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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욕망 부추기는 학교 선택권, 민주주의 토대 위협 될 수도”

등록 2019-06-23 21:47수정 2019-07-04 18:39

2019 학교민주시민교육 국제포럼
한겨레-교육청-징검다리공동체 공동주관

아일랜드 거트 비에스타 교수 발제
“전반적 교육과정서 민주 원리 실천
자신 파괴할 정도로 욕망 누르거나
욕망 앞세워 세계 파괴 해선 안돼”

선거교육·토론 위주 벗어나 새 시각
교사에 정치적 자유 부여 강조도

조희연·이재정 등 교육감 4명과
교사 등 500여명 참석 뜨거운 토론
지난 22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학교민주시민교육 국제포럼'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희 <한겨레> 논설위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거트 비에스타 메이누스대 교수,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22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서울시립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학교민주시민교육 국제포럼'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희 <한겨레> 논설위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거트 비에스타 메이누스대 교수,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민병희 강원도 교육감.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016년 시작된 촛불혁명 과정에서 한국의 민주주의 담론은 풍성해졌다. 당시 전국에서 시민들은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외쳤고, 민주주의나 공화국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거리의 ‘민주시민교육’을 촛불혁명 뒤엔 학교 안에서 실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런 열기는 교육부 등으로 전해져 올해 51개 ‘민주시민학교’를 시범 운영하는 등 민주시민교육은 교육 현장의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22일 서울시립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2019 학교민주시민교육 국제포럼’ 행사장 분위기는 이런 현장의 열기를 반영하듯 뜨거웠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등이 참석해 거트 비에스타 아일랜드 메이누스대 교수의 기조 발제를 들었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도성훈 인천시교육감,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교육자치와 민주시민교육’을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고 서울·경기·인천·강원 교육청과 징검다리교육공동체가 함께 주관한 이날 국제포럼에는 교사 등 500여명이 참석해 뜨거운 분위기를 이어갔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미국 교육철학학회 회장 등을 역임한 비에스타 교수는 <한겨레>와 별도 진행한 인터뷰에서 자사고 논란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22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시립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학교민주시민교육 국제 포럼’에서 거스 비에스타 아일랜드 메이누스 대학 교수가 기조 발제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2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시립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학교민주시민교육 국제 포럼’에서 거스 비에스타 아일랜드 메이누스 대학 교수가 기조 발제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비에스타 교수의 기조 발제 ‘민주주의, 시민 그리고 교육: 의제(agenda)에서 원칙(princple)으로’는 정당과 투표 등 선거제도를 학생에게 알려주고, 토론 수업만 하면 민주시민교육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내용이었다. 그는 민주시민교육이 하나의 과목(커리큘럼)으로 따로 분리되어서는 안 되고 학교의 전반적 교육과정과 학교 생활 전반에서 민주주의 원리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주의라고 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모든 개인이 자신의 자유만을 누리려고 하면, 다른 사람의 자유와 행동을 침범할 수 있지요. 자유, 평등, 연대라는 세가지 가치를 함께 추구하며 민주주의를 이루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타협과 ‘자기 제한’(self-restraint)을 요구합니다. 이런 자기 제한을 익히기 위해 민주주의는 교육을 필요로 하는 것이죠.”

비에스타 교수는 민주주의를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 발명품”이고 “정치적 프로젝트”라고 본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통해 민주시민을 잘 길러내야 한다고 설명한다. 모든 사람은 욕망을 갖고 있는데, 아동·청소년 시기에 자신의 욕망을 적절하게 제한할 줄 아는 방법을 배워야 민주시민으로 양성할 수 있다. 최근 높아진 서구의 포퓰리즘에 대한 지지는 이런 자기 제한의 실패 사례로 언급됐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며 난민을 추방하려는 극우 세력의 태도는 비민주주의이라는 것이다.

자기 제한은 자신을 파괴할 정도로 욕망을 억압해서도 안 되고, 자신의 욕망만을 극도로 추구하면서 ‘세계 파괴’를 해서도 안 되는 원리다. ‘자기 파괴’와 ‘세계 파괴’의 중간지대에 머물러야 하는데, 비에스타는 그것이 교육적 공간 속에서 길러질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자기 제한력을 키우는 교육적 방법으로 정원 가꾸기나 동물 키우기, 석재나 목재를 다루는 기술 교육 등을 꼽았다. 정원 가꾸기나 동물 키우기가 생태 교육으로만 여겨지는 한국에서 이런 관점은 매우 신선했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식물을 내 욕망대로 빨리 자라게 할 수도 없습니다. 열심히 물을 주고 정성을 들여도 때로는 식물이 죽기도 하죠. 아이들은 엄청난 좌절감을 경험하죠. 그런 만남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욕망을 직면하고 그 욕망을 판단하는 실제적 연습을 하며 자기 제한을 배웁니다.”

