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6일 서울 흥사단에서 열린 ‘역사학계 블랙리스트, 엄정 수사 엄중 처벌’ 기자회견 모습.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학술연구지원사업의 지원자를 선정하며 역사학자들을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찬반 여부를 나누고 이를 지원자 선정에 반영했다는 문건이 드러난 가운데, 전국 역사학회 53곳이 “블랙리스트 작성 과정을 엄정 수사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사연구회, 한국서양사학회, 한국역사연구회, 중국근현대사학회 등 전국 53곳 역사학회들은 6일 오전 서울 흥사단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반헌법, 반국민, 반학문적 역사학계 블랙리스트를 엄정 수사하고, 관련자를 엄중 처벌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 모인 20여명의 학사학자들은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역사학계 블랙리스트가 문서로 확인됐다. 박근혜 정권이 국정화를 강행하며 역사학계에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실행한 과정을 엄정하게 조사하고 규명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이 과정에 참여한 이들을 엄중하게 처벌하고 학술연구지원사업이 정권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제도적 조처를 강구하라”고 강조했다.
정태헌 한국사연구회 회장은 “‘블랙·화이트리스트’에 대한 언론 보도 이후, 연구자들은 이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주말 동안 역사학회 53곳에서 성명에 동참해 발표하게 됐다”며 “역사를 후퇴시키는 야만적 행태에서 대해 분노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학술연구지원사업에서 배제자 명단에 오른 조법종 교수는 기자회견에 참석해 “역사학계 블랙리스트 보도를 보고, 저도 당사자이기 때문에 당황했다“며 “역사학 연구에서 가치있는 사업들은 도외시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성과만을 지원함으로써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는 연구 씨앗들이 위축됐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 연구자들을 지원 대상에서 차별한 것은 연구자들의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연구를 막고 자기 검열하게 만드는 등 반학문적 범죄이며, 이를 벌하지 않는다면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교육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또한, “대표적 역사학계 화이트리스트 사업으로 알려진 한국연구재단의 ‘조선총독부 편찬 <조선사>의 번역·해제 사업’에 대한 지원도 중단하라”고 강조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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