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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혼돈’은 떡?…“국어사전, 볼수록 오류투성이…새로 만들어야”

등록 2019-06-25 06:59수정 2019-06-25 14:25

국어사전 혼내는 전직 교사 박일환씨

뜻풀이 궁금해 국어사전 찾으면
어려운 용어에 도돌이표 설명
해결은커녕 되레 궁금증만 커져

엉터리 국어사전 문제점 들춰
‘국어사전 혼내는 책’ 등 펴내
“이젠 박물관 돌며 우리말 발굴”
<국어사전 혼내는 책>의 지은이 박일환씨가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국어사전 혼내는 책>의 지은이 박일환씨가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백충(白蟲) 「명사」 ‘조충’의 전 용어.
조충 「명사」 조충강의 동물을 일상적으로 통틀어 이르는 말. =조충류.
조충류 「명사」 조충강의 동물을 일상적으로 통틀어 이르는 말. ≒조충.
조충강(條蟲綱) 「명사」 『동물』 편형동물문의 한 강. 대개 암수한몸으로 변태를 하며 위창자관이 퇴화한 점이 흡충류(吸蟲類)와 다르다. ≒촌충강. (Cestoda)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백충이란 단어를 국립국어원 웹사이트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았다. 한바탕 ‘뺑뺑이’를 돌리고 나서는 과학적인 용어 설명으로 끝을 냈다. 마지막 설명을 읽고도 궁금증이 풀리지는 않는다. 마지막에는 새로운 단어들이 더 많이 등장을 해 또다시 뺑뺑이를 돌아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미친 국어사전>(2015년), <국어사전 혼내는 책>(2019년)이란 책이 나온 이유를 알 것 같다. 2017년 교사 생활 30년을 채우고 퇴직한 전 고교 국어 교사 박일환씨가 쓴 책이다. 국어사전을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몇 개의 단어만 찾아보면 금방 동감을 하게 된다. 박 전 교사는 “30년간 글을 읽고 쓰다 보니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뒤져볼 일이 많았는데, 분통 터지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제구실 못 하는 ‘표준국어대사전’

그가 국어사전에 대해 첫 번째 회초리를 든 부분은 ‘잘못됐거나 엉성한 뜻풀이’다. 자궁이란 단어를 찾아보자.

자궁(子宮) 「명사」 『의학』 여성의 정관의 일부가 발달하여 된 것으로 태아가 착상하여 자라는 기관. ≒자호, 포궁. <표준국어대사전>
자궁 子宮 포유류의 암컷에서, 수정란이 착상하여 분만 때까지 발육하는 기관. <한국어대사전>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 중 정관은 수란관이라고 해야 맞는다. 고려대에서 만든 <한국어대사전>에서는 제대로 돼 있다.

‘흰색’이나 ‘하얀빛’의 설명에도 허술한 부분이 있다. 흰색은 “눈이나 우유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한 색”이라고 돼 있다. 하얀빛은 “깨끗한 눈이나 밀가루와 같이 밝고 선명한 흰빛”으로 정의돼 있다. 우유나 밀가루가 밝고 선명한 색이라는 데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영어 사전을 찾아봤더니 설명의 한 항목에 ‘신선한 눈이나 우유의 색깔’로 돼 있는데 여기서 빌려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혼돈’(餛飩)이란 항목을 보면 “밀가루나 쌀가루 반죽을 둥글게 빚어 그 속에 소를 넣어 찐 떡”이라고 돼 있다. 중국 음식이라는 말이 없다. 게다가 떡이 아니라 만두다. 중국 발음은 ‘훈툰’이다.

너무 어려운 뜻풀이도 문제다. 김치의 재료로 쓰이는 배추는 이렇게 돼 있다.

