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집중이 안 되는 수업시간, 매번 우울해지는 시험 기간, 몰래 탈출을 시도하게 되는 자율학습….’
자신만의 관심 분야가 확고한 ‘덕후’ 성향이 있는 친구들일수록 많이 겪었을 공통적인 증상입니다. 이런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관심 분야 외의 것에는 소홀하거나 지루해하는 성향이 강합니다. 학교생활과 공부는 한 가지 분야가 아닌 여러 과목과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기에 관심과 거리가 먼 활동이나 공부에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죠. 제 학창 시절을 돌아봐도 그렇습니다. 매일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못했고, 시험 기간이 되어 하고 싶은 활동을 못 하게 되는 날이면 우울했습니다. 매일 밤 10시까지 이뤄지던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은 기회만 되면 빠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럴수록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잊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에게 혼나는 상황이 되거나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보며 느끼는 불안감보다는 자율학습을 탈출해서 하고 싶은 활동을 할 때마다 드는 죄책감과 찝찝함이 더 컸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생활도, 내가 좋아하는 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죠. 단순히 감정 문제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자기 분야에서 뛰어난 활동상을 보여줘도 학교생활과 공부에 대한 기본적인 성취 결과가 없다면 입시에서도 알아주지 않죠. 또한 좋아하는 활동 내용이 심화할수록 다른 분야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결국 학교생활과 공부의 전략적 동맹을 맺기로 결심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거나 학생이기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공부가 아닌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더 재밌고 정당하게 하기 위해서였죠.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매일 공부하는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을 모두 지켜야만 제가 좋아하는 활동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시험 기간에는 2주라는 시간을 정해두고 잠시 활동을 멈추기로 했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지키긴 했지만 수업시간에는 딴생각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자신한테 실망도 했지만 무엇이 문제일까, 내가 언제 집중이 잘되고 어떤 방식의 공부가 잘될까를 고민하며 최대한 효율성 있게 공부에 집중할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타이머로 공부 시간을 측정해봤고, 집중하지 않은 시간은 예외 없이 제외했습니다. 자신에게 가능한 한 엄격하고, 솔직해지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 시간을 다루는 연습을 해보면서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것 사이의 균형을 찾았습니다.
실제로 저처럼 하고 싶은 게 뚜렷한 친구들일수록 학창 시절 내신 공부와 학교생활이 다른 친구들보다 더 힘들었다고들 합니다. 이런 친구들은 대부분 단순히 학교 공부가 지루하고 싫다며 피하기보단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더 집중하기 위해 전략적인 동맹을 맺자고 생각한 경우가 많습니다. 프로그래밍이 너무 좋아 코딩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공부 먼저 끝내기로 결심한 친구, 다문화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한 교육 등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아 시험 기간 전에 미리 시험 준비를 하자고 스스로 약속하고 시험 기간에도 봉사 활동을 한 친구 등이 그런 경우죠.
학업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분야에 관심을 갖는 덕후라면 더더욱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곤 합니다. 그럴수록 공부도, 관심 분야도 다 놓치며 ‘내가 진짜 이걸 좋아하는 건 맞나…’라는 생각에 빠지기도 할 겁니다. 그럴 때는 자신과 약속을 해보세요. ‘지금은 학생 신분이니까 공부에 하루 2시간은 투자하자. 그것도 투자 못 하면 나는 그 일을 진짜 하고 싶은 게 아닐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런 다짐을 통해 어떤 활동에 대한 자신의 진정성을 확인해볼 기회도 생길 겁니다.
이세영(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 전공, 한국청소년학술대회 KSCY 조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