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고교 ㄱ교사는 학기 초 담임을 맡은 반 학생들에게 가정환경 기초 조사로 상담 서류를 작성하게 했다. 서류에는 학부모 직업을 묻는 문항도 있었다. 지난 4월 ㄱ교사는 청소 생활지도를 하던 중 학생 ㄴ(16)군에게 “너희 아버지 직업이 ○○○인데, 너 이러는 것 아니?”라고 다른 학생들 앞에서 훈계했다.
이를 전해들은 ㄴ군의 아버지 ㄷ씨는 ㄱ교사의 행위가 서울학생인권조례 14조 ‘개인정보를 보호받을 권리’에 반한다며 지난달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 민원을 제기했다. 아버지 ㄷ씨는 교사에게 “학생 인권을 침해한 행위를 사과하고 반인권적 교육을 중지하라”고 요구하고 지난달 15일 자녀를 타 학교로 전학시켰다. 교사 ㄱ씨는 “학기 초 학교 전체적으로 만든 자기소개서 형태의 서식에 학생이 아버지 직업을 기술해 학부모 직업을 알았을 뿐”이라며 “복도에서 해당 학생에게만 생활 지도 차원에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윤명화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옹호관은 “민원인 진술과 해당 교사 답변을 통해 사실관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에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 교사가 학생에게 부모 동거 여부 등 부모 신상정보를 과도하게 물었다며 학부모가 민원을 제기한 일도 있었다. 센터는 사실관계를 조사한 뒤 이를 불필요한 개인정보 수집으로 보고 해당 교사와 학교에 시정을 권고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14조를 보면, 1항 “학생은 가족 등의 개인 정보를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뿐만 아니라, 3항과 4항에 걸쳐 “학교의 장 및 교직원은 학생 개인정보를 수집·처리·관리할 경우에 적법하고 적정한 수단과 절차에 따라야 하며, 학생 개인정보를 본인의 동의 없이 공개하거나 타인에게 제공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했다.
강영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교육청소년위원회 변호사는 “학생 부모의 직업을 수집해 공개적으로 말한 행위는 개인정보보호법의 불법 개인정보 수집에 해당할 뿐 아니라 목적외 사용으로도 볼 수 있다. 학교에서 부모 직업을 묻는 것을 지금껏 관행으로 봐온 측면이 있지만 엄밀한 법 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7 학생 개인정보 업무처리 매뉴얼’을 보면, 학부모의 생활수준, 월수입, 재산, 직업, 직장, 학력 등을 개인정보로 보고 이를 수집할 때는 학부모 동의를 받도록 돼있다. 시교육청은 올 초 학교 현장에 ‘2017년 학교 개인정보 보호 추진 계획’을 배포해, 학부모 개인정보가 담긴 ‘가정 환경 조사서’를 폐기하고 학교는 개인정보 취급자(교직원)의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 및 오남용 예방교육을 실시하라고 권했다.
학생의 가정 환경을 교사가 미리 파악해 학생에게 적절한 지도를 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영식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은 “학생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적절한 지도를 위해 교사가 가정환경을 파악하는 것은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보를 여러 학생들 앞에서 공개해 학생을 쉽게 훈육하는 용도로 쓴다면 교육 목적과 다르게 사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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