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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이제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거듭날게요”

등록 2019-05-13 20:06수정 2019-05-16 09:55

재혼한 엄마 따라 한국 들어와
먼저 정착한 선배들 롤모델 삼아
기술·한국어 배우며 취직 준비

이국땅 새로운 생활 점점 적응
따뜻한 손 내밀어 끌어주고
외국인에 대한 편견 바꿔주길
베트남에서 온 현우의 한국살이

지난 8일 충북 제천 한국폴리텍 다솜고 실습장에서 최현우 학생이 처음 지급받은 장비를 챙긴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8일 충북 제천 한국폴리텍 다솜고 실습장에서 최현우 학생이 처음 지급받은 장비를 챙긴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호후이빈, 한국 이름은 최현우(17)다. 그동안 살았던 전남 나주를 떠나 지난 3월 충북 제천에 있는 한국폴리텍 다솜고에 입학했다. 전공은 플랜트설비과. 전기과를 1지망으로 했는데 경쟁률이 높아 2지망인 플랜트설비과로 밀렸다. 다솜고는 다문화 학생들을 모아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다.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중간에 입국한 다문화 학생들이 대상이다. 기술 과목과 한국어, 한국 문화를 익히기 위한 수업이 주를 이룬다. 전국에서 오기 때문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학비도 무료다. 학교가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평소엔 기숙사에서 지내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제천시내로 나가 피시방에 가는 등 나들이도 자주 한다.

현우의 꿈은 축구선수였다. 나주에 있을 때도 축구 동아리 활동을 아주 좋아했고, 다솜고로 와서도 다솜FC 동아리에서 공격수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키가 크지 않고 몸도 마른 탓에 다른 사람들은 별로라고 생각한다. 엄마도 위험하니 하지 말라고 하지만 아직 희망을 버리기에는 이르다고 생각한다.

■ 다솜고에서 기술·한국어 익혀

그는 애초 엄마가 있는 전남 지역의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했다. 엄마가 사는 곳 근처에서 엄마를 바라보며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오기 전에도 엄마와 3년간 떨어져 살았고 전화로만 엄마 목소리를 듣는 게 너무 슬펐다. 그런데 나주 세지중 다문화예비학교에서 그를 지도해온 고순희 선생님이 기술 자격증을 따면 한국 국적을 얻고 취직을 하는 데도 유리하다고 엄마를 설득했다. 현우가 동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솜고에서 용접과 전기 관련 기술을 배워 자격증도 따고 한국어도 더 익혀 취직을 하고 싶어요. 돈을 많이 벌어 엄마·아빠와 같이 살고 싶어요.”

현우가 설비과에서 딸 수 있는 자격증은 용접기능사와 특수용접기능사다. 그는 전기기능사도 마음속에 두고 있다. 전기기능사는 따로 전기과의 수업을 들으면서 준비를 할 예정이다. 다솜고 1, 2학년 때 자격증을 따려면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다솜고가 기술학교이기 때문에 3학년 때는 필기시험 면제를 받을 수 있어 실기만 합격하면 된다. 평소 연습을 하던 학교에서 실기시험을 치르기 때문에 긴장하지 않고 시험을 치를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전기기능사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베트남에 있을 때부터 자기 집이나 이웃집의 전기를 고쳐주는 일을 도맡아 할 정도로 솜씨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기기사들이 하는 것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웠다고 한다. 다솜고 원서 쓸 때 전기과를 1지망으로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 다솜고를 졸업한 선배 박한상과 손우훈은 그의 롤모델이다. 엄마가 필리핀 출신인 박한상씨는 3년간 자격증 8개를 땄으며, 서울시시설관리공단에 취직을 했다. 중국에서 온 손우훈씨는 자격증 5개를 따고 화승케미컬에 들어갔다. 자격증을 따고 의사소통이 원활하면 취직이 손쉽다. 이 학교 졸업생들은 하나에서부터 많게는 8개까지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올해 졸업생 42명 중에 22명이 취업을 했고 12명이 대학에 진학했다.

