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자율형사립고학교장연합회에 속한 자사고 22곳의 교장들이 25일 서울 중구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위한 운영성과 보고서 제출을 거부한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의 자율형사립고등학교(자사고)들이 올해 받아야 할 시교육청의 재지정 평가를 사실상 ‘집단 거부’하고 나섰다. 자사고들은 이번 재지정 평가가 ‘자사고 죽이기’라고 주장하지만, 평가 거부라는 벼랑 끝 전술로 평가 기준에 영향을 끼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원래 소수였던 자립형사립고는 이명박 정부 시절 ‘고교 다양화’ 정책의 일환으로 자율형사립고로 재편됐다. “교육과정에서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확대한다”는 취지로 단기간에 사립고 50여곳이 자사고로 지정을 받았다. 그러나 자사고는 교육 다양성 확보란 취지와 달리 과학고·외고 등과 함께 ‘입시 명문’으로 탈바꿈해, 고교 서열화를 심화했다. “설립 취지에 맞게 운영하는 학교만을 자사고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고, 이는 ‘진보’ 교육감들이 ‘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배경이 됐다. 문재인 정부 역시 이를 공약이자 국정과제로 내걸었다.
3월 말로 예정된 운영보고서 제출 기한이 다가오자 서울 자사고들은 서울시교육청이 재지정 평가를 ‘자사고 죽이기’ 수단으로 삼는다며 평가를 거부하고 있다. 자사고들은 5년에 한번씩 운영성과를 보고하고, 관할 교육청은 평가를 통해 자사고로 계속 지정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2014년과 2015년에 2010~11년 처음 설립된 ‘1기’ 자사고 평가가 있었고, 올해와 내년에는 ‘2기’에 대한 재지정 평가가 예정돼 있다. 자사고들은 60점에서 70점으로 오른 평가기준, 사회통합전형과 교육청 재량 배점을 늘린 평가지표의 변화를 “자사고에 불리해졌다”며 문제 삼는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은 “평가지표는 지난해 교육부가 제시한 표준안을 거의 그대로 따른 것”이라며, 평가의 전반적인 기조는 ‘자사고 폐지’가 아닌 “설립 목적에 맞는 운영을 엄정하게 살피는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2014년과 2019년의 평가지표를 비교해보면, 배점표의 큰 변화를 찾기 어렵다. 눈에 띄는 것은 ‘학교 운영’ 분야에서 ‘고교입학전형 영향평가의 충실도’(4점), ‘교육과정 운영’ 분야에서 ‘교실 수업 개선 노력 정도’(5점) 등 항목이 신설돼 학교·교육과정 운영 분야의 배점이 높아진 정도다. 자사고가 “사실상 학생 모집이 불가능해 점수 받기가 어렵다”고 주장하는 사회통합전형의 경우, 이는 자사고 지정에 따라 법적으로 부여된 사회적 책무이기도 하다. 감사 등에서 지적된 사항을 반영해 감점을 할 수 있는 등 교육청이 재량껏 평가할 수 있는 지표의 배점도 12점으로 과거보다 늘었는데, 이 역시 사회적 책무를 강화하는 차원의 조처다.
탈락 여부가 갈리는 기준점수도 60점에서 70점으로 올랐다고 자사고들은 반발한다. 그러나 애초 2014년 서울시교육청이 자사고 14곳을 처음 재지정 평가했을 때 기준점수도 70점이었다. 다만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가 서울시교육청의 ‘지정 취소’ 처분을 직권으로 취소하면서 기준점수를 60점으로 낮춘 표준안을 내려보낸 적이 있다. 당시 ‘봐주기’ 논란이 일었고,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기준점수를 70점으로 되돌렸다. 김은정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선임연구원은 “재지정 평가는 자사고가 설립 목적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따지는 절차로, ‘자사고 폐지’ 주장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자신들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만을 따지는 태도에서 자사고 문제의 단면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자사고들이 선언한 대로 마감일인 오는 29일까지 운영성과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교육 당국이 취할 조처에 관심이 쏠린다. 정의당 정책위 등은 “운영보고서를 내지 않으면 법대로 재지정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시교육청 쪽은 “최대한 설득해 평가에 참여시키는 것이 최우선 목표”라고 밝혔지만, 자사고들의 태도가 변할지는 불확실하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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