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도덕 과목의 통일교육 수업에서 분단 체험 놀이를 하고 있다. 유철민 교사 제공
‘아이가 공부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는 서양 속담이 있다. 머리를 식히면서 재충전을 해야 한다는 의미일 터이다. 하지만 학부모 대부분은 노심초사하는 마음에 ‘공부해라’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우리나라가 학벌사회인 탓에 명문 대학에 들어가느냐, 그러지 못하느냐가 아이의 인생을 좌우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학벌사회를 타파하자”고 외치는 많은 저명인사들이 자기 자식은 외국어고나 과학고 등을 거쳐 명문대나 외국 유학을 보낸 사례를 자주 보아오지 않았는가?
■ 지루하지 않은 수업 만들기
“놀면서 공부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인천산곡북초등학교 유철민 교사는 늘 이런 고민을 했다. 모임에서 앞에 나서서 사회 보기를 좋아했던 그는 그 끼를 활용했다. 아이들이 덜 지루해하고 쉽게 개념을 깨우칠 수 있도록 놀이와 수업을 연결했다.
국어 과목의 ‘원인과 결과’ 단원 수업을 예로 들어보자. 한 반 아이들을 두 모둠으로 나눈 뒤 한쪽은 ‘원인’ 팀이라고 이름 짓고, 다른 쪽은 ‘결과’ 팀으로 한다. 아이들에게 A4 용지를 한장씩 나눠 준 뒤 생각나는 문장을 하나씩 쓰도록 한다. 주제는 없고 다만 주어만 정해준다. 예를 들면 선생님이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이 문장을 다 쓰고 나면 원인 쪽에서 하나의 종이를 뽑아서 읽는다. ‘선생님이 배가 고픕니다’란 문장이 나왔다. 결과 팀에서도 하나의 종이를 뽑는다. 여기서는 ‘울고 있습니다’란 문장이 나왔다. “선생님이 배가 고픕니다. 그래서 울고 있습니다”란 어느 정도 뜻이 통하는 문장이 완성됐다.
그러나 뜻이 전혀 연결되지 않는 문장도 나올 수 있다. 선생님은 “잘 맞지 않는 것 같으니 다음에 다른 짝을 찾아보자”고 하며 옆에 놓는다. 이런 식으로 연결된 문장을 찾아나간다. 나중에 원인과 결과 문장을 모두 찾으면 그 문장들을 엮어서 이야기로 구성을 할 수도 있다. 이런 놀이가 거듭될수록 아이들의 상상력이 풍부해진다. 처음에는 문장이 단순했지만, 새로운 문장을 생각하거나 다양한 상황을 표현할 줄도 알게 된다.
유 교사는 “교과서로 지식만 전달하다 보면 아이들이 지루해하고 생생한 면에서도 떨어질 수 있다”며 “이런 놀이를 하다 보면 아이들이 그 자체로 상상을 많이 하게 되고 원인과 결과의 개념도 쉽게 익힐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수업에 흥미를 느끼게 된 아이들은 “다음에 또 놀이 수업 하면 안 돼요?” 하면서 먼저 제안을 한다.
유철민 교사가 국어 수업 시간에 ‘초성 퀴즈’로 ㅇㅅ으로 된 낱말을 찾아보는 활동을 하고 있다. 유철민 교사 제공
■ 장애인의 날에는 장애 체험 놀이
지난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유 교사는 며칠 앞서 장애인 이해 교육을 위해 창의적 체험 활동 시간을 마련해 체육관에서 놀이 교육을 했다. 이 놀이는 각기 다른 신체적 제한을 가진 세명이 서로 협동하여 물건이나 사람을 찾는 것이다. 앞을 볼 수 있지만 말은 할 수 없고 팔만 움직일 수 있는 아이, 말을 할 수 있는데 앞을 볼 수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아이, 움직일 수는 있는데 앞은 볼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는 아이 등 세명이 협력해 목표 지점을 찾아가는 것이다.
길 찾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놀이가 끝나고 나면 아이들이 서로 소감을 이야기한다. “안대를 한 아이를 안내하는 게 이렇게 어려운지 몰랐어.” “눈에 안대를 하니 아무리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해도 방향을 알 수가 없어 헤맸어.” 아이들은 당시 진땀을 흘린 상황을 설명하느라 또다시 진땀을 흘렸다. 장애를 가진 친구들의 어려움을 몸으로 겪어보는 순간이다.
유 교사는 이런 놀이 교육을 하게 되면 그 내용을 카드뉴스로 만들어 블로그와 페이스북 등에 올려 다른 교사들과 공유한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거나 바빠서 준비하지 못한 다른 관심 있는 교사들이 수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대부분 카드뉴스만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설명이 필요할 때는 동영상을 찍어 올리기도 한다.
교실에서 이런 놀이와 교과 연결 수업을 해오던 유 교사는 2015년께 동료 교사들과 함께 ‘같이 교육’이란 연구회를 만들었다. 놀이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지닌 인천 시내 초등학교 교사들끼리 생각을 얘기하고 경험을 나누면서 함께 풀어나가자는 생각이었다. ‘같이하는 교육, 가치 있는 교육’이라는 슬로건도 만들었다. 유 교사는 “많은 선생님이 같이했을 때 교실이 더 밝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담았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이제 인천을 벗어나 서울과 경기도까지 범위를 넓혔고, 참여 교사도 30여명으로 늘어났다. 한달에 한번씩 토요일에 만나 놀이를 연구하고 시연하면서 자료로 개발하고 있다. 선생님이 직접 해보고 재미있어야 아이들에게도 재미있지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의미가 없다는 모토를 실천하고 있다.
4년 남짓한 세월이 길지는 않지만, 이들의 노력의 결과는 쌓이고 쌓여 7권의 책으로 나왔다. 2016년 <수업을 살리는 놀이 레시피 101> 2권이 첫선을 보였다. 창의력, 기억력, 사고력, 협동심을 키우는 놀이 등이 들어 있다. 모두 교과 내용을 소재로 놀이를 개발했다. 이어 미술, 체육, 음악, 실과 관련 놀이 수업 책이 잇따라 나왔다. 실과는 요즘 셰프의 유행을 반영해 요리가 많이 포함돼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책 내용을 모두 공개했지만 이런 놀이를 한곳에 모아놓으면 이용하는 데 편리할 것이라고 생각해 책으로 만들었다. 이 책을 낸 출판사에서도 내용을 모두 누리집에 공개하고 있다.
■ 아이들과 놀아주는 게 최고의 수업
유 교사는 지난해 하반기엔 연구회 교사들과 함께 <수업방해>란 독일의 교육 관련 책을 편역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풀어가는 행복 솔루션’이란 부제가 붙어 있는데 교사를 위한 지침서다. 수업방해라 하면 대부분 학생 탓일 거라 생각하는데 의외로 교사가 주범(?)이란 내용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교사와 가위바위보 놀이만 해도 좋아한다. 교사와 같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아이들과 친근해지고, 아이들도 밝아지고 학교 분위기가 밝아지는 게 보인다.” 유 교사의 얼굴도 달처럼 환해졌다.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