■ 한국 국적 취득하려 귀화 신청

현우는 지난해 귀화 신청을 했다. 엄마와 결혼한 한국 아버지가 그를 대신해서 했는데 아직 국적이 나오지는 않았다. 심사를 통과해 귀화 면접을 하더라도 국적을 얻기까지 6개월 내지 1년 반을 기다려야 한다. 국적을 얻지 못하면 취직을 할 수가 없다. 고교 졸업 때까지 국적이 안 나오면 체류 연장을 위해 대학에 가야만 할 수도 있다. 현우는 아직 한국어 시험을 치르지 않았다. 국적을 따려면 한국어능력시험 3급 이상을 따야 하는데 다솜고에서 좀 더 익힌 뒤 시험에 도전할 예정이다. 다솜고에서는 1학년 때 초급 과정인 2급에서 시작해 3학년 때는 중상급인 4급 자격을 따도록 한국어 교육을 시킨다.

“현재 한국어를 70%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려운 것이 너무 많아 많아요. 모르는 단어나 어려운 단어가 많아요. 여기서 태어났거나 여기 온 지 오래된 다른 베트남 친구들은 한국어를 잘해요.”

현우가 엄마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 지 4년이 넘었다. 처음 2~3개월간은 목포에서 엄마와 함께 지내다 나주에 있는 세지중학교 부설 다문화예비학교에 들어갔다. 거기엔 베트남에서 온 아이들도 있어서 외톨이로 지내지는 않았다. 거기서 ‘한국의 엄마’ 고순희 선생님을 만났다. 고 선생님을 엄마라 부르는 이유는 말도 잘 안 통하고 한국 문화에도 서투른 그를 자상하게 대해줘 엄마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선생님과 친해지면서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엄마’는 예비학교에 있는 현우를 포함해 5~9명의 다문화 학생이 한국 문화에 빨리 접할 수 있도록 시간이 날 때마다 근처에 있는 문화센터 등에 데리고 나갔다. 그가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 한국 문화를 익히고 이제 낯설지 않게 된 건 엄마 덕이다. 엄마의 권유로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따놨다. 또 지난해엔 다문화 수기를 쓰도록 이끌어줘 제10회 다문화 교육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한국어가 서툴러 글쓰기를 꺼리는 그가 긴 글을 쓸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뜻이 통하지 않거나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주었다. 덕분에 상금도 50만원이나 받았다. 상금은 아직 손도 대지 않고 놔뒀는데 한국 아이들처럼 멋진 옷을 사고 싶다는 생각에 잠겨 있다.

■ 새로운 가족과 새로운 생활

현우는 ‘이제 한국인이 될 준비가 됐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아빠와도 친해졌고 할머니, 작은아빠·작은엄마, 그리고 사촌 형, 누나도 생겼고 가족이 돼가는 것을 느낀다. 같이 모여서 식사도 하고 재미있게 놀기도 한다. 특히 엄마·아빠가 낳은 다섯살 동생 현아가 좋다. 집에 가면 오빠라고 부르며 졸졸 따라다니며 놀아달라고 조르는 게 너무 귀엽다. 한국인 친구들도 사귀면서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을 곁눈질로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에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외국에서 온 사람들이 얼굴 모양과 색깔은 좀 다르지만 이상한 눈으로 보지 말고 따뜻하게 대해 주세요. 한국인이 되기 위해 노력할게요.”

글·사진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

장성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다문화예비학교 여름방학 캠프 때 학생들이 대학생 멘토 등과 가구 만드는 실습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오른쪽 둘째가 최현우. 고순희 교사 제공
장성청소년수련관에서 열린 다문화예비학교 여름방학 캠프 때 학생들이 대학생 멘토 등과 가구 만드는 실습을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오른쪽 둘째가 최현우. 고순희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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