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교 9년차 서울상원초
‘등굣길이 즐겁다’는 아이들
활력 가득했던 학교 여는 날
‘학년다모임’으로 자치 구현
마곡중, ‘교복 입은 시민’ 키워내
국어 시간은 교실판 100분 토론
제주4·3사건 알리고 연대하며
자치활동 ‘만렙’ 찍는 아이들
‘등굣길이 즐겁다’는 아이들
활력 가득했던 학교 여는 날
‘학년다모임’으로 자치 구현
마곡중, ‘교복 입은 시민’ 키워내
국어 시간은 교실판 100분 토론
제주4·3사건 알리고 연대하며
자치활동 ‘만렙’ 찍는 아이들
<혁신학교 10년, 현장을 가다>
혁신의 핵심은 학생자치
<한겨레>가 혁신학교 10년을 맞이해 교육공동체 현장을 직접 찾아간다. 혁신학교는 경쟁 아닌 협력, 주입 아닌 토론, 배제 아닌 배려를 핵심으로 자기 주도적 학생을 키워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혁신학교는 2009년 도입됐으며, 문재인 정부는 혁신학교의 전국적 확대를 국정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연구하는 교사, 스스로 생각하는 학생, 문턱을 낮춘 학교 울타리는 혁신학교의 상징이다.
수업 혁신과 학교 구성원들의 수평적 의사결정이라는 민주적 학교 문화의 씨앗을 뿌린 지 10년이 됐다. 앞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전국 혁신학교의 생생한 교육현장을 돌아보며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게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본다.
혁신학교 시리즈 첫 주자로 서울시교육청의 ’서울형 혁신학교’ 대표 사례인 상원초등학교와 마곡중학교 사례를 소개한다.
■ 서울상원초 ‘학교 여는 날’
지난 10일 오전 9시 서울 노원구 서울상원초등학교를 찾았다. 기자는 초등학생들과 함께 등교한다는 마음으로 학교 정문에 들어섰다. 이 학교 이효임 교장이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말을 건네며 인사하고 있었다.
이날은 상원초의 ‘학교 여는 날’. 혁신학교 9년차를 맞이한 상원초의 학교 여는 날은 유독 활기가 넘쳤다. 부모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가는 아이들, 보호자에게 교실·운동장 등 학교 곳곳을 설명해주는 학생들의 얼굴엔 설렘과 즐거움이 가득했다.
“우리 학교는 1교시가 80분입니다. 오전 9시부터 10시20분까지 블록수업을 해요. 곧장 교과서 펴고 밑줄부터 긋는 게 아니라, ‘아침 감각 열기’(아침 열기)로 하루를 시작하지요.” 이 학교 혁신부장 김소정 교사의 말이다.
교실 바닥에 교사와 아이 모두 둥글게 모여 앉아 어제는 무엇을 했는지, 오늘 기분은 어떤지 등을 자연스레 이야기한다. 앉은 채로 콩주머니를 던져 바구니에 넣기, 함께 인사하기,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 등 아침 열기 시간을 25~30분 정도 갖는다. 손과 머리의 감각을 깨우는 이 워밍업 시간을 통해 어느새 아이들 얼굴에는 개구쟁이 같은 웃음이 피어올랐다. 준비물 안 챙긴 사람, 교과서 안 가져온 사람, 숙제 안 해온 아이를 골라낸 뒤 꾸지람부터 하던 예전의 교실 분위기가 아니다.
■ 스마트폰 없어도 ‘할 것’ 많아요
“얼음땡, 술래잡기, 사방치기 하면서 놀아요. 요즘 유행하는 놀이는 ‘좀비탄’이고요.”
아이들 입에서 기자가 ‘국민학교’ 다닐 때 했던 익숙한 놀이 이름이 나와 반가웠다. 아이들은 전래 놀이 시간을 통해 배웠다고 했다. 지역사회(서울 노원구)와 학교가 협력해 마을 강사를 초빙한 뒤 아이들에게 놀이를 가르쳐준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지역사회와 교육공동체가 꾸준히 소통하고 협력해온 결과다.