그는 아동 중심, 학생 중심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학생들을 만족시키는 것에만 치중하는 교육도 위험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비에스타 교수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만 얻고 성장 과장에서 어떤 저항이나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면, 실제 현실 세계에서 자신의 욕망을 집합적 욕망으로 전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의 열쇠는 개인적인 욕망에 의해서만 추동되는 삶을 살지 않으며, 어떻게 하면 개인과 집단들의 욕망이 집합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한겨레>와 별도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둘러싼 논란을 들은 뒤, 학생과 부모에게 학교 선택권을 주는 것이 때로 민주주의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에스타 교수는 “부모에게 학교 선택권을 주는 것이 언뜻 보면 민주주의 같지만 학부모나 학생의 이기적인 선택을 조장하고 부익부 빈익빈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며 “자칫 욕망을 그대로 투영한 선택권이 민주주의 토대를 허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민주시민 교육은 정치적 자유와 무관하지 않다. 비에스타 교수는 한국에서 교원들에게 정당 가입 등 정치적 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교사들이 교실에서 정치적 의견을 피력할 수 없다는 현실에 놀라움을 표했다. 그는 “네덜란드나 아일랜드에서는 교사나 학부모 모두 교사의 역할이 정치적 견해를 그저 학생들에게 세뇌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며 “교사의 정치적 중립을 법적로 금지하거나 보장할 문제가 아니라 교사라는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윤리로서 책임져야 할 문제로서 접근한다”고 설명했다.

민주시민 교육의 반대편에 있는 성취도 위주의 평가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그는 한국이 피사(PISA)와 같은 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에 지나치게 민감한 현실에 대해 “재앙이다”라고 표현했다. 그는 피사가 측정하는 요소들은 너무 협소한데, 그 결과를 전체 나라의 결과로 포장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피사의 인질로 잡히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배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민주시민교육 일회성 그쳐...입시 위주 체계부터 바꿔야”

4명의 교육감이 본 현 주소는?

각 지방에서 교육자치를 실현하는 교육감들은 우리나라의 민주시민교육 현주소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22일 진행된 ‘학교민주시민교육 국제포럼’에 토론자로 나선 도성훈 인천시교육감은 세월호 참사 이후 민주시민교육에 대해 강조하게 됐지만 여전히 이념 논란 속에서 민주시민교육이 교과서에 머무르고 있다고 진단했다. 도 교육감은 “촛불 대혁명 이후 학교에서 국민의 권리 등을 가르치고 있지만 행사나 특강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입시 위주의 교육이 민주시민교육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도 이와 관련해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어려운 점은 교사들의 정치 참여, 정치적 발언이 전혀 허용되고 있지 않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조 발제를 한) 거트 비에스타 교수도 민주주의라는 것이 역사적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정치적 프로젝트라고 말했는데, 우리 교육에서 정치 교육이 빠져 있다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밝혔다.

2019 학교민주시민교육국제포럼 행사장을 가득 메운 청중. 박종식 기자.
2019 학교민주시민교육국제포럼 행사장을 가득 메운 청중. 박종식 기자.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인성교육진흥법을 만들어 인성교육을 시키겠다는 발상이 오히려 인성교육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 교육감은 “모든 교육은 인성교육이고 진로교육이고 민주시민교육”이라며 “오지선다형 문제의 정답 맞히기로 창의성을 억압하는 수능부터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현재 교육 내용이 너무 어렵고 많아 이런 것들을 줄여야 진정한 민주시민교육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혁신교육 역사가 오래된 곳은 민주시민교육 역시 깊이가 있다고 전하면서 깨어 있는 시민을 키우기 위해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입시제도가 완전 바뀐 이후에만 민주시민교육이 실현될 수 있다거나 권력과의 싸움으로만 해결되는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며 “타자와 함께 살아가는 민주주의를 어떻게 대안적인 미덕으로 만들고, 우리가 사는 공간에서 어떻게 실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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