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자유한국당의 전신)의 주도로 2007년 재개정된 사립학교법에 의거해 구성된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는 옛 비리 재단에 이사 과반의 추천권을 줬다. 이로 인해 상지대 등 많은 사립학교에서 비리 주범들이 학교 운영권을 장악했다. 2012년 7월12일 오후 서울 세종로 교육과학기술부 회의실에서 사학분쟁조정위원회 회의가 열리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힘이 아니라 법으로 이겼다.’
상지대학교의 승리가 우리 사회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일은 단지 상지대에만 그치지 않고,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는 많은 비리 사학들의 구성원들에게도 해법을 제시한다.
1993년 사학 비리의 주범인 김문기가 사법 당국의 단죄에 의해 쫓겨난 뒤 모범적인 ‘민주 사학’이 됐던 상지대가 다시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법’ 때문이었다. 2007년 5월 대법원이 김문기가 제기했던 소송에서 그의 손을 들어준 것이 출발점이었다. 김문기는 앞서 2004년 상지대 임시이사들이 정이사를 선출한 것(정이사 체제 전환)은 위법이라며 소송을 걸었다. 김황식 전 총리가 대법관 시절 주심을 맡은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선임한 임시이사는… 정식이사를 선임할 권한은 없다”면서 재판관 8명(5명은 반대)의 찬성으로 김문기 편을 들었다. 이 판결에서 김황식과 박일환은 “학교법인의 정체성은… 이사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학교법인의 자기 결정의 자유는… 설립 당초의 이사를 잇는 다음 차례의 후임이사들을 자율적으로 선임할 자유를 포함한다”는 보충의견을 밝혔다. 한마디로 차기 이사를 선임할 때는 설립자 쪽의 의사가 중요하다는 논리였다. 당시 대법관이었던 양승태는 한발 더 나아가 ‘사립학교의 재산권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보충의견을 내놓았다.
보충의견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데도 이명박 정부의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는 당시 대법원 판결의 보충의견을 ‘(학교법인) 정상화 심의 원칙’으로 만들었다. 즉 “합의 또는 합의에 준하는 이해관계자(구성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과 종전이사 과반수 찬성이 있으면 그 합의대로 하고, 그렇지 않으면 종전이사로 하여금 과반의 이사를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분쟁 사학의 이사회를 종전이사(설립자)가 장악할 수 있는 근거를 아예 만들었다. 2010년 김문기의 상지대를 시작으로 다른 문제 사립학교들도 사분위의 이러한 ‘원칙’에 따라 옛 재단의 비리인사들이 속속 복귀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이뤄진 이른바 ‘사학 주인 찾아주기’였다. 하지만 그로 인해 많은 사립학교는 또다시 분규에 휘말리고, 비리가 재발했다. 사분위는 ‘사학분쟁조장위원회’라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교육부와 사분위는 법률(대법원 판례)을 방패 삼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갑갑한 상황에서 상지대의 교수협의회, 총학생회, 개방이사추천위원회 등 구성원들은 ‘2010년 사분위 정상화 조처’에 맞서 법적 투쟁에 나섰다. 그해 서울행정법원에 사분위가 이사를 선정하면서 개방이사를 선정하지 않은 점 등은 위법이라며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2011년 11월)과 서울고등법원(2012년 7월)은 각각 “교수와 학생은 재단 문제에 대해 소송할 자격이 없다”며 소송 자체를 각하했다. 대법원에 상고를 했지만, 보수정권의 연장이 예상되는 정치적 여건뿐 아니라 2007년 김문기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사들이 대부분 그대로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희망을 갖기 어려웠다.
반전은 2013년 11월 헌법재판소에서 일어났다. 헌재는 사립학교 몇몇 재단이 낸 헌법소원 심판 소송에서 “학교법인의 설립 목적의 영속성도 설립자로부터 이어지는 이사의 인적 연속성보다는 ‘위임관계의 본지(本旨)’라 할 수 있는 정관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밝혔다. 이는 ‘사학의 자율성을 보장하려면 이사들의 인적 동일성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옛 재단의 학교 운영권을 보장했던 2007년 대법원 판결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헌법소원 청구자 가운데 한명은 상지대의 김문기였다.
헌재 결정에 이어 2015년 7월에는 대법원에서 상지대 구성원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주심 권순일)은 ‘총학생회와 교수협의회 등 학교 구성원들도 재단을 상대로 소송을 할 자격이 있으며, 개방이사 선임은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서울고법으로 내려보냈다. 이후 이 판결은 파기환송심(2016년 6월)과 대법 재상고심(2016년 10월)을 거쳐 최종 확정됐다. 다른 사립학교 구성원들도 합법적으로 재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김종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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