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경희대 해직 강사 채효정씨
“시간강사 처우 개선법이 아니라 교원지위 회복법으로 불러야 합니다.”
정치학자인 채효정 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사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이른바 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안 마련을 위한 대학강사제도개선협의회에 강사 대표로 참여했다. 국회 추천 전문가, 대학 쪽 대표 등 12명이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 매주 만나 합의안 도출을 시도했다. 그 결과물이 지난해 9월 기자회견 형식으로 공개되었고 연말 국회를 통과했다. 가장 큰 변화는 강사에게 교원의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강사 계약은 1년 단위로 해 방학 때도 월급을 주도록 했다. 학기에 맞춰 4개월 계약을 하고 학교가 부당하게 내쳐도 교원 소청심사 청구조차 할 수 없었던 강사들에게 드디어 등을 비빌 법의 보호막이 생긴 것이다.
지난 8일 강원 인제군 ‘작은도서관 숲’에서 만난 채씨는 “법 통과 뒤 여러 대학이 선제적으로 강사들을 해고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지난해 협의회에서 (강사법) 시행령 토씨까지 다 합의했어요. 그런데 대학들이 최근 공개채용 원칙과 같은 시행령 합의 조항을 문제 삼고 있다는 말이 들려와요. 대학들이 도덕적 파탄 상태에 이른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듭니다.” 교육부는 오는 8월 법 시행을 앞두고 현재 티에프를 꾸려 강사법 시행령을 만들고 있다.
그는 지난해 협의회 활동을 이렇게 떠올렸다. “대학은 방학 중 임금 지급을 강력히 반대했죠. 대신 임금을 올리자고 하더군요. 방학 때도 급여를 주면 상시 근로자가 되거든요. 지금은 4개월짜리 임시직이죠. 강의를 안 주면 그만입니다. 어떤 제재도 할 수 없어요. 비교원이라는 게 강사 차별의 가장 큰 근거입니다.”
그는 개정안을 “노예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법안”이라고 평가한다. 이런 수사를 이해하려면 ‘채효정의 지난 3년’을 알 필요가 있다. 그는 2015년 크리스마스이브 때 11기째 강의를 해온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로부터 강의 박탈 통보를 받았다. 교과개편을 이유로 126개 강좌를 없애면서 강사 67명에게 ‘해고 메일’을 보낸 것이다. 노동위를 찾아 부당해고라며 구제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동위 패소 뒤 경희대 교정에서 1인 시위를 했다. 2016년 2학기였다. ‘나도 백남기다’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법에 의지할 수 없다는 생각에 엄청난 무력감이 밀려왔죠. 그때 1인 시위를 생각했어요. 학교이자 일터에서 하는 1인 시위는 너무 힘들었어요.” 겁이 났지만 1인 시위는 한 학기 내내 이어졌다. 이 기간 지지 학생들 요청으로 강의실 앞 잔디밭에서 ‘대학은 모두의 것’이란 주제로 8차례 강의도 했다. 이 강의는 지난해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빼앗긴 자들을 위한 탈환의 정치학>이란 제목의 책으로도 나왔다.
해직 뒤 자주 듣는 질문은 ‘강사에게 절대 갑인 대학을 상대로 왜 그리 치열하게 싸우느냐?’란다. “대학이 강사의 약점을 알고 함부로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희들이 대학을 나가면 뭐해, 맥도날드 알바할 거야’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대학 쪽에) 함부로 해선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의 자존심이기도 하고, 대학 현장 연구자의 자존심이기도 하죠.”
강사법이 “강사들의 배포를 키웠다”는 말도 했다. “작년엔 강사법을 아는 강사들이 거의 없었어요. 지금은 강사들이 법을 이해하고 법에 대해 반론도 펼쳐요. 제가 듣고 싶은 말을 강사들이 하고 있어요. 너무 기뻐요. (강사들의) 사고 지평이 넓어지고 마음의 맷집이 든든해졌다고 할까요.” 그는 “법이 통과한 뒤 강사들이 강사법 개정 운동의 역사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법이 강사들의 정치적 힘을 키웠다”고도 했다.
