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합격 1500만원” 학벌로또 ‘장학금’ 파문

여수시, 예산으로 연세·고려·KAIST·포항공대 합격땐 등 900만원 지급

‘서울대 들어가면 1500만원, 연·고대·KAIST·포항공대에 합격하면 900만원을 시에서 준다. 그럼 나머지 대학 진학자는? 열심히 공부해서 니 힘으로 장학금 타라?’

전남 여수시가 시 예산으로 관내 고등학생 가운데 특정 대학 진학자들에게만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해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 학벌사회를 노골적으로 부추긴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여수시는 19일 2006학년도 서울대학교 입학자에게 장학금으로 1인당 1500만원을 주고, 연세·고려· KAIST·포항공대 입학자들에게 9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또 서울대 입학생 등을 배출한 학교에도 학생 1인당 500만원~800만원씩의 장려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여수시의 ‘특정학교 진학 장학금’은 시 조례에 따라 교육환경 개선자금에서 나온 것으로 관내 고등학교의 우수 학생 유치를 위한 고육지책이다. 관내 우수 중학생들의 고등학교 진학을 높이려는 유인책이다. 또 관내 학생들의 타 시·군 유출은 인구 감소로 이어져 지방교부금 삭감과 공무원 수의 감소 등으로 이어진다는 현지 공직 사회에서 고민하는 배경도 깔려 있다.

여수시 “우수학생들 1년 300명 타지역 빠져나가…고육지책”

여수시청 문흥환 교육지원 담당공무원은 “여수시내 중학생 가운데 우수 학생들이 1년에 250~300명 가량이 다른 시·군으로 빠져나간다”며 “평준화 뒤 여수시 교육이 하향 평준화돼 외부로 빠져나가는 우수 학생들을 뽑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수시의 특정 학교 진학 장학금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과 함께 학벌주의를 부추긴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우선 특정 대학만 지급하는 것은 다른 대학과 형평성에 어긋난 뿐더러 지급 기준 또한 의문투성이다. 여수시는 5개 특정 대학의 선정기준과 장학금 액수의 차등 지급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또 특정 대학 입학자보다 학교 성적이나 수능 점수가 높으나 법학·의학 등 전공 탓에 다른 대학을 선택하는 입학자들은 혜택에서 제외된다. 이러한 여수시의 장학금 정책은 참여정부가 지방분권을 강조하며 지방대학 육성에 발벗고 나서고 있는 교육 정책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또한 서울대와 KAIST는 국립대학으로 다른 사립대학에 비해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낮고, 포항공대와 연세·고려대도 등록금 및 장학금 측면에서 다른 대학들보다 학생들에게 혜택이 많은 편이다. 이렇게 상대적 혜택을 받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세금을 통해서 조성한 예산을 지원한다는 것에 대해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학벌없는 사회 “세금으로 만든 예산으로 쓰다니 학벌지상주의의 사례”

‘학벌 없는 사회’(antihakbul.org) 이병호 대변인은 “교육청이 했더라도 문제가 될 텐데, 세금으로 운영하는 지방자치단체가 그런 일을 했다니 어이없고 한심하다”며 “우리 사회의 엘리트주의와 학벌지상주의가 얼마나 뿌리깊은가를 바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세금으로 조성한 교육환경개선자금이라면 지역 전체 학교의 진흥과 여건을 개선하는 데 사용해 모든 시민에게 환원해야 하는 것”이라며 “특정 학교 입학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세금을 유용한 것과 다름없다”고 맹비난했다.

여수시 전교조도 “교육환경개선자금을 본래 성격에 맞게 전체 학교의 교육환경 개선에 사용하거나 학생들을 위해 취미·특기·적성교육, 영어회화 교육 등에 활용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비난이 고조되자 여수시는 사용되는 예산이 많지 않고, 내년부터는 수능 성적에 따라 장학금을 주는 등 보완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여수시청 문흥환씨는 “2005학년도 여수시의 서울대 진학자가 겨우 3명이고 연세·고려대 등의 합격생도 몇명 되지 않아 이를 위해 시 예산이 5억원도 안 쓰인다”며 “2007학년도부터는 일선 학교의 교육환경개선에 힘을 쏟고 장학생은 수능점수를 통해 선발하는 등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