10시20분부터 30분간의 ‘중간 놀이’ 시간이 되자 아이들은 운동장에 나가기도 하고 교실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 교실 곳곳에서 체스를 두거나 공기놀이를 하고, 숨바꼭질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중간 놀이 시간에 아무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박미숙 교무부장은 “학교와 아이들, 보호자 모두 동의해 전 학년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솔직히 아이들 스스로 ‘놀고 공부하는 법’을 잘 알고 있어 휴대폰을 할 시간도, 필요도 없다”고 설명했다. “놀이 시간에 몸과 마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본 아이가 고학년이 되어서도 학습에 집중을 잘하더군요. ‘노는 시간=버리는 시간’이 아니라는 걸 우리 학교 보호자와 교사, 아이들 모두 알고 있습니다.”
■ 초등학생 자치의 힘
서울상원초의 저력은 학생자치에서 나온다. 김소정 혁신부장은 “학생회가 아닌 ‘학년 다모임’을 운영하고 있다”며 “졸업여행, 학교 축제, 급식?배식 당번 등 모든 것을 아이들 스스로 토론한 뒤 결정한다”고 전했다.
한달에 한번 꼭 가는 체험활동 등 학사 일정에 따라 아이들끼리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자발적으로 회의한다. 아이들이 학교의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강당에 모여 의견을 낸 뒤 생활협약도 결정한다.
이런 자치활동 과정에서 자기 의견이 다른 친구보다 적게 반영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 아이들은 타인의 생각을 수용하는 법, 내 의견에 살을 붙여 더 좋은 의견 내는 법을 배워간다. 아이들에게 자치활동을 맡기면 엉망진창이 될 거라는 편견은, 준비된 학습자인 아이들을 믿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공부하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교사의 수업권이 확실하게 보장된 혁신학교인 만큼 연구하는 교사들이 많다. 아이들에게 효과적인 교육법을 고민하고, 교육과정 역시 계절과 절기에 맞게 재구성해 가르친다.
이효임 교장은 “공교육 과정에서 충분히 익혀야 할 삶의 기술은 결국 문제 해결 능력이다. 이번에 누가 1등을 했고 꼴등을 했는지가 아니라, 학교에서 아이 스스로 무엇을 배워가고 있는지 아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 마곡중, 토론문화 뿌리내린 교육공동체
“생명복제를 어느 선까지 인정해야 할까? 생명윤리학자의 의견과 관련 영화를 만든 감독도 섭외하면 좋지 않을까?”
지난 11일 오후 2시 서울 마곡중학교 3학년 5반 교실에서는 토론 수업이 한창이었다. 32년차 베테랑 교사 전종옥 혁신부장이 수업 첫머리에 오늘 배울 내용을 브리핑한 뒤 활동지를 나눠줬다. 전 교사는 국어 ‘세상을 바꾸는 힘’ 단원을 교실판 100분 토론의 현장으로 재구성했다.
소설 속 화자의 생각에 밑줄 치고 시의 주제를 ‘달달’ 외우는 수업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익숙한 듯 6~7명의 모둠으로 둘러앉아 각자 조사해 온 자료를 발제했다. 교과서 속 국어가 아이들 눈과 입, 귀로 구현되는 순간이었다. 이 수업의 핵심인 모의패널 토론을 위해 아이들 스스로 역할에 맞는 자료를 수집 정리해 적절한 발언 대본을 작성한 뒤 실제 토론에 참가해보는 방식이다.
모둠별로 주제도 다양했다. 미세먼지, 블록체인, 통일 등 최근 시사이슈 중에서 골랐다. 생명복제와 윤리를 다룬 모둠에서는 박규원 학생이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관계자를 맡았고, 김유진 학생은 인간 복제를 다룬 영화 <아일랜드>의 감독 마이클 베이 역을 맡았다.