보완이 시급한 법 조항은? “14조 2의 2항이죠.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을 적용할 때는 강사를 교원으로 보지 않으며, 임용과 신분보장에 관한 일부 조항만 교원에 준용한다고 되어 있어요. 앞에서 교원이라고 한 뒤 하위 규정에서 부정하고 있으니 내적 모순이고 독소조항이죠. 개정이 필요합니다.”
인제에선 2016년부터 살고 있다.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어요. 블루베리 천 주를 심었는데 생각만큼 돈이 되지는 않아요. 탈서울 계획은 강의 박탈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지금 사는 인제 집도 해고 전에 마련했어요.” 경남 통영이 고향인 그가 탈도시와 농부의 꿈을 키운 데는 정성헌 새마을중앙운동회장의 영향도 있었단다. “정 이사장께서 농촌 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하셨죠. 그렇지 않으면 농촌에서 객(손님)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고요. 농사로는 생활비를 댈 수 없으니 절반은 농사, 절반은 교육 등 다른 방식으로 생활비를 벌어야 한다고도 하셨죠.”
강사 복귀 계획은? “최근에도 후마니타스 칼리지 학장을 만났어요. 지난해 면담에선 강의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겠다고 하시더니 이번엔 언론 인터뷰나 기고 등을 문제 삼으면서 부정적인 뜻을 보이시더군요. 제가 노동위 제소한 것까지 거론하셨어요. 민주시민 양성을 목표로 하는 대학에서 시민으로서 권리 행사를 한 것까지 문제 삼는 것을 보고 많이 씁쓸했어요.”
강사제도개선협의회 6개월 활동
‘고등교육법’ 지난 연말 국회 통과
“강사도 ‘교원’ 규정해 시민권 부여
대학들 합의해놓고 강사 내몰아” 4년전 후마니타스대 강의 박탈
1인시위·잔디밭 강의…복직투쟁중 그는 1989년 경희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박사 논문은 2014년 심사위에서 목차 등 일부 간단한 내용 수정을 조건으로 통과됐으나 제출은 하지 않았단다. “심사를 받은 논문이 맘에 들지 않아 1년 정도 더 보완하려고 했어요. 그 뒤 뜻밖의 해고로 보완이 늦춰졌죠. 지금 최종 보완 작업을 하고 있어요.” ‘고대 오이코노미아 개념을 통해 여성과 노동을 중심으로 고대 민주주의와 생명 정치론을 재구성하기.’ 그가 쓰려는 박사 논문 주제다.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는 집과 관리란 뜻인 오이코스와 노미아가 합쳐진 단어다. ‘가사 관리’ 정도의 의미다. “오이코노미아는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의 어원이기도 해요. 오이코스는 집이나 가정, 생명의 터전이란 뜻입니다. 생명이 태어나서 죽고 사는 곳이죠. 넓게 우주라는 해석도 가능해요. 그동안 정치학은 시민의 활동 공간인 폴리스만 다뤘어요. 시민권을 누리지 못한 여성과 노예는 물론 소나 돼지, 땅, 숲의 세계인 오이코스는 다루더라도 그곳의 비시민이 어떻게 시민이 될 수 있는지 또 시민적 권리를 달라고 외치는 비시민들의 목소리에만 초점을 맞췄어요. 저는 폴리스 밖에서 진짜 민주주의 정치가 이뤄졌다고 봐요. 논문에서 오이코스의 민주적, 정치적 힘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지를 펼쳤죠. 지금 시점에서 보면 현장의 정치, 들판의 정치이죠.” 서양 고대 사유의 원류에 도달하기 위해선 그리스어와 라틴어 공부는 필수다. 그 역시 그리스어와 라틴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이처럼 문턱이 높은 학문의 세계로 그를 인도한 이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란다. “석사 논문을 쓸 때가 벤처 열풍이 타오르던 시기였어요. 지식산업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고요. 그때 기술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다 기술이 존재에 씌우는 굴레를 깊게 사유한 하이데거의 기술철학을 석사 논문 주제로 정했죠. 공부해보니 하이데거는 서양 사상 전반과 대결했더군요. 그렇게 서양 고대 사상과 만났죠.” 