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경북 봉화군에 위치한 경북인터넷고에서 가족 맺기를 한 교사와 학생들이 교정에서 가족 사진을 찍고 있다.
“‘미혼모가족’이 누구지?”
“현진아, 어서 와. 반갑다.”
장현숙 교사가 쭈뼛거리며 ‘미혼모가족’ 팻말을 찾아오는 아이들과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하며 활짝 웃었다. 교직원과 학생이 가족을 맺는 순간이었다.
20일 경북 봉화군에 있는 경북인터넷고에서 ‘2017 가족 맺기’ 행사가 열렸다. 올해는 ‘공감가족’, ‘벽화가족’, ‘미혼모가족’, ‘글로벌가족’, ‘된다가족’ 등 총 13가족이 탄생했다. 간단한 다과를 나누며 자기소개를 마친 가족들은 교정 이곳저곳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동네 사진관을 운영하는 홍성후씨는 이날 가족의 첫 만남부터 카메라에 담았다. 나중에 앨범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어머니, 우리 양어머니?”
“얘들아,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이번엔 브이로 갈까?”
운동장과 교정 곳곳은 사진 촬영을 위한 자리 선점과 포즈 고민을 하는 교직원, 학생들로 시끌벅적했다. 펭귄가족은 계단에서 층층이 눕거나 앉아서 개성 넘치는 포즈를 취했다. 쪽빛가족은 ‘누구나 쉬어가라,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양손으로 나무 벤치에 앉으라는 손짓을 취하고, 공감가족은 축구 국가대표 선수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파이팅’의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자격증 함께 따는 등 특색 있는 활동 꾸려나가
경북인터넷고는 12년 전부터 학교 직원과 학생들 간 ‘가족 맺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교사는 물론 교무행정사, 행정실 직원, 영양사까지 모두 참여한다. 이렇게 맺어진 가족은 매주 금요일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모여 가족회의도 하고 자격증 준비나 취미 활동을 함께한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학습 계획도 같이 세우고 평소에는 진로 관련 활동dmf 한다.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는 ‘기똥찬가족’ 엄마 박선남 교사는 가족동아리로 바리스타반을 운영한다. 학교 지원으로 중고 커피머신도 들여놓고 학생들이 사회생활을 미리 경험할 수 있게 교내 카페도 만들었다. 올해부터는 방과후 프로그램과 연계해 아이들의 바리스타 자격증 준비도 돕고 있다.
“점심시간 30분 동안 카페를 운영하고 아이들은 일당 1000원을 받는다. 수익이 남아 명절 때 성과 장려금 2만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 모두 열심히 한다.”
카페를 운영하며 직업 훈련은 물론 창업 교육도 자연스레 이뤄진다. 아이들은 의견이 달라 갈등을 빚다가도 서로 조정해나가거나 매상이 적어도 직원들 월급을 주고 운영해야 한다는 걸 몸소 배워나갔다.
박 교사는 아이들과 마주치면 먼저 팔짱을 끼는 등 일부러 스킨십을 많이 한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너무 어색해해요. 1학년들은 더 그렇고. 하지만 카페 운영하면서 매일 부딪히니까 점점 친해지죠. 나중에는 복도에서 만나면 ‘엄마~’라고 부르면서 반갑게 다가와요.”
박 교사는 지게차 자격증을 준비하는 학생 자녀를 위해 함께 공부해 이론 시험까지 통과했다.
이무영 교감은 “특성화고 이전인 종합고 시절, 중학교 성적이 안 좋고 가정의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학생들이 많았다. 인성교육 차원에서 아이들을 보살펴 학교에 잘 다니게 하려고 교사와 학생 간 가족 맺기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자신을 무시한다며 반항하고 관심을 받으려 분노를 표출하던 아이들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교사가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고 인정해주자 마음을 열게 된 것. 서로 가까워지면서 교사는 아이의 소질도 찾아주고 아이들도 교사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가족 맺기로 아이들이 학교를 좋아하고 성적도 오르면서 전반적인 분위기나 취업률도 전보다 나아졌다. 프로그램은 한때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일부 학교 부모가 “너무 오냐오냐하는 탓에 아이들 버릇이 나빠진다”는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부작용 때문에 가족 맺기 자체를 접을 수는 없었다. 이 교감과 교사들은 논의한 뒤 인성교육에만 초점을 두던 가족 맺기를 특색 있는 동아리 활동 위주로 꾸리기 시작했다. 교사가 아이들의 진로 교육을 하면서 자연스러운 소통이 이루어졌고 가족 맺기가 다시 탄력을 받으며 문제점도 조금씩 개선됐다.
