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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뒹굴며 놀고 책도 읽고…“집처럼 편안해~”

등록 2019-03-18 19:54수정 2019-03-18 20:01

건축가와 학생, 학부모, 교사들
아이디어 짜내 공간에 녹여내
교실, 화장실 등 놀라운 변신

새로운 환경 접한 1, 2학년들
포근한 분위기 속 적응 빨라
소문 타고 신입생 수도 늘어나
놀이 공간으로 진화하는 초등 교실

서울용암초등학교 학생들이 놀이 중심 공간으로 리모델링한 교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아뜰리에 리옹 서울 제공
서울용암초등학교 학생들이 놀이 중심 공간으로 리모델링한 교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아뜰리에 리옹 서울 제공
서울 남산 남쪽 자락에 자리 잡은 서울용암초등학교를 지난 13일 찾았다. 전교생 170여명의 작은 학교 모델학교이자 ‘숲속학교’로 유명하다는 소문을 들은 터였다. 소월길과 남산 2호, 3호 터널이 접근을 어렵게 해 섬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학교는 자그마했다. 3, 4층쯤 돼 보이는 한 동짜리 건물이다. 1층인 줄 알고 건물 가운데 현관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는데 지하층이라고 적혀 있다. 산을 깎아서 만든 탓이다. 계단으로 한 층을 올라가니 복도 양쪽에 목재로 5각형의 지붕 모양을 한 교실 출입문이 죽 늘어선 것이 눈길을 끈다. 소나무를 사용한 듯 작은 옹이가 듬성듬성 박혀 있다. 교실과 복도 사이 벽에는 벽장처럼 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벽도 원색으로 칠을 한 게 1, 2학년 교실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화장실을 들어가니 문마다 아이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공룡과 꽃, 나무, 동물도 있고 자신이나 가족의 모습도 종종 나온다. 벽에도 알록달록한 색을 입혔다. 깨끗이 청소가 돼 있고 무엇보다 특유의 화장실 냄새가 나지 않는다.

아이들 그림으로 문을 장식한 서울용암초등학교 화장실 모습. 김학준 선임기자
아이들 그림으로 문을 장식한 서울용암초등학교 화장실 모습. 김학준 선임기자

복도에서 유리창을 통해 교실을 넘겨다보았다. 교실마다 열댓쯤의 아이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복도로 통하는 앞뒤 출입문은 복도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지붕이 있는 현관으로 이어졌다. 두 개의 현관 사이 벽 쪽에는 지붕을 만들고 그 아래에 넓은 계단과 책꽂이가 보인다. 교실 바닥은 가정집처럼 온돌마루로 했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리자 아이들은 삼삼오오 마룻바닥에 내려앉는다. 게임을 하거나 이야기꽃을 피운다. 어떤 아이는 게시판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몇몇은 지붕 아래의 공간으로 올라가 앉아 있기도 한다. “동화 속에 나오는 집 같아요.” “쉬는 시간에 바닥에 누울 수 있어 좋아요.” 아이들은 쉴 틈 없이 재잘거린다.

수업이 끝나고 1, 2학년 아이들이 집으로 간 뒤 이정숙 교감의 안내로 학교를 둘러보았다. 마침 충북교육청에서도 장학관 등 3명이 숲속학교를 견학하러 방문을 한 터라 일행이 됐다. 이 교감은 “학교를 어떻게 꾸몄는지 보려고 전국에서 견학을 많이 온다”며 앞장을 섰다. 그는 학교가 이렇게 변신한 것은 서울시교육청의 ‘꿈을 담은 교실 만들기’ 프로젝트 덕이라고 했다. 이 프로젝트에 선정돼 예산을 지원받아 학교를 리모델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학년이 두 학급이라 예산도 그렇게 많이 필요치 않았다.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만든 서울용암초등학교 꿈꾸는 숲속 공방 내부 모습. 김학준 선임기자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만든 서울용암초등학교 꿈꾸는 숲속 공방 내부 모습. 김학준 선임기자

