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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왜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로 서야 하나요?

등록 2018-10-30 19:57수정 2018-10-30 20:01

[함께하는 교육] 초등 교실 속 젠더 이야기
아이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체험학습 날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 반에 배정된 체험학습 장소의 인솔 선생님이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로 서세요”라고 하셨다. 익숙한 인솔 방식이었지만 “왜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로 서야 하나요?”라고 되물었다. 아마 ‘까다로운 선생이네’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잠시 멈칫하더니 “아, 남녀로 나눠야 경기를 진행하기 쉬워서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지 않았는가. 질문을 거두고 인솔 선생님을 도왔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학교 현장에서 흔히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로 아이들을 줄 세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체육 시간, 체험학습을 갈 때, 운동회, 졸업식, 입학식, 각종 행사로 줄을 세워야 하는 경우 대부분이 그렇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구분이 쉬워서’, ‘인원 파악하기 좋아서’, ‘떠들지 않아서’…. 즉, 관리의 편리함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당연하게 여기는 성별 가르기에는 출석 번호, 여자-남자 짝 앉히기, 남자팀-여자팀 대결 구도로 게임하기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성별 가르기’에 편리함보다 불편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불편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성별을 나눌수록 잠재적 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수많은 차별은 고정관념에서 생긴다. 고정관념은 성별 간 ‘좁혀지지 않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남자보단 여자가 음식을 더 잘하겠지’라는 생각을 고쳐야 할 고정관념이 아닌 성별 간 차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내가 남편 아침밥도 안 차려줘?”라는 차별적 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그런데 왜 티브이에서 ‘냉장고를 부탁받는’ 수많은 셰프들은 남자인가?)

성별로 구분해 줄 세우기에는 ‘여자’와 ‘남자’는 이질적인 집단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아이들도 계속되는 성별에 따른 줄 서기에,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을 나와 ‘다른 집단’으로 내면화할 수 있다. 아이들이 성별로 나뉠수록 아이들도 성별로 나누어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실에서 여자아이 몇 명이 그림을 자주 그린다. ‘예원이랑 지예가 그림을 좋아하네’라고 여기기보다는 ‘여자들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라고 느끼기 쉽다. 개별화된 특성이 아닌 ‘여자’라는 집단의 특성으로 귀결된다. 이것이 성별 간 차이로 일반화되면 나중에 남자아이가 그림을 그릴 때는 ‘성우야, 넌 왜 여자애처럼 그림 그리고 있냐? 나가서 놀자!’ 라는 차별 발언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여자와 남자가 어떤 차이도 없는 동질 집단이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여성성’, ‘남성성’이라는 틀에 아이들을 가두며 아이들이 ‘여자답게’, ‘남자답게’ 자라도록 기대한다. 요구한다. 고정관념이 넘치는 시대에 굳이 성별로 가르며 존재하지 않는 차이까지 조장할 필요는 없다.

무엇이 반복되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그렇다. 당연한 것으로만 여겨 한 번쯤 삐딱하게 보는 사람이 없었다면, 신분제는 사라졌을까? 호주제는 폐지될 수 있었을까? 교실과 학교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익숙하게 반복되는 것들을 예민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예원(초등젠더교육연구회 교사, <예민함을 가르칩니다>(서해문집)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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