민식 피디. 박근정씨 제공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의 저자 김민식 피디. 박근정씨 제공
그는 2010년 12월 블로그에 ‘공짜 영어 스쿨’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는 어학연수를 가본 적도 없고 유학도 다녀오지 않았다. 하지만 영어 문장을 암송해 토익 최고 성적을 받았다. 6개월 정도 준비해서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에도 들어갔다. 영어를 잘해서 세계 곳곳을 두려움 없이 여행 다녔고, 영어 때문에 업무상 여러 기회를 얻기도 했다. 그는 “돈이 없어 영어 못한다는 것은 비겁한 변명”이라며 “돈 없이도 영어 공부한 내 방법을 알리고, 더는 사람들이 공포 마케팅에 속아 패배주의에 젖지 않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그는 영어 조기교육이 득보다 실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경제적 비용이 너무 크고, 모국어 사용 능력이 약해지며, 아이의 자존감마저 꺾기 때문이다. 몇억원씩 영어교육에 투자하면 취업이라도 잘되는 것일까? 김씨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온 사람이 영어학원 선생님을 하는 것을 많이 봤다. 영어는 잘하는데 한국어를 잘 못하고 한국 문화에 익숙지 않아 대기업에 입사해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자주 목격했다. 그는 “5~6년 전에 영어 조기교육 시키지 말라고 하면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조기교육의 효과가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10여년 전부터 시작된 영어 사교육 광풍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돌아볼 때가 됐고, 자신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그러한 사회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것이다.

“영어교육은 부모가 시켜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는 능동성을 발휘해야 하거든요. 저는 본격적인 영어 공부는 중학생 시절부터 시작해도 된다는 입장입니다. 오히려 어렸을 때는 영어보다 모국어 공부와 독서 습관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봐요. 앞으로는 기계가 사람이 하는 일을 대신 하잖아요. 그럴 때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 독서라고 생각하거든요.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이 영어예요. 돈 없어 영어교육 못 시켰다고 부모가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는 거죠.”

부모가 할 수 있는 역할의 최대치

그가 생각하는 저비용 고효율 영어교육법은 무엇일까? 그는 다시 영어 암송에서 해법을 찾는다. 그렇다고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영어 문장 암송을 아이에게 억지로 시키라는 것은 아니다.

“요즘 아이들 보면 어릴 때부터 각종 사교육에 시달립니다. 그 상태 그대로 두고 부모가 또 영어 문장을 외우자고 하면 아이가 싫어할 게 뻔하죠. 난데없이 영어 문장 외우자고 아이들 닦달하지 마세요. 방학 때 시간 많을 때 스트레스 안 주는 범위 안에서 조금씩 즐겁게 외우는 걸로 시작해야 동기 부여가 됩니다. 즐거워야 지속적으로 하고 싶잖아요.”

영어 암송으로 교육을 하게 한다면 영어 교재는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그는 교과서만큼 좋은 교재는 없다고 말한다. 학교라는 틀 안에서 공부를 하되, 아이가 현재 공부하고 있는 교재를 부모가 함께 외워볼 것을 권한다. 부모 스스로 영어를 즐겁게 암송하고, 독학으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단다.

“세상에 즐거운 게 얼마나 많은지 알려주는 사람이 부모지, 세상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협박하는 사람이 부모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어 못하면 대학 못 간다’ ‘영어 못하면 취직 못 한다’고 아이를 협박하는 것이 과연 아이에게 도움이 될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는 부모 자신이 외국어인 영어를 습득하면서 하루하루 성장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영어를 통해 더 넓은 세계를 보고 배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까지가 부모가 할 수 있는 역할의 최대치라고 말한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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