배추 「명사」 『식물』 십자화과의 두해살이풀. 길이가 30~50㎝이며, 잎이 여러 겹으로 포개져 자라는데 가장자리가 물결 모양으로 속은 누런 흰색이고 겉은 녹색이다. 봄에 십자 모양의 노란 꽃이 총상(總狀) 화서로 핀다. 잎·줄기·뿌리를 모두 식용하며, 비타민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 한국,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백채, 숭채. (Brassica campestris subsp. napus var. pekinensis)

박 전 교사는 “뜻풀이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무슨 말에 대한 설명인지 물어보니 대부분 사람들이 몰랐다”며 “식물학자들이 백과사전에 실어놓은 것을 요약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배추꽃이 총상 화서로 핀다고 하였는데 이는 사전을 만든 사람들이 배추꽃을 한번도 보지 않고 책상머리에서 일본 사전을 베낀 탓”이라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다.

새로운 설명이 없이 무의미한 동어반복이 나열된 경우도 많다.

당리-당략(黨利黨略) 「명사」 당리와 당략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운-불삽(雲黻翣) 「명사」 운삽(雲翣)과 불삽(黻翣)을 아울러 이르는 말. ≒삽선, 운아삽.

단어를 그냥 나눠놓았다고나 할까. 사전 편찬 방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찌 이런 설명을 할 수 있을까?

또 하나 국어사전의 문제점은 “쓸데없는 외국어들이 난무한다”는 것이다.

포드콘(pod corn) 「명사」 옥수수를 자실(子實)의 형태에 따라 분류한 가장 원시적인 종류.
키니식스(kinesics) 「명사」 『언어』 말을 할 때에 자연히 나타나는 몸짓·손짓의 의미를 연구하는 학문.
롬바드 레이트(Lombard rate) 『경제』 유통 증권을 담보로 빌린 돈의 이자.
슈푸르(Spur) 「명사」 『체육』 스키에서, 설면(雪面)에 생긴 활주(滑走)의 자국.

스키를 좋아하고 잘 타는 사람들도 슈푸르란 단어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듯하다. 기술적인 부분을 설명하는 전문적인 책에나 나오는 용어기 때문이다. 이 밖에 독일이나 스웨덴 등 외국 인물 관련 항목도 의외로 많다. 이런 용어들을 굳이 국어사전에 실어야 할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다.

이런 용어들에 자리를 뺏긴,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말들은 빠져 있다. 건배사, 앞접시, 산꾼, 별점(별 모양의 표로 표시하는 점수), 유부초밥, 해물파전, 파절이, 파채, 거북목, 일자목 등은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다. 다만 일부 단어들이 ‘우리말 샘’에만 실려 있다. 우리말 샘은 <표준국어대사전>을 보충할 요량으로 일반인이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개방형 사전이다.

<국어사전 혼내는 책>의 지은이 박일환씨가 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국어사전 혼내는 책>의 지은이 박일환씨가 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완전히 갈아엎고 새로 만들어야

박일환씨는 <미친 국어사전>(2015년)을 내고 난 뒤에도 4년 동안 국어사전의 잘못된 부분이 계속 드러나 <국어사전 혼내는 책>(2019년)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책을 낼 때 ‘미친’이라는 단어가 조금 지나친 감이 있었는데, 출판사에서 원고를 읽어보더니 ‘미친’이란 단어가 아주 적절하다며 그대로 가자고 했다”며 “사전을 보면 볼수록 잘못된 부분이 점점 늘어나 또다시 책 한권 분량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1999년에 발간된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점은 너무 심각하다”며 “국어사전을 완전히 갈아엎고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전교조에 가입해 4년여 해직을 당하기도 했던 시인이자 소설가인 박 전 교사는 30여권의 책을 출판했다. 2017년에는 세월호 아이들을 주제로 한 소설 <바다로 간 별들>을 썼고, 올해엔 사회·현실 비판을 담은 시집 <등 뒤의 시간>을 냈다. 그는 현재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관계자의 제안으로 북한 사람들이 쓰는 말과 생활상, 문화를 담은 책을 준비하고 있다. 학교에서 국어 교재 등으로 쓰기 위한 것이다. 그는 이제 박물관을 찾아다니면서 우리말을 발굴할 참이다. 활 박물관에 가면 활과 관련된 말들을 만날 수 있고, 도자기 박물관에 가면 도자기 관련 용어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엔 흔하게 쓰였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말이 너무 많다. 국어사전 혼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말을 살려내는 데 힘을 쏟겠다.”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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