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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해외 건설현장, 힘들고 피곤하지만 일이 즐거워요”

등록 2019-03-11 20:22수정 2019-03-11 20:29

전통 공고에서 마이스터고 변신
건설현장에 필요한 맞춤형 교육
국내외 누비며 초급관리자 역할

‘청년 실업’ 이들에겐 남의 얘기
넓은 세상 경험할 해외근무 가능
젊고 패기 있는 학생들에게 인기

정부·업계·학교 함께 손잡고
설립부터 졸업생 취업까지 협력
새내기 마이스터들, 현장을 누빈다

서울도시과학기술고 1학년 학생과 교사들이 지난해 8월 인도네시아 해외건설 현장 견학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서울도시과학기술고등학교 제공
서울도시과학기술고 1학년 학생과 교사들이 지난해 8월 인도네시아 해외건설 현장 견학을 마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서울도시과학기술고등학교 제공
“일분일초를 다투는 건설현장의 특성상 야근과 휴일 근무가 잦아 몸이 힘들고 피곤하다. 또 40명 이상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것도 부담이 크다. 하지만 고교 입학 때부터 품었던 해외 근무의 꿈을 이뤘고, 적성에도 잘 맞는 것 같아 하루하루 즐겁게 일하고 있다.”

올해 서울도시과학기술고(해외건설전기통신과)를 졸업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 이피시(EPC. 설계·조달·시공) 업체에 취업한 최용현씨는 요즘 꿈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제 겨우 한달이 지났을 뿐이지만, 국적이 제각각인 노동자들의 영어 발음에도 점점 익숙해져 소통이 원활해지고 있고, 업무 적응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이피시 수업과 3학년 후반에 다녀온 현장실습이 큰 도움이 됐다. 그는 이곳에 건설하고 있는 엘엔지(LNG) 기지가 완공된 모습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뿌듯해진다고 한다.

■ 건설업계 마이스터로 첫발

국내에서 유일한 해외건설·플랜트 분야 마이스터고인 도시과기고가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했다. 졸업생 129명 가운데 군에 입대하는 학생 등을 제외한 126명 가운데 116명이 취업을 해 92%의 취업률을 기록했다. 졸업생의 대부분인 75% 정도가 대아이앤씨·삼진공작 등 이피시 전문 업체에 취업했다. 현대건설·에스케이(SK)건설·지에스(GS)건설 등 대기업에도 10여명이 들어갔다. 특이하게도 공무원·공기업 진출자도 10명에 이른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고대했던 해외 근무자는 13명이 나왔다. 이 중에는 여학생도 2명이 포함됐는데, 베트남에서 사회의 첫발을 딛게 됐다.

지난해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졸업생의 취업 여부는 안갯속이었다. 아직도 대형 건설사들이 대졸자 위주로 채용하기 때문에 고졸 취업자의 설 땅은 좁을 수밖에 없다. 그러던 것이 쿠웨이트 현장실습을 간 아이들이 돌아올 무렵인 11월부터 물꼬가 터졌다. 실습 과정을 지켜본 기업들이 “귀국 안 시키고 계속 데리고 있으면 안 되겠느냐”고 채용 문의를 하는 등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이들의 면접을 본 기업들은 학생 수준이 생각한 것보다 뛰어나다며 애초 예정보다 인원을 늘려서 뽑는 등 상황은 계속 호전됐다. 교직원들도 기업을 찾아다니면서 취업 요청을 했고, 국토교통부와 해외건설협회가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도 큰 성과로 이어졌다.

조승호 산학협력부장 교사는 “아직도 현장실습을 할 해외진출 기업 섭외 등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그렇지만 졸업생 대부분이 건설회사 등 국내 굴지 기업에 취직하는 등 3년에 이뤄낸 성과로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 현장 요구 따른 맞춤형 교육

