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선일이비즈니스고교 김숙례 취업지도부장과 전지우 학생이 지난 1일 학교 창구사무실에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팔 상품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찍기 위해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김학준 선임기자
“Hello! I’m Jiwoo Jeon. Today I wanna show you some pretty interesting goods. And introduce them in detail. …”
지난 1일 오전 서울 은평구 선일이비즈니스고등학교 창구사무실. 마케팅경영학과 3학년 전지우 학생은 생글생글 웃으며 에어팟 케이스를 자세히 설명했다. 김숙례 취업지도부장은 카메라를 지켜보며 지우 학생이 제대로 설명을 하는지, 손짓과 몸짓은 적절한지 하나하나 점검을 했다. 지우 학생이 몇 차례 실수하기는 했지만, 유창한 영어로 자신감 있게 상품 설명을 이어갔다. 이들은 외국인을 주요 대상으로 애플의 무선 이어폰인 에어팟 관련 액세서리를 파는 온라인 쇼핑몰 케이스바이케이스(
http://casebuycase.shop)를 개설한 뒤, 외국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상품을 소개하는 홍보 동영상을 찍는 중이었다. 전양은 “이것 말고도 여러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릴 준비를 해놓고 있다”고 말했다.
석 달 만에 뚝딱 쇼핑몰 구축
케이스바이케이스의 본격적인 작업은 지난 5월7일 시작됐다. 교육부의 글로벌 현장학습사업에 응모해 선정된 직후였다. 사전 준비는 해왔지만 실제로 준비한 기간은 석 달도 안 되는 셈이다. 어떤 아이템을 할지 선정하는 작업을 가장 먼저 진행했다. 아이돌 굿즈, 액세서리, 에어팟 케이스와 키링, 보정속옷, 아이캔디 브러시 등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가능성이 있는 아이템들을 1차로 골랐다. 아이돌 굿즈가 탐이 나기는 했다. 아이돌 인형에 옷을 입히고 모자를 씌우고 신발을 신기고 액세서리를 달아주는 게 요즘 대유행이다. 이 사업은 불황을 모른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렇지만 소규모 자본을 가지고 뛰어든 학생 창업으로는 엄두를 내기가 힘들다. 가격도 비싸고 인기의 변화가 너무 심해 성공 가능성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김 부장과 지우 학생은 여러 차례 논의 끝에 값도 비싸지 않고 젊은 층의 수요도 많은 에어팟 케이스와 키링(열쇠고리), 아이캔디 브러시로 결정했다. 운영자인 지우 학생의 연령대를 겨냥한 점도 작용했다. 선일이비즈니스고가 해외취업과 해외창업의 목표로 정한 싱가포르의 잠재 소비자들에게 물었더니 “살 의향이 있다”는 긍정적인 답이 돌아왔다.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라 자동차로 출퇴근하기보다는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한다. 출퇴근 시간에 음악을 듣는 등 에어팟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아마존이나 이베이의 우수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도메인 구매 및 홈페이지 디자인 등을 동시에 추진했다. 물건을 사들이고 상품 사진을 찍고 포장과 배송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는 3개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빠른 시간이었다. 쇼핑몰이 만들어지고 전 세계 온라인 지급 시스템인 페이팔의 사용허가를 얻으면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쇼핑몰 오픈 사실이 알려지지 않아 상품을 산 고객은 아직 없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조심스럽지만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쇼핑몰은 중국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느냐가 열쇠다. 중국 제품이 워낙 싸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내산 제품을 주로 취급하는데, 국산이 중국산보다 품질이나 디자인이 뛰어나 승산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지고 시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좋은 상품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런 상품을 찾으면 제조업체를 찾아가 공급계약을 맺었다. 지금 쇼핑몰에는 20가지 100여개의 상품이 올라 있다. 아직은 물건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새로운 상품을 찾아 올리고 다른 연령대를 겨냥해 아이템 발굴도 해나갈 참이다.
물건을 빨리 배송하려면 항공편을 이용해야 하는데 비용이 비싼 게 흠이다. 이들은 배송 비용을 줄이기 위해 주문 상품을 모아서 한꺼번에 보내는 방법이나, 많은 양의 물건을 미리 배송하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예를 들어, 물건 하나를 보내는 데 1만원이 넘는다면 10㎏을 보낼 경우 한 아이템당 싱가포르까지 배송료가 1천원도 안 된다는 계산이다. 싱가포르에 도착한 물건은 그곳에 있는 대행업체가 배송을 맡는다.
지우 학생은 판매·홍보 전략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상품을 홍보하는 사진을 찍는 데서부터 남다른 정성을 들인다. 여러 각도에서 보면서 가장 눈길을 끌 수 있는 사진을 찾아낸다. 물건을 보낼 때도 구매자에게 고맙다는 편지를 쓸 계획이다. 손글씨로 정성스럽게 써서 감동을 줘 재구매로 이어지게 하자는 셈이다. 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도 홍보하는 글과 영상을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에스엔에스(SNS)는 친구를 확장하기 쉬운 매체여서 틈나는 대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우 학생은 다음달 해외취업반 7명과 함께 싱가포르로 가서 1개월 동안 살면서 싱가포르 청소년들의 선호도 등 시장 조사를 하고, 그들을 상대로 벼룩시장도 열 예정이다.
창업 경험 쌓는 게 최우선 목표
지우 학생이 창업에 관심은 많았지만 원래 출발은 해외취업반으로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해외취업반에 뽑힌 뒤 영어 등 집중적인 교육을 받던 중 지난 2월 해외창업반으로 갈아탔다. 선일이비즈니스고는 지난해 처음으로 학생 10명을 싱가포르에 취업시키는 성과를 거뒀으며, 올해는 이를 기반으로 해외창업에도 나서기로 하면서 해외창업반을 새로 만든 것이다. 지우 학생은 3년 동안 학교에서 하는 ‘비 더 시이오(Be the CEO) 대회’에 나가 3년 연속 상을 받기도 했다. 비 더 시이오는 학생들이 조를 짜서 상품을 사다가 팔아서 이윤을 얼마나 남기는가 하는 ‘사장 되기 프로젝트’다. 지우 학생은 “이런 활동이 새롭고 재미가 있었다”며 “온라인 쇼핑몰 운영자에 응모해 선정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학교에 입학할 때도 그랬지만 대학에 진학할 생각은 없다”며 “쇼핑몰에 모든 것을 걸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김 부장은 해외창업을 성공시키기 위해 정성을 다 쏟고 있다. 그는 지우 학생이 졸업한 이후에도 청년창업 지원금을 받아 쇼핑몰을 확장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다. 그는 “큰돈을 벌기보다는 경험을 쌓는 것이 목표”라며 “해외창업을 성공시켜 앞으로 많은 학생이 도전하는 계기로 삼고 싶다”고 말했다.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
전지우 학생이 서울 시내 시장을 돌아다니며 아이템 조사를 하고 있다. 선일이비즈니스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