덧붙였다. “대학에서 고대 정치사상 강사 한 명을 몰아내는 것은 그가 그동안 공부하며 쌓은 지적 자산을 다 없애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한국 대학을 두곤 “자본의 용병”이란 표현을 썼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거점이자 스스로 기업이 돼 장사를 하고 있어요.” 교수 사회도 다르지 않단다. “2000년 이후 임용된 교수들은 대부분 능력주의와 사업가 마인드로 무장하고 있어요.” 그는 대학이 제구실을 하기 위해선 “대학 안에 저항적 주체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가능할까? “씨앗은 있어요. 학생들도 있고, 저 자신도 거기 있고요. 대학과 싸워보니 이젠 겁이 나지 않아요. 지나보니 이게 뭐라고 쫄았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학계의 동료이기도 한 정규직 교수들에겐 이런 주문을 했다. “전임 교수들이 강사법 문제를 외부자 시선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강사는 대학의 부조리한 구조를 상징하는 집단입니다. 강사들의 희생을 구조화해서 (전임 교수들이) 지금의 특혜를 누리고 있잖아요. 강사법 문제를 남의 나라 얘기처럼 말해선 안 됩니다.” 그 역시 4년 전만 해도 강사들이 처한 현실에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단다. “동료 강사가 강의를 박탈당하면 개인적 불행 정도로 안이하게 생각했어요. 후배가 강의가 없어졌다고 해서 제가 하던 강의를 준 적도 있어요.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았죠.”
한국 사회의 학자와 지식인 집단을 두고는 이렇게 말했다. “지식인을 사회의 등에라고 하잖아요. 누구보다 앞서 사회의 문제를 감지하는 예민한 집단이라는 말이죠. 자기비판과 상호 비판으로 더 단단하고 날카로워져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사교 집단이 됐어요. 안전지대에서 적당한 비판만 하고 있어요.” 그리고 독일 나치 시절에 나타난 지식인 집단의 타락을 떠올렸다. “독일은 어마어마한 지적 전통이 있었지만 지식인들이 현실정치에 개입하지 않았어요. 순수학문에만 머물렀죠. 타락은 그 귀결이죠.”
그는 3년 전 해산한 시민단체 ‘학벌 없는 사회’의 창립멤버이다. 99년부터 14년 동안 활동가로 참여했고 사무처장으로 단체를 이끌기도 했다. 이 단체는 해산에 이른 과정을 설명하면서 학벌이 예전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이런 판단에 동의할 수 없단다. “양극화가 될수록 상위권 대학 출신들의 문화적 자산 가치가 더 커집니다. 단체가 현장성과 운동성을 잃으면서 그런 판단을 한 거죠.”
학자나 지식인이 팟캐스트나 방송으로 달려가는 현상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요즘 학문 지식 시장이 갈수록 연성화하고 있어요. 어려운 것은 읽으려고 하지 않아요. 읽기는 대결입니다. 그런데 요즘 지식은 팟캐스트나 방송에서 들은 풍월로 바뀌고 있어요. 왜 학자들이 팟캐스트나 알쓸신잡과 같은 방송에 나가 ‘악마의 거래’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읽지 않는 것, 곧 대결을 하지 않는 사회가 바로 우민화 사회이고 이는 통치자에게 매우 이로운 사회라는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그의 이름으로 된 책이 나온다. “4월엔 <말들의 전쟁-개념의 탈환>(가제)이란 이름의 책이 나옵니다. 지난해 대학 바깥에서 한 기획 강좌 내용을 보완해 묶었어요. 박사 논문도 책으로 내기로 했고요.” 쓰고 싶은 책은 더 있다. “대학에서 제가 개설한 강좌 ‘예술과 정치’ 강의 원고를 묶고 싶어요. ‘강사법과 지식인’이란 주제로도 쓰고 싶고요. 학벌 없는 세상 14년 활동도 정리해야죠.”
인제/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채효정 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강사는 3년 전부터 강원도 인제에서 가족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인제 생활이 뿌리 내리는 삶이어서 만족스러워요.” 강성만 선임기자
채효정씨가 지난해 펴낸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빼앗긴 자들을 위한 탈환의 정치학> 표지.
