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친구에게 “오늘 게임 같이 할래요?”라고 물었다

등록 2017-06-27 15:12수정 2017-06-27 15:25

인성교육 우수 사례
‘착하게’ ‘배려하자’ 말로만 인성교육?
‘친구와 잘 지내기’ ‘양치 잘하기’ 등
스스로 생활 돌아보며 기록해보게 해
나쁜 습관 개선하면 용돈 50원씩
빈곤국 아이들 후원하는 데 써보기도
높임말 쓰자 배려하는 문화 싹터

지난 19일 규암초 학생들이 ‘인터넷은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인성 덕목을 접목한 토론수업을 하고 있다. 최화진 기자
지난 19일 규암초 학생들이 ‘인터넷은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인성 덕목을 접목한 토론수업을 하고 있다. 최화진 기자
19일 부여 규암초 4학년 3반 국어시간. ‘인터넷은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할까’라는 주제로 토론 수업이 한창이었다. 남경이 교사는 이날 ‘의사소통’, ‘책임’, ‘협동’ 등 인성 핵심역량과 인성요소를 접목해 수업을 진행했다. 실제 학생들의 토론은 비슷한 또래들이 하는 토론과 사뭇 달랐다. 누군가 엉뚱한 이야기를 해도 비웃거나 바로 ‘디스’하지 않았다.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반대 의견이 있으면 일단 “네!”라고 공감한 뒤 “○○○님은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이야기하고 반박을 한 뒤에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라는 말을 꼭 붙였다.

남 교사는 “자기 의견과 다르다고 비난하지 않고 이름 끝에 ‘님’자를 붙여 서로 존중하는 표현을 한다. 남의 의견도 일단 경청하게 하자 발표를 꺼리던 학생도 자신의 의견을 편하게 이야기한다”고 했다.

수업을 마치기 전 수업 내용에 대한 자기평가와 친구평가를 하는 ‘알톡’(알 만한 상황에 맞게 톡톡 이야기해준다는 뜻)을 진행했다. 원유민양은 자기평가로 “모둠활동 할 때 짝 태훈이와 협력을 잘했다”고 말한 뒤 친구평가로 “2모둠에서 지안이가 발표할 때 목소리가 커서 듣기 좋았다”고 했다. 아이들은 “불법 다운로드 하지 말자는 아이디어가 참신했다”, “모둠원들의 의견 정리를 잘했다” 등 활발히 평가를 이어나갔다.

이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단순히 토론 기법이나 주제에 대한 내용만 익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고 공감하며 소통하는 과정을 자연스레 익힐 수 있다. 규암초는 교과 수업이나 비교과 활동 등 교육과정 안에 인성교육을 접목해 진행하고 있다.

제주 세화초 학생들이 인성 관련 활동 가운데 하나로 친구, 선후배들과 아침에 운동장을 함께 걷고 있다. 세화초 제공
제주 세화초 학생들이 인성 관련 활동 가운데 하나로 친구, 선후배들과 아침에 운동장을 함께 걷고 있다. 세화초 제공

우리 학교엔 ‘인성’ 주제 달력 있어요

스마트폰, 컴퓨터게임 등을 하며 알게 된 잘못된 인터넷 문화와 입시 경쟁 스트레스 등으로 아이들의 인성이 망가진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부보다 인성이 우선”이라고 말은 하지만 성적을 중요시하는 교실 분위기는 삭막하기만 하다. 학교 현장에서 인성교육을 강조하지만, 전통이나 도덕적 덕목만을 강조하는 예절교육으로는 학생들을 변화시키기가 어렵다.

규암초 학생들은 특별한 학사력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달력에는 학사 일정이 나와 있고, 뒷면에는 인성교육과 관련한 활동지가 있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덕목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생활습관 개선 및 인성덕목 실천 내용 등을 결정하는 식이다. 가령 ‘양치 잘하기’,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기’, ‘매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등 저마다 내용이 다르다. 조은서양(5학년)은 “고집이 센 편이라 책을 읽고 친구들이랑 이야기할 때 내 의견을 일방적으로 말했다. 이런 점을 고쳐야겠다고 학사력에 적은 뒤 토론할 때 중재자 역할도 해보고 내 의견이 늘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하게 됐다”고 했다.

