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한 공립유치원에서 어린이가 학부모와 함께 귀가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국공립유치원을 민간에게 위탁할 수 있는 법안을 내놓아 각계각층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와 여당이 국공립유치원의 경영을 민간에 위탁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유아교육법 일부 개정안’을 내놓아 교육계와 학부모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그동안 정부가 꾸준히 밝혀온 국가책임보육이라는 지향성에 역행하는 탓이다.
<한겨레>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대표 발의한 ‘유아교육법 일부 개정안’을 31일 살펴본 결과, 개정안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학교법인이나 국립학교 등에 국공립유치원을 위탁해 경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교육감도 기간을 정해 공립유치원 경영을 위탁 또는 재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안은 교육부와 사전 협의를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위탁 경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국립학교나 법인에 한정해 위탁을 하면서 국공립유치원을 다양한 형태로 늘릴 필요가 있어 이런 법안이 발의됐다”고 말했다.
경기교사노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 등 교사 단체들은 30~31일 일제히 성명을 내어 “개정안은 유아교육의 공공성과 전문성을 훼손한 법안”이라며 즉시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경기교사노조는 30일 낸 성명서에서 “유치원 교육의 투명한 운영과 교육의 질을 확보하도록 국가의 책임에 무게를 두어야 할 작금의 현실에 맞지 않는 개정안은 학부모와 국민의 의지에 반하는 내용이며, 유아교육의 공공성을 심각히 훼손할 우려가 있으므로 반드시 폐기되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전교조도 31일 낸 성명서에서 “몇 해 전 미술학원 위탁 경영의 실패와 일부 위탁법인 어린이집의 불법적 경영을 경험하고도 정부와 여당이 교육 공공성을 해칠 수 있는 개정안을 낸 것에 큰 우려를 표명한다”며 “해당 법안을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한국교총과 한국국공립유치원교원연합회도 “이번 개정안은 국가책임보육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며 “민간 위탁 경영으로 질적 개선을 할 수 있다는 근거가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 단체는 국공립유치원을 민간에 위탁할 경우 특기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학습 부담을 늘리거나 비교육적 요구를 무분별하게 수용해 유아의 건강한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또 최근 민간위탁 일부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적발된 부당노동행위, 부실 급식 등이 국공립유치원의 민간위탁으로 되풀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최근 이런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서울의 각 구가 위탁 어린이집을 직영으로 전환하고 있으니 이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미선 전교조 유치원 위원장은 “개정안을 제안한 이유에서 유치원의 특성화와 돌봄 시간 확대라고 했는데, 돌봄 시간 확대나 통학버스 운영은 국가와 지자체가 의지를 갖고 제도 보완과 인력 확충 등 행·재정적 지원을 강화해 해결할 문제이지 위탁으로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학부모들도 이번 개정안에 비판적이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학부모의 국공립유치원 확충 요구에 빨리 발맞춰 가려면 수를 늘려야 하므로 위탁이라는 방법을 통해 돈을 적게 들이면서 빠르게 국공립유치원을 늘리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유치원도 위탁 국공립어린이집처럼 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지혜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도 “개정안 발의 제안이유에서 학부모들의 다양한 요구에 맞는 국공립유치원을 확충하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통학버스 등 재정을 빨리 마련하고 학부모를 교육주체로 세워 감시역할에 포함하도록 하는 방향이 맞는 것이지, 이를 사립이나 법인에 국공립 무늬만 씌워 위탁 주는 건 해결방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 활동가는 특히 “대학법인의 경우 해당 전공의 교수와 그 제자들의 라인에 인해 더 폐쇄적인 구조가 되어 외부 견제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부작용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회 안에서 논의하면서 지금 제기되는 우려들에 대해 충분히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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