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교육

‘처음학교로’ 생겼지만…올해도 유치원 추첨에 연차내야 했다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7-11-23 15:43수정 2022-08-19 15:23

[더(THE) 친절한 기자들]
유치원 추첨 누리집 ‘처음학교로’, 사립 불참으로 반쪽짜리
국·공립 못가는 맞벌이 부모 올해도 고군분투 해야할 판
“내 돈 내고 받아달라고 읍소…상황 이해할 수 없다”
2015년 서울시 공립유치원 신입원아 추첨일. 추첨에 뽑힌 어머니는 환하게 웃고 있고(왼쪽)
2015년 서울시 공립유치원 신입원아 추첨일. 추첨에 뽑힌 어머니는 환하게 웃고 있고(왼쪽)

매년 11월~2월이면 4~7살 아이를 둔 부모들이 치르는 전쟁이 있습니다. 바로 유치원 입학 전쟁입니다. ‘로또’라고 불리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모들은 휴가를 탈탈 털어가며 유치원에 접수를 하고 추첨장으로 뛰어다닙니다. 그 열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실까요? 2015년 12월 〈한겨레〉 기사입니다.

“유치원이 아니고 로또” “애를 낳지 말라는건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정말 힘들다, 힘들어. 유치원 들어가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서울 지역 유치원 추첨날인 2일 오후 3시께,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한 공립 단설유치원 4층 강당은 추첨 대기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대기자들 틈바구니 속에서는 “짜증 나”, “힘들어”라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이날 오후 2시 근처 병설유치원 추첨에서 탈락한 부모들이 정신없이 뛰어와 또다른 추첨을 위해 대기한 탓이다.

이날 만 3살 반 일반 원아 28명을 뽑는 이 유치원에는 접수자가 314명이었다. 손자의 유치원 입소 추첨을 위해 왔다는 전장현(69·서울 강서구)씨는 추첨장을 나가면서 “이건 말도 안 돼. 어이가 없어”라고 말하며 고개를 계속 저었다.

-2015년 12월3일 〈한겨레〉

■ 연차 내고 유치원 설명회 가야하는 부모들

말 그대로 유치원 추첨이 ‘로또’이다 보니 부모들은 일단 최대한 많이 지원을 해야합니다. 그래야 확률이 높아지니까요. 부모들은 집 주변에 10여개의 유치원 목록을 만들어 놓고 일정을 조율합니다. 맞벌이 부부의 경우엔 현장설명회와 추첨일 등에 참석하기 위해 개인 휴가를 쓰거나 할머니·할아버지 심지어 지인들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지요. 왜 굳이 휴가까지 내냐고요? 대부분 유치원의 현장설명회와 추첨일은 주말이 아닌 ‘평일’이기 때문입니다. 휴가까지 써가며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는데, 넣는 곳마다 추첨에서 떨어진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5살 아이의 유치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신아무개(서울시 성동구)씨는 “내 돈을 주고 유치원에 보내는데, 가서 제발 받아달라고 읍소해야 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부모들이 작성하는 유치원 목록.
부모들이 작성하는 유치원 목록.

정부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했습니다. 이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올해 전국적으로 온라인 유치원입학관리시스템인 ‘처음학교로’를 개설했습니다. 처음학교로는 자녀를 유치원에 보내고 싶은 보호자가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온라인으로 정보를 검색해 입학 신청을 하고, 추첨 결과까지 알려주는 인터넷 누리집입니다. 부모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한 시스템인거죠. 온라인 접수가 시작된 첫날인 22일에는 한동안 ‘처음학교로 홈페이지’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처음학교로 시스템은 매우 편리합니다. 누리집에 회원가입을 한 뒤 자녀 정보를 입력하고 유치원 검색을 통해 ‘접수’ 버튼만 누르면 신청이 완료됩니다. 지역 검색을 하면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유치원 목록이 나오고, 보육비용 등의 구체적인 정보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맞벌이 부모들은 더 이상 휴가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처음학교로’ 누리집의 유치원 원서접수 화면 갈무리.
‘처음학교로’ 누리집의 유치원 원서접수 화면 갈무리.