학사력에는 ‘글로벌 나눔’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도 있다. 6년 전부터 전교생이 ‘한 학급 한 생명 살리기’라는 주제로 굿네이버스와 유니세프를 통해 빈곤국가 아동을 후원해오고 있다. 학생들은 생활습관 개선이나 봉사 등을 할 때마다 부모에게 50원을 받는다. 이 돈을 적립해 한 달 동안 1인당 1500원을 모아 한 학급이 3만원을 만들어 후원한다. 이 활동은 학부모의 동의를 얻어 진행 중이다. 현재 전교생이 빈곤아동 20명을 후원하고 있으며, 그들과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인성교육뿐 아니라 세계시민교육도 함께 진행한다. 학생들은 학사력에 후원하는 아동의 국가에 대해 알아보는 내용과 그 아이와 관련한 생각그림(마인드맵)을 그려보기도 했다. 후원 아동을 도와주기 위해 ‘생활습관을 개선하거나 인성 덕목을 실천한 과정을 부모님께 편지로 써보기’, ‘내가 굶지 않고 학교에도 다니게 돌봐주는 가족에게 고마운 마음 표현하기’ 등의 내용도 있다.

김태형군(6학년)은 “활동 전에는 내가 아는 나라가 미국·중국·일본·러시아 정도였다. 이 활동을 하면서 네팔, 케냐 등 여러 나라가 있다는 걸 알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내가 사용할 돈도 부족한데 남을 위해서 이렇게 써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다. 지금은 풍족한 나에 비해 가난하고 아픈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 그들을 배려하고 도와주고 싶다.”

제주 세화초 학생들은 인성 관련 활동으로 친구들과 물영아리 오름 탐방에 나서 숲해설가와 오름에 사는 동식물을 알아봤다. 세화초 제공
제주 세화초 학생들은 인성 관련 활동으로 친구들과 물영아리 오름 탐방에 나서 숲해설가와 오름에 사는 동식물을 알아봤다. 세화초 제공

“야, 밀지 마” 대신 “밀지 마세요”

제주 세화초는 전교생이 ‘존중의 언어’를 사용한다. 동급생이나 선후배, 교사와 학생, 학부모와 자녀 간 서로 높임말을 쓰는 것이다. 작은 농어촌 마을이라 초중고가 나란히 붙어 있어 학생들이 이른바 ‘비행을 일삼는’ 중고등학생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학교폭력도 일어났다. 3년 전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느낀 교사들이 ‘존중의 언어 쓰기’를 제안했다.

이명호 교사는 “애들이 화가 나면 잘 못 참고 특히 고학년 남학생들은 한창 싸울 나이다. 높임말을 쓰니까 욕도 안 하고 ‘누구누구 어린이, 이렇게 밀지 마세요, 이러면 안 돼요’라고 하면서 화를 누그러뜨리더라”고 했다.

한 학부모도 “학교에 처음 들어섰을 때 학생들이 ‘○○○ 어린이, 집에 가서 같이 게임하면 안 돼요?’ ‘오늘 학원 먼저 갈 거라 지금은 안 돼요. 나중에 제가 연락할게요’라고 말하는 걸 보고 낯설면서 신기했다”고 했다. 1, 2학년은 처음에는 조금 서툴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습관화돼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교사는 아이들이 존중의 언어가 몸에 밸 수 있게 가정에도 독려했다. 학기 초 취지에 공감한 학부모들은 서약서를 쓰고 집에서도 아이들과 존중의 언어를 사용하도록 한 것. 학부모 강혜경씨는 “집에서도 존중의 언어를 실천 중인데 3학년 아들의 과격한 행동이나 말투가 전보다 확실히 줄었다. 나도 아이들한테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아이들에게 하는 욕이나 꾸중이 확실히 줄어들고 화가 나도 한 템포 쉬어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학교 근처 오름을 오르는 ‘친구와 함께 오름 탐방’, 아침 등교 뒤 친구나 선후배 손을 잡고 운동장을 걷는 ‘친구와 도란도란’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 중이다. 아이들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챙기고, 힘들어하기 쉬운 또래 관계를 좀 더 돈독히 할 수 있게 돕는 활동이다. 매일 운동장을 세 바퀴 돌면 1킬로미터 정도 걷게 된다. 제주도를 일주도로 따라 한 바퀴 돌면 220킬로미터다. 일 년에 190일 정도 학교에 나오기 때문에 거의 제주도 한 바퀴를 도는 셈이다.

