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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어린이집에 간 날 성민이는 책상과 벽 사이에 숨어 나오려고 하지 않았어요. 크고 동그란 눈을 또록또록 굴리며 두렵다는 표정만 짓고 있었지요. 두 해가 지나도록 성민이는 책 읽어주는 내게 다가오지 않고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이 나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어지럽게 놀고 싸우기 시작하자 조용히 책을 들고 다가왔어요. <선인장 호텔>(마루벌)을 들고 왔기에 한참을 읽어주었지요. 끝까지 집중해서 듣는 모습에 놀랐어요. 또래아이들보다 독서력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줄 알았는데 절대로 그런 게 아니었다 싶었어요. 다 읽어준 뒤에 성민이 표정을 살피니 만족스러운 느낌이 가득해요. 성민이 덕분에 다른 아이들도 내 둘레에 모여들고 두 시간 가까이 좋은 분위기에서 책을 읽어주었지요. 성민이가 다시 다가와 말하더군요. “이모 목 안 아파요?” 빙그레 웃으며 걱정해주는 성민이를 보며 ‘많이 자랐구나. 게다가 정 많고 씩씩한 아이였어’하는 생각을 했지요.
철이는 다른 경우였어요. 책을 많이 읽고 또래보다 앞선다 싶었는데 막상 책을 읽어주면 다 듣지를 못해요. 대신에 공룡도감이나 지식위주의 생물책을 직접 읽고 무슨 새가 몇 센티 크기라는 둥 어떤 공룡이 초식이라는 둥 이야기하지요. 아마도 직접 글씨를 읽는다거나 읽은 내용을 외워 말하는 것만 보고 어른들이 칭찬해주었나 봐요. 책은 지식뿐 아니라 이야기가 주는 지혜, 위안, 놀이, 감성 들이 골고루 담겨있는데 편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책을 사줘야 할지, 독서교육을 어떻게 해야할지 묻는 학부모들에게 나는 책과 음식이 같다고 강조하곤 했어요. 어른들은 아이에게 주는 음식에 대한 정보만큼 책에 대한 정보도 갖고 있어야 한다거나, 밥상을 무공해로 맛있게 차려놓은 뒤에는 아이들에게 이것 먹어라 저것 먹어라 참견하지 말라고 말했지요. 그런데 막상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다 보면 나도 이런저런 개입을 하고 싶어져요. 시금치에 절대 손이 안가는 아이가 걱정되듯이 지식위주로 책을 보는 아이들에게는 문학성이 강한 이야기책을 주고 싶고, 콜라나 햄버거를 즐기는 아이가 걱정되듯이 얕은 이야기만 즐기는 아이에게 깊은 감동이 있는 이야기를 주고 싶다 느끼죠. 하지만 짧은 시간에 뭔가 고쳐보려고 이런 저런 참견을 하면 아이들은 벌써 느낌으로 알고 책에서 멀어질 수 있겠다 싶어요.
이런 고민을 하던 참에 반가운 책이 나왔어요. 보리출판사가 낸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를 요모조모 살펴보니 꼭 영양 많고 맛좋은 비빔밥 같아요. 내용도 풍성하고 다양해서 시금치 먹어라, 홍당무도 먹어라 참견하지 않고 그냥 곁에 두면 골고루 잘 소화할 것 같은 책이예요. 자연에서 놀며 배울 수 있는 내용들,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꼭지들, 놀고 먹고 만들며 즐기는 꼭지들이 가득해서 어린이집에 가져가면 아이들이 이것저것 골라 읽어달라 할 것 같네요. 성민이와 철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나가기 시작한 공부방에도 보내주어야겠어요. 무공해 채소로 만든 비빔밥처럼 아이들 몸과 마음을 살찌울 것 같아요.
이성실/자연그림책 작가 6315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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