리모델링 방향은 건축가와 학부모, 학생, 교사가 어떻게 학교를 바꿔나가야 할지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해서 정했다. 남산 숲속에 있는 학교라는 점을 살리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목재를 쓰기로 하고 건강에도 좋고 향도 나는 편백나무를 선택했다. 아이들이 오래 생활하는 곳이기에 안성맞춤이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공간으로 꾸미는 데 역점을 뒀고 모서리와 꼭지는 둥글게 처리해 아이들 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 교실이라기보다 놀이 공간이다. 교실 뒤편 벽에는 여러 종류의 자석 게시판을 만들어 놓았는데, 수업을 하다가 필요하면 아이들이 나와서 퍼즐을 맞추거나 그림을 붙이는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한다. 교사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곳이란다.

이 교감은 화장실을 일일이 안내하면서 갤러리 카페라고 자랑했다. 아이들의 공간이기에 그들의 그림을 직접 받아서 그려 넣었고, 아이들이 앉아서 이야기도 할 수 있도록 의자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번엔 교실을 나와 운동장으로 갔다. 건너편 모퉁이에 큼지막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꿈꾸는 숲속 공방’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송진 냄새가 짙게 퍼져 나온다. 높은 천장에는 커다란 들보와 서까래, 기둥이 드러나 보여 나무로 지은 우리 한옥을 떠올리게 한다. 벽에는 망치, 톱, 죔쇠 등 갖가지 공구가 줄지어 있다. 창가에는 아이들 작품으로 보이는 작은 상자 등 소품이 수두룩하게 진열돼 있다. 공방은 실과, 과학 등 수업과 방과 후 활동에 이용되고, 아이들이 이용하지 않는 시간에 학부모와 지역사회에 개방을 한다고 한다.

이 교감은 “학생 수가 계속 줄어 고민을 하는 상황인데, 우리 학교는 환경이 좋은 것으로 소문이 나 신입생 수가 늘어나고 있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용암초등학교의 꿈을 담은 교실은 건축가 이소진씨의 가슴과 손끝에서 나왔다. ‘아뜰리에 리옹 서울’의 소장인 그는 프랑스에서 건축사 자격을 얻었고 프랑스와 한국에서 다양한 건축 및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맡았다. 윤동주문학관을 설계했으며 2014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은 것을 비롯하여 젊은 건축가상, 석주미술상 등을 수상했다.

이소진(왼쪽 둘째) 아뜰리에 리옹 서울 소장이 2012년 8월 윤동주문학관 준공식에서 동료 건축가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재경 작가 제공
이소진(왼쪽 둘째) 아뜰리에 리옹 서울 소장이 2012년 8월 윤동주문학관 준공식에서 동료 건축가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김재경 작가 제공

그는 “자연에 둘러싸인 학교라는 점에 집중해 목재를 많이 사용해 아이들에게 친숙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도록 했다”며 “특히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를 넘어온 1, 2학년 아이들이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그중의 하나가 온돌마루다. 바닥 난방을 하고 마루를 깔아 아이들이 편안하게 바닥에서도 생활할 수 있도록 한 게 제일 중요한 점이라고 그는 말했다. 아이들이 실내화도 벗고 교실에 들어오도록 함에 따라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현관 같은 공간을 만들었고 외투도 벗어서 걸 수 있도록 옷장도 만들었다. 그동안은 교실 뒤편이 아이들 놀이 공간이었는데 복도 쪽으로 이동을 시켜 넓게 배치했다고 한다. 한 반의 학생 수가 15명 정도로 적은 편이어서 여유 공간이 많았기에 가능했다. 계단처럼 높이가 있는 공간을 만들어 책을 읽거나 앉아서 놀 수 있도록 했고, 뒷부분 게시판 위에는 편백나무를 붙여 은은한 향이 배어나도록 했다. 또 복도에도 알코브처럼 들어간 곳을 만들어 복도가 그냥 지나가는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학교 선생님, 학부모 등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작업 방향을 정하는 등 행복하게 일을 했다”며 “다만 아이들 책걸상과 천장 등 다른 부분에도 손을 댔으면 했는데 예산이 빠듯해 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남겼다.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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