부지우양(6학년)은 “친구랑 걸으면 몸도 건강해지고 요즘 좋아하는 아이돌 ‘방탄소년단’이나 관심 있는 남학생 얘기, 고민도 나눌 수 있다”고 했다. 강제성은 없지만 열심히 한 학생은 연말에 활동 결과를 인증하며 상품도 준다.

이 교사는 “주변에 분노조절이 잘 안 돼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프다. 아이들이 경쟁 속에서 피폐해지지 않고 같이 어울리며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평소 쓰는 언어만 바꿔도 인식이나 태도가 달라진다. 내가 먼저 부드럽게 대하면 상대도 나쁜 말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존중의 언어를 사용하며 자신이 대우받는다고 느끼면서 다른 사람도 똑같이 존중하게 됐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lotus57@hanedui.com

인성교육 활동, 이렇게 해봐요

앞서 소개한 두 학교 사례 가운데 집이나 학교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인성교육 활동 내용을 몇 가지 꼽아봤다.

배려버튼

인성 관련 실천 항목이 적힌 카드 목걸이를 목에 걸고 직접 행동에 옮겨보는 것이다. ‘친구 칭찬해주기’, ‘존중의 언어 꼭 쓰기’ 등 아이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개선하고 싶은 점을 직접 적어도 좋고 교사와 함께 논의해 적어도 된다. 일주일이나 한 달 주기로 덕목을 바꿔가면서 활동한다. 세화초는 학년별 배려 덕목을 ‘세화 10덕목’으로 정했다. 매일 아침 등교한 뒤 한 가지 내용을 골라 실천하게 하며 아이들 스스로 이를 내면화하도록 한다. 잘했을 경우 학용품이나 과자 등 상을 줘서 동기 부여를 돕는다.

‘어기바’ 대화법

남에게 충고할 때 쏘아붙이듯 기분 나쁘게 말하지 않고 정화해서 대화하는 방법이다. ‘어! 사실대로 말하기, 기!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하며 말하기, 바! 바라는 것을 말하기’를 줄인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거나 상대에게 조언할 때 두루 쓸 수 있다. 수업시간에 모둠 활동하며 서로를 평가할 때도 어기바 대화법을 쓰면 좋다. ‘STC감정조절’도 함께 해보면 좋다. 이는 ‘일단 멈추고(Stop) 생각을 한 뒤(Think), 선택하라(Choose)’는 의미로 분노 감정을 조절하는 행동전략이다. 화가 나거나 욱하는 감정이 생겼을 때, 잠시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진 뒤 이성적으로 판단하라는 뜻으로 어른이나 아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인성액자

보통 학교 복도에는 유명 격언이 적혀 있다. 이에 반해 규암초 복도 벽면에는 학년별로 정한 인성 덕목을 아이들 나름대로 정의해서 글귀로 적은 액자가 걸려 있다. 가령, ‘공감’이란 덕목은 ‘내 친구가 엄마에게 꾸중을 들었을 때 기분을 이해하는 것’, ‘형이 태권도 승급 심사를 통과해 기뻐할 때 나도 기쁜 것’, ‘갓 태어난 강아지가 왜 낑낑거리는지 아는 것’ 등으로 정리돼 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좀 더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게 되며, 다른 친구들의 생각도 함께 나눌 수 있다. 최화진 <함께하는 교육>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