‘고등교육법’ 지난 연말 국회 통과
“강사도 ‘교원’ 규정해 시민권 부여
대학들 합의해놓고 강사 내몰아” 4년전 후마니타스대 강의 박탈
1인시위·잔디밭 강의…복직투쟁중 그는 1989년 경희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박사 논문은 2014년 심사위에서 목차 등 일부 간단한 내용 수정을 조건으로 통과됐으나 제출은 하지 않았단다. “심사를 받은 논문이 맘에 들지 않아 1년 정도 더 보완하려고 했어요. 그 뒤 뜻밖의 해고로 보완이 늦춰졌죠. 지금 최종 보완 작업을 하고 있어요.” ‘고대 오이코노미아 개념을 통해 여성과 노동을 중심으로 고대 민주주의와 생명 정치론을 재구성하기.’ 그가 쓰려는 박사 논문 주제다. 그리스어 오이코노미아는 집과 관리란 뜻인 오이코스와 노미아가 합쳐진 단어다. ‘가사 관리’ 정도의 의미다. “오이코노미아는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의 어원이기도 해요. 오이코스는 집이나 가정, 생명의 터전이란 뜻입니다. 생명이 태어나서 죽고 사는 곳이죠. 넓게 우주라는 해석도 가능해요. 그동안 정치학은 시민의 활동 공간인 폴리스만 다뤘어요. 시민권을 누리지 못한 여성과 노예는 물론 소나 돼지, 땅, 숲의 세계인 오이코스는 다루더라도 그곳의 비시민이 어떻게 시민이 될 수 있는지 또 시민적 권리를 달라고 외치는 비시민들의 목소리에만 초점을 맞췄어요. 저는 폴리스 밖에서 진짜 민주주의 정치가 이뤄졌다고 봐요. 논문에서 오이코스의 민주적, 정치적 힘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지를 펼쳤죠. 지금 시점에서 보면 현장의 정치, 들판의 정치이죠.” 서양 고대 사유의 원류에 도달하기 위해선 그리스어와 라틴어 공부는 필수다. 그 역시 그리스어와 라틴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이처럼 문턱이 높은 학문의 세계로 그를 인도한 이는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란다. “석사 논문을 쓸 때가 벤처 열풍이 타오르던 시기였어요. 지식산업에 대한 논의도 활발했고요. 그때 기술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다 기술이 존재에 씌우는 굴레를 깊게 사유한 하이데거의 기술철학을 석사 논문 주제로 정했죠. 공부해보니 하이데거는 서양 사상 전반과 대결했더군요. 그렇게 서양 고대 사상과 만났죠.” 덧붙였다. “대학에서 고대 정치사상 강사 한 명을 몰아내는 것은 그가 그동안 공부하며 쌓은 지적 자산을 다 없애는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한국 대학을 두곤 “자본의 용병”이란 표현을 썼다. “지배 이데올로기를 만드는 거점이자 스스로 기업이 돼 장사를 하고 있어요.” 교수 사회도 다르지 않단다. “2000년 이후 임용된 교수들은 대부분 능력주의와 사업가 마인드로 무장하고 있어요.” 그는 대학이 제구실을 하기 위해선 “대학 안에 저항적 주체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가능할까? “씨앗은 있어요. 학생들도 있고, 저 자신도 거기 있고요. 대학과 싸워보니 이젠 겁이 나지 않아요. 지나보니 이게 뭐라고 쫄았나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학계의 동료이기도 한 정규직 교수들에겐 이런 주문을 했다. “전임 교수들이 강사법 문제를 외부자 시선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강사는 대학의 부조리한 구조를 상징하는 집단입니다. 강사들의 희생을 구조화해서 (전임 교수들이) 지금의 특혜를 누리고 있잖아요. 강사법 문제를 남의 나라 얘기처럼 말해선 안 됩니다.” 그 역시 4년 전만 해도 강사들이 처한 현실에 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단다. “동료 강사가 강의를 박탈당하면 개인적 불행 정도로 안이하게 생각했어요. 후배가 강의가 없어졌다고 해서 제가 하던 강의를 준 적도 있어요.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았죠.”
채효정 전 경희대 강사. 강성만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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