집안일, 이성 관계 등 스스럼없이 고민 털어놔
현재 한 가족당 8명에서 15명 정도로 전산 회계나 중장비 이론부터 색소폰, 네일아트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방과후 프로그램이나 동아리처럼 학생들이 하고 싶은 내용 위주로 신청을 받아 가족을 꾸린다. 관심사나 성향이 비슷하다 보니 학생들이 쉽게 가까워져 친형제자매처럼 지낸다. 지난해에는 운동장 한편에 컨테이너를 설치했다. 가족들은 이곳을 ‘경북인터넷고 펜션’이라 부르며 1박2일 캠핑을 하기도 했다.
‘쪽빛가족’인 2학년 김건호군은 원래 기계 만지는 일을 좋아해 독학으로 지게차 자격증까지 땄다. “실습으로 지게차 운전 연습을 해야 한다고 학교 아빠한테 말했다. 얼마 후 아빠가 직접 지게차를 빌려서 운동장에서 기사님한테 직접 배울 수 있었다.”
이후 관심 있는 학생들이 모여 중장비 자격증반까지 만들어졌다. 지게차나 포클레인 자격증 따는 일을 함께 준비하고 있다. 김군은 “신문을 보면 간혹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는 일도 있던데 가족이라는 이미지로 서로 다가가니 색다른 느낌이 든다. 전에는 학교를 자퇴하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저마다 꿈도 찾고 오히려 학교에 오고 싶어 한다”고 했다.
김승길군은 ‘공감가족’ 아빠와 전산 회계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작년에 아빠가 학교 컴퓨터를 전부 수리해보자고 했다. 가족동아리 아이들과 다 같이 했는데 힘들었지만 새로운 내용도 알게 되고 서로 대화하는 기회가 돼서 좋았다.”
김군은 “가족 맺기의 가장 큰 장점은 선후배들과 친해지는 것”이라며 “평소에는 다른 학년과 만날 기회가 없는데 함께 활동하며 학습적인 면에서 도움을 주고받는다. 관심 분야가 같으니 서로 찾아가 모르는 걸 물어본다”고 했다.
실제 학생들은 “금요일 가족 모임이 기다려진다. 학교 부모에게 집안 문제, 이성 관계나 진로 고민 등도 편하게 털어놓는다. 집에 계시는 부모님보다 더 많은 걸 알고 있다”고 했다. 교사들도 너무 강압적인 태도 때문에 자신의 자녀들과 관계가 힘들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학교 자녀에게 태도를 고쳐 대한다.
가정 형편이나 심리적 어려움이 있는 사정을 미리 알고 먼저 아이를 맡겠다고 나서는 교사들도 있다.
아이들과 스스럼없어 보이던 한 아빠 교사도 한때는 수업 도중 학생과 다투다 아이가 교실에서 뛰쳐나갈 정도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보수적이었던 그도 지금은 학생과 동료 교사에게 농담도 자주 건네는 등 많이 달라졌다. 무조건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자신이 먼저 다가가 친해지니 학생과 관계 맺기가 수월하다는 것을 교사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관계가 좋으니 학생들의 수업 태도도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이 교감은 “교사가 팔짱 끼고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들면 아이들은 안 받아들인다. 교사가 아이 눈높이에 맞춰 진심으로 이해하려 할 때 아이들도 교사의 권위를 인정해준다”며 “가족 맺기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의 벽을 허물고 끈끈한 정을 나누는 데 더없이 좋은 활동”이라고 했다. 글·사진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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