2013년 해외건설·플랜트 분양 마이스터고로 지정됐고 2016년 첫 신입생을 받은 도시과기고의 교육과정은 특성화고 때와는 180도 달라졌다. 학과도 해외건설과 관련된 해외플랜트공정운용, 해외시설물건설 등 4개 과에 불과하다. 학과 공부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현장에서 필요한 교과목과 실무·실습을 대폭 늘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인 과정은 이피시 과정이다. 대학에서도 설치된 곳이 드물 정도다. 이피시는 플랜트 등의 건설에서 설계부터 조달·시공은 물론 시운전까지의 전 과정을 일컫는다. 2학년 때 시작해 3학년까지 200시간 이상을 투자해 초급관리자로서 필요한 과정을 가르쳐준다. 이와 함께 이런 공정을 관리하는 프리마베라라는 프로그램의 입문 과정도 개설했다. 학생들이 이런 과정을 이수한 것을 안 기업들은 “이피시 과정을 다 배웠느냐”며 깜짝 놀란다. 대학생도 배우지 않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필요한 과정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일반 교사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해외 현장소장을 하다 퇴임한 사람을 강사로 채용하기도 하고, 현업에 있는 전문가를 불러 특강도 자주 연다.

해외 현장에 필수인 영어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정규 수업 시간에 영어를 많이 편성했고, 방과 후에는 토익을 비롯한 영어 회화 과정을 운영한다.

■ 글로벌 건설현장 찾아가 실습

플랜트는 교실에서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건설현장을 찾아가서 경험을 쌓는 실습은 필수다. 이 학교는 현대건설을 비롯한 국내 건설사들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도움을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3학년 학생 18명이 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에서 10~12주 원전과 엘엔지 기지 건설현장 실습을 다녀왔고, 8명은 국내 실습 4주를 마치고 1주간 싱가포르 지하철 현장을 다녀왔다. 국외 현장 연수 기회가 한계가 많아 일부 학생들은 국내 건설회사에서 실습을 하기도 한다. 1학년도 여름·겨울방학을 이용해 각각 35명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으로 단기 현장 견학을 다녀왔다.

학교에서는 더 많은 학생을 현장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예산 확보에 어려움이 많은데다 기업이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여건도 제한적이어서 마냥 늘리기만 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전국에서 유일한 해외건설·플랜트 마이스터고라 학생들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이 학교를 찾아 충북 충주에서 유학을 온 임가현(공정운용과) 학생은 “중학교 때부터 화공에 관심을 가지고 해외에 진출할 방법을 찾다가 입학하게 됐다”며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어려운데 마이스터고를 졸업하면 훨씬 젊은 나이에 쉽게 취업할 수 있는 게 큰 장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박경태(건설과 3) 학생은 “마이스터고를 다닌 형이 적극적으로 추천해 이 학교 입학을 결정했다”며 “해외 진출이 쉽고 나중에 필요할 경우 대학 진학도 유리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 마이스터고 6년 연속 취업률 90% 넘어

현재 전국의 마이스터고는 51곳에 이른다. 48곳은 운영 중이며 3곳은 개교를 준비하고 있다. 2008년 마이스터고 육성계획을 마련했고, 2010년에 21개교가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지자체와 정부 부처도 계획 단계부터 손을 잡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기계금속 분야가 13곳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은 전기·전자(9곳), 농수산·바이오·식품(8곳) 차례다. 2013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지난해까지 연속 90% 이상의 취업률을 유지했다.

2017년 교육부의 교육 만족도 조사에서 재학생은 100점 만점에 93점, 졸업생은 90점을 줄 정도로 높게 나왔다. 기업들의 만족도도 94점이 나왔다.

교육부 김동석 사무관은 “학교와 산업체 간 직접적인 채용협약 체결 등을 통해 교육과 취업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했다”며 “장기 졸업생 평생경력경로 모델 개발과 강화된 성과관리체계 구축을 통해 내실 있는 운영이 지속되도록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

서울도시과학기술고 3학년 학생과 교사들이 지난해 9월 쿠웨이트 알주르에서 현대건설이 진행 중인 액화천연가스(LNG) 수입기지 공사 현장에서 해상 작업을 둘러보고 있다. 서울도시과학기술고등학교 제공
서울도시과학기술고 3학년 학생과 교사들이 지난해 9월 쿠웨이트 알주르에서 현대건설이 진행 중인 액화천연가스(LNG) 수입기지 공사 현장에서 해상 작업을 둘러보고 있다. 서울도시과학기술고등학교 제공

서울도시과학기술고 3학년 학생들이 지난해 11월 국내기업 관계자들을 학교로 초청해 모의면접 실습을 하고 있다. 서울도시과학기술고등학교 제공
서울도시과학기술고 3학년 학생들이 지난해 11월 국내기업 관계자들을 학교로 초청해 모의면접 실습을 하고 있다. 서울도시과학기술고등학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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