■ 600명 중 300명이 학생회 구성원
국어 시간에 입을 굳게 다문 학생 한 명 없이, 활발한 토론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마곡중의 학생 자치활동 덕분이다. 전교생 600여명 가운데 300명이 학생회 구성원으로 ‘열일’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학교 학생회가 회장 중심의 중앙집중형 구조인 데 반해, 마곡중 학생회는 ‘지방자치’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
총무부장을 맡고 있는 박규원 학생은 “우리 학교만의 화폐인 ‘바티’ 제도를 운영한다. 학생회 회계를 비롯해 예산 운영 총괄, 부서 및 사업별 예산 타당성 검토 등을 직접 하며 풀뿌리 민주주의를 배우고 있다”고 전했다.
전교생의 절반 이상이 학생회 활동을 할 수 있는 데에는 퍼실리테이션(회의 진행) 교육이 큰 역할을 한다. 전종옥 혁신부장은 “혁신학교로서 민주시민교육에 방점 찍고 교과과정을 배우고 있다”며 “100여명의 학생들이 큰 강당에 모여 원탁토론을 할 때 흐트러짐 없는 진행 모습을 보인다”고 했다. 학생뿐 아니라 교사들도 공부한다. 매주 월요일 교사들은 민주시민교육 동아리에 참여한다. 교원 학습 공동체를 꾸려가는 것이다. 학생들보다 더 바쁘다. 아이들을 성장시키기 위해 교사가 먼저 발걸음을 떼는 방식이다.
■ “선생님, 이거 배우고 싶어요”
아이들이 학교 활동에 직접 참여하고 학사 일정을 꿰뚫고 있다 보니 스스로 공부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특히 4월에는 제주 4·3사건, 4?11 임시정부 수립일, 4·16 세월호 추념식, 4?19혁명 등 인권?평화?자유 주간을 지정해 아이들이 직접 민주시민교육 부스를 운영하고, 손편지를 써 제주 4·3 관련 단체에 보내 연대 의사를 전하기도 한다.
이 학교 학생자치부장 김구영 교사는 “아이들이 먼저 찾아와 ‘선생님, 제주4·3사건 주간에는 국어와 미술 교과에서 이런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한다”며 “동백꽃 비누를 만들어 수익을 기부하거나 등굣길 담장에 커다란 미술 작품을 만들어 교과 활동을 이어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교육과정을 촘촘하게 이해하고 있으니 가능한 겁니다. 스스로 탐구하고 학습하는 훈련이 혁신중학교 과정 3년 동안 이뤄지는 거죠.”
글·사진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
지난 10일 오전 ’서울형 혁신학교’인 서울상원초등학교가 ’학교 여는 날’을 진행했다. 일반학교의 공개수업과는 달리 ’학교 여는 날’은 보호자들이 아이의 수업뿐 아니라 생활 전반을 가까이에서 톺아볼 수 있다. 김지윤 기자
지난 10일 1교시 블록수업을 마친 뒤 30분 동안의 ’중간 놀이’ 시간에 자유롭게 놀이하는 서울상원초등학교 아이들. 김지윤 기자
혁신학교 9년차를 맞이한 서울상원초등학교. 이효임 교장은 “공교육 과정에서 충분히 익혀야 할 삶의 기술은 자기 주도적 문제 해결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윤 기자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곡중학교 3학년 5반 교실에서는 토론수업이 한창이었다. 32년차 베테랑 교사인 전종옥 혁신부장이 모둠별 수업을 지도하고 있다. 김지윤 기자
지난 11일 오후 서울 마곡중학교 3학년 5반 교실에서는 국어과 ’세상을 바꾸는 힘’ 토론수업이 한창이었다.(사진 왼쪽) 마곡중학교 학생들이 4월 인권·평화·자유 주간을 맞이해 ’제주 4.3사건을 기억하는 동백꽃’ 조형물을 직접 설치했다.(사진 오른쪽) 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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