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에 있던 영화촬영소는 1960년대 한국 영화의 산실이었다. 지금은 고전이라 불리는 <이수일과 심순애> <민 검사와 여선생> 등 수십편의 영화가 쏟아져 나오면서 한국 영화의 발전을 이끌었다. 지금 촬영소의 모습은 모두 사라졌지만, ‘촬영소 고개’와 ‘촬영소 4거리’라는 지명이 남아 옛 영화를 전해주고 있다. 영화촬영소가 이전한 뒤 그 터에 자리잡은 동답초등학교는 영화촬영소의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이 학교가 주축이 돼 4년째 열고 있는 서울어린이창작영화제도 그 일환이다. 영화제는 이번주부터 공모를 시작하는 등 본궤도에 올랐다. 최재광 교장 선생님이 부임한 뒤 본격화한 작업이었다. 지난 10일 오후 교장 선생님과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 옛 영화촬영소 역사 되살리기
― 영화제는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 4년 전 부임한 뒤 교육활동 등 침체된 학교를 어떻게 살릴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 동력을 마련하려는 차원에서 영화를 내세웠다. 먼저 우리 학교가 영화촬영소 터에 세워진 학교이기 때문에 그 전통을 살리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했다. 2016년부터 5, 6학년을 대상으로 수업시간에 영화 교육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왕이면 발표할 수 있는 장을 만들면 좋겠다 생각했고, 혼자 하는 것보다 다른 학교와 같이 하자는 취지에서 서울어린이창작영화제를 열게 됐다. 어른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영화제는 있지만, 어린이들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만든 영화를 가지고 하는 영화제로는 유일한 것이 아닌가 싶다. 첫해에는 서울의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했고, 둘째 해에는 전국으로, 작년부터는 외국으로까지 문호를 넓혔다. 또 작년까지는 서울시교육감상이 가장 큰 상이었는데 올해부터는 교육부장관상으로 높였다.
― 동답초 단독으로 추진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 지역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끌어줘서 손쉽게 일어섰다. 학부모는 물론 동대문구청, 구의회, 그리고 영화계에서 활동하셨던 분들의 모임인 답십리영화마을보존회 등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줬다. 영화제 때 체험코너를 운영하는 데 학부모들이 앞장서고 있다. 학교에 지원인력이 없는데 학부모의 호응이 없었다면 영화제도 어려웠을 것이다. 또 우리 학교 혼자서 영화제를 하다 보니 작품 공모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다른 학교 20여곳과 함께 공동개최를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내 것이란 생각이 드니 경쟁적으로 작품을 내고 있어 안정적으로 작품을 확보할 수 있다. 출품작은 보통 80~90편이 된다.
― 영화와 어떤 인연이 있는가?
▶ 서울시교육청에서 문화예술 담당 부서 장학관을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요즘 4차 산업의 중요성이 부각되는데, 창의성이라는 게 영화를 통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추진했다. 영화가 종합예술이다 보니 아이들이 일찍 종합적 사고, 융합적 사고를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경쟁력을 갖게 된다. 이들은 중고등학교에 가서도 뒤처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뭔가 다른 경험을 했다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영화체험실에서 어린이들이 영화 제작 과정을 배우고 있다. 동답초 제공
■ 대학영화제에도 초청돼 상영
― 어린이들 작품이라 성인 작품과는 다르지 않을까?
▶ 주제는 학교와 가정이 주를 이루지만, 어린이의 독창적인 시각이 돋보인다. 어린이 작품 셋이 작년에 대학영화제에 특별 초청돼 상영된 적이 있다. 초등학생이 만든 게 사실이냐고 물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앞으로는 대종상에도 초청됐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자부심을 심어주는 데 그만한 게 어디 있겠나.
― 작품 제한 시간이 10분인데, 짧아 보인다.
▶ 작년까진 10분 이내였는데 올해는 5분으로 줄였다. 메시지를 담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다. 어린이들이 만들기에는 그래도 쉽지 않은 분량이다. 작년엔 주제를 행복으로 정했는데 올해는 자유 주제로 했다. 더 창의적인 내용이 많을 것으로 기대한다.
― 학교에 영화제 행사를 할 공간은 안 보이는데.
▶ 학교 뒤 동대문구 체육관에서 한다. 영화제에는 어린이들 공연을 많이 넣었다. 성악·발레 등 성인 공연 등도 교육 기부 형태로 받고 있다. 작년엔 대진대학 연극영화학부가 영화제 무대와 카메라 설치 등을 도와줘 수준을 한층 높였다. 그 덕에 아이들이 성인 영화제 같은 멋진 무대에 설 기회도 갖게 됐다. 예산도 많이 들지 않았다.
― 학교에 영화 관련 활동은 어떤 것이 있나?
▶ 영화체험실과 소극장이 대표적이다. 체험실에는 컴퓨터와 카메라 등 장비가 있고 녹음실, 편집실, 분장 도구, 의상실 등 다 있어 작은 스튜디오 구실을 한다. 인근 학부모와 학생들이 와서 동아리 활동 하도록 개방을 하고 있다. 소극장도 붙어 있는데 공연을 하거나 발표를 할 수 있다. 또 학교 곳곳에 영화 촬영에 이용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공간을 만들었다. 교실이 전부 현대화됐는데 옛날 흑백칠판과 책걸상으로 꾸민 영화촬영용 특별교실도 만들어 놓았다. 또 영화 관련 활동뿐만 아니라 1·2학년 학생은 연간 20시간 발레를 하고, 3·4학년은 바이올린 수업을 한다. 어릴 때부터 문화예술을 접하게 해 감수성을 발달시키고 창의성도 높여주자는 의도다.
― 학교와 어린이들한테도 큰 변화가 있었을 것 같은데.
▶ 아이들이 영화를 만들면서 성격이 적극적으로 바뀌고 친구들과 협력하는 방법을 깨쳤다. 이런 활동 속에서 자신감도 갖게 됐다. 우리 학교는 영화 덕에 이 지역에서 가장 좋은 학교가 됐다. 서울시교육청의 ‘꿈담교실’을 통해 교실을 리모델링하고 천연잔디 운동장을 만드는 등 환경이 좋아진 것도 한몫했다.
■ 영화아카데미 만들려 노력
― 새로운 사업이나 활동을 하는 게 있는가?
▶ 구청이 학교 옆에 있는, 답십리촬영소 영화전시관이 있는 동대문문화원을 리모델링하는데 영화체험실을 많이 만들어 달라고 건의하고 있다. 우리 학교와 인근 학교 학생들이 더 많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문화원이 영화아카데미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근 배봉산에 세트장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주변에는 옛날 분위기가 나는 고풍스러운 거리도 많다. 영화 촬영에 많이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사회 발전에도 좋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 동네의 역사를 되살리는 작업이 될 것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 올해 8월이면 임기 4년이 돼 이 학교를 떠나게 된다. 앞으로 새로운 교장 선생님이 오셔도 영화제가 이어졌으면 한다. 정착 단계에 들어갔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린이영화제의 모델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근 ‘아해 협의회’라는 영화제 지원 조직을 만들었다. 지역 인사들로 구성해 영화제가 끊기지 않고 계속되도록 하려는 의도다.
글·사진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