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시절에 나는, 통학하던 버스 안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당하곤 했다. 처음에는 ‘그런 건 아닐 거야’ 하면서 공격자를 위한 백 가지 변명을 만들어내면서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고 난 뒤, 성추행범을 위한 변명이 너무나 억지스럽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집에 돌아와 ‘이렇게 말할 걸, 저렇게 행동할 걸’ 하면서 이불을 발로 찼다. 뒤돌아 날아차서 공격자를 제압하는 상상을 많이 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발로 뻥 차서 문밖으로 쫓아내는 상상도 했다. 공격자의 신체능력이 100이고 나의 신체능력은 0이라는 무모한 가정 아래 몸짓은 위축되기 일쑤였다.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는 게 부정의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서 서서히 나의 ‘방어 시나리오’가 조금 더 현실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적절한 시나리오가 차곡차곡 쌓인 뒤 처음으로 망설이지 않고 즉각적인 방어 행동을 취할 수 있었다. ‘이불킥’으로 드러나는 부당한 자기 원망, 단순한 후회에서 ‘분석’과 ‘전략모색’을 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시나리오가 풍부해지고 다양한 색채의 방어 스펙트럼을 갖는 사고 훈련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간 크기로 방어를 시작했다. 손에 들고 있던 책의 모서리로 찍어버리는 시늉을 했더니 성추행범은 자기 엉덩이를 뒤로 쏙 뺐다. 몸을 펴고 그의 손과 눈을 번갈아가며 똑바로 쳐다보면서 버스에서 내리라고 명령을 해본 날도 있었다. 위협하는 몸짓에 ‘지금 나를 때리려고 손을 든 것이냐’라고 큰소리로 고함을 치기도 했다.
그 시절에는 성추행을 경찰에 신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시민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거나 친구들과 모의작당을 해 볼 생각도 못 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처벌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시민의식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동그라미를 하나 상상해보자. 이 동그라미는 평화롭게 살고 싶은 나다. 내가 조금 더 양보하는 게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 역시 좋은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그런데 외부에서 펀치가 날아와 동그라미가 찌그러진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안에서 밖으로 찌그러진 부분을 밀어내는 것이다. “손 치우세요.”, “이건 폭력이야!” 말로도 하고 몸짓도 한다. 법적인 처벌을 받게 하고, 공동체의 경각심을 끌어올리고, 더 신체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을 택한다.
여전히 편안한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신뢰를 바탕으로 인간관계를 맺어가려면 동그라미가 찌그러진 바로 그 방향으로 힘을 내 밀어내야 한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이 높을수록 개인이 스스로 찌그러진 부분을 밀어내기가 수월해진다.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곳곳에서 성추행과 마주하는 10대들이 스스로 동그라미를 되살리려고 할 때 항상 나를 지지하고 함께 힘을 모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문미정(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강사,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우리학교) 지은이(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