■ 사립유치원 불참으로 반쪽짜리 된 ‘처음학교로’

그런데 이 편리한 사이트가 반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사립유치원들의 시스템 참여율이 매우 저조하기 때문입니다. 교육부의 자료를 보면, 국공립유치원은 100% 이 시스템에 참여했지만 사립유치원의 참여율은 3%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전국의 사립유치원 4282곳 가운데 120곳(2.8%)만 참여했습니다. 서울의 경우는 더욱 심각합니다. 서울은 사립유치원(9월 기준 663곳)이 공립유치원(211곳)보다 3배 이상 많지만, 이 시스템에 참여한 유치원은 불과 32곳에 불과합니다. 사립유치원들이 이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으니 처음학교로 자체를 모르는 부모들도 많습니다. 5살 아이를 둔 전아무개(서울 용산구)씨는 “실시간 검색어를 통해 처음 존재를 알게됐다”며 “하늘의 별따기겠지만, 혹시 몰라 국공립 유치원도 신청했다”고 밝혔습니다.

국공립유치원이라 신청이 간편해 졌으니 다행 아니냐고요? 네, 그나마 다행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모들은 울상입니다. 상당수의 맞벌이 부모는 사립유치원의 정보를 더욱 필요로 합니다. 전국의 국공립 유치원 비율은 52.6%입니다. 하지만 서울은 24.1%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국공립은 경쟁률이 높을 뿐 아니라 오전 9시~9시30분 이전에는 등원이 불가능하거나 등하원 차량을 운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4살 아이를 둔 김아무개(서울 중구)씨는 “오후 2시에 유치원이 끝나면 사교육 학원이라도 보내야 하는데, 아이를 학원으로 데려다줄 사람이 없다“며 “사립이 훨씬 비싸지만 어떻게 하겠냐. 국공립은 일찌감치 포기했다”고 하소연합니다.

결국 ‘처음학교로’가 생긴 올해도 유치원에 지원하려는 부모들 다수는 유치원 정보를 검색하고, 휴가를 내 입학설명회에 참석해야 합니다. 일부 사립유치원은 입학설명회에 참석한 부모에게만 지원기회를 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유치원 누리집이 없거나 정보가 부실한 경우도 많아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힘듭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인터넷 맘카페와 육아정보 사이트에는 “ㄱ유치원 방과후는 어떻냐” “차량운행을 하냐” “교육비는 얼마나” 등 유치원 정보를 묻는 글이 끊이없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 사립유치원 “같은 무상교육 아니라면 참여생각 없다”

사립유치원들은 왜 ‘처음학교로’에 참여하지 않는 걸까요? 최대 사립유치원 연합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는 사립과 공립의 교육비 출발선이 달라 사립이 공립과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유치원 정보를 공시하는 인터넷 누리집 ‘유치원 알리미’에 공개된 2016년 학부모의 교육비 부담금을 보면, 공립유치원은 평균 1만242원~2만3516원이지만 사립유치원은 21만8935원입니다.

한유총 관계자는 “정부는 사립과 공립에 똑같이 누리과정·방과후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고 하지만, 공립은 인건비와 차량·학습준비물 비용까지 지원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반면 사립은 그 모든 비용을 부모에게 받기 때문에 교육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사립유치원 지원비를 늘려) 사립·공립이 모두 무상교육이 되지 않는한 이같은 시스템에 참여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사립유치원만 따로 지원·추첨하는 누리집을 만들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한유총 관계자는 “부모들이 느끼기에 사립유치원도 경쟁이 치열하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이는 서울 강남지역의 일부 유치원에 불과하다”며 “서울 대부분의 사립유치원은 추첨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폭염·폭우 지나도 ‘진짜 가을’은 없다…25일부터 고온다습 1.

폭염·폭우 지나도 ‘진짜 가을’은 없다…25일부터 고온다습

미국·체코 이중 청구서…원전 수출 잭팟은 없다 2.

미국·체코 이중 청구서…원전 수출 잭팟은 없다

중학생 때 조건 만남을 강요 당했다…‘이젠 성매매 여성 처벌조항 삭제를’ 3.

중학생 때 조건 만남을 강요 당했다…‘이젠 성매매 여성 처벌조항 삭제를’

‘응급실 뺑뺑이’ 현수막 올린 이진숙 “가짜뉴스에 속지 않게 하소서” 4.

‘응급실 뺑뺑이’ 현수막 올린 이진숙 “가짜뉴스에 속지 않게 하소서”

“36년 급식 봉사했는데 고발·가압류…서울시 무책임에 분노” 5.

“36년 급식 봉사했는데 고발·가압류…서울시 무책임에 분노”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