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1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은 고등학생이면 많이 배운 축에 속해 사회에서 고등학생들을 꽤 어른 대접을 해줬다. 4·19 전통이 생생해 중요 시국상황이면 고등학생도 시위대열에 동참했다.” 최근 베스트셀러에 오른 대통령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문 대통령은 1970년대 초반 자신의 고교 시절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사례2 청소년 인권 단체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는 6·10민주항쟁 30주년을 맞은 10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학생 참정권 보장 집회’를 열고, “30년 지연된 청소년 참정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6·10 항쟁 때 ‘대통령에서 반장까지 직선제로’라는 구호가 나왔을 정도였지만, 오늘날 고교생들은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정치 참여를 억압 받고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1987년 노동자들이 두발자유를 외쳤듯, 2017년 학생들도 두발자유를 외친다”, “1987년 시민들이 직선제를 외쳤듯, 2017년 학생들도 참정권을 외친다”는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1960년 4·19혁명 때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의 중심에 서서 정치참여를 했던 10대 청소년들은 요즘 시국선언이나 집회, 학내 민주주의 활동 과정에서 높은 장벽에 부딪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참정권 단체 ‘청소년인권연대 추진단’은 3~4월 인터넷으로 ‘청소년 정치활동 탄압 사례 조사’를 벌여 28명의 응답자 사례가 담긴 결과 보고서를 11일 냈다. 보고서를 보면, 서울의 한 특성화고에서는 4월 ‘엘지유플러스 고객센터 현장실습생 사망사건 대책 캠페인’이 교문 앞에서 열리자 교장이 나와 “서명운동 하지 마라. 너희에게 좋을 것 없다”며 만류했다. 서울의 또 다른 고교에서는 한 재학생이 “학생회 회칙과 학교 규칙으로 ‘정치에 관여하는 행위를 하는 자’를 징계기준으로 두고 있다. 시정해 달라”고 알려왔다.
학교와 가정 등 일상에서 정치 활동을 제한받는 경우도 많았다. 서울 지역에 사는 고교생 ㄱ은 지난해 국회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학교에 야간 자율학습 불참을 알리자 “고등학생이 무슨 정치냐”며 학교가 허가하지 않았다. 또 다른 고교생 ㄴ은 지난해 학교에서 대통령 퇴진 대화를 나누자 교사가 “뉴스에서 못된 것만 배워왔다”며 때리려는 시늉을 했다고 전했다. 고교생 ㄷ은 촛불집회에 참가한 사진을 같은 반 학생들이 모인 카톡방에 올렸다가 집회 참가 사실이 알려져 벌청소를 10일 부여받았다고 했다.
집회 현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차별 경험’도 많았다. 집회에 참가한 청소년 ㄹ은 “숙제는 하고 나왔니?”, “부모님은 여기 온 것 아시니?”, “누구 따라 나왔니?” 등의 질문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다른 청소년 ㅁ은 “노래 한 번 부르라”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원치 않는 행위를 요구 받았다고 말했다. 가족한테 “집회에 참가하면 죽인다”는 폭언을 듣거나, 휴대전화를 압수당한 사례도 있었다.
공현 청소년인권운동가는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정치적 권리를 보장받는 일은 18살 선거권 보장만큼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배경내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 활동가는 “새 정부 차원에서 아동인권법, 청소년인권법을 입법해 10대의 참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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