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해문씨는 획일적인 어린이 놀이터 개념을 바꿔 놀이를 즐길 수 있는 환경으로 개선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가 기획한 전남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편해문 작가 제공
“위험이 아이를 키운다.” 보통의 학부모들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말이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배우다 넘어져 무릎에서 피만 나도 부모들은 자기 몸이 상처를 입은 듯한 아픔을 느낀다. 약을 바른 아이는 편안히 잠들지만, 부모는 걱정에 잠이 들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위험이 아이를 키운다고?
동화작가(놀이운동가) 겸 놀이터 디자이너 편해문씨는 ‘안전한 놀이터’ 신화를 거부한다. 2012년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를 시작으로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를 거쳐 올해 <위험이 아이를 키운다>로 놀이터 3부작을 완성했다. 독일의 놀이터 디자이너 귄터 벨치히에게서 놀이터 디자인과 철학을 공부했고, 일본을 오가며 40년 모험놀이터의 산증인인 아마노 히데아키로부터 ‘모험놀이터’를 천천히 깊게 배우고 있다. 아시아와 중동과 유럽 아이들의 삶과 놀이와 놀이터를 사진에 담는 일을 10년 넘게 해왔다. 2022년까지 한국의 획일적 어린이 놀이터 생태계에 성찰의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는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를 만드는 책임을 맡고 있고, 지난해에는 시흥시 보건소와 함께 미세먼지에 대응하기 위한 첫 번째 공공형 어린이 실내놀이 공간 ‘숨 쉬는 놀이터’를 열기도 했다.
편해문씨는 획일적인 어린이 놀이터 개념을 바꿔 놀이를 즐길 수 있는 환경으로 개선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가 기획한 전남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편해문 작가 제공
편 작가의 놀이터는 개념부터 다르다. 그는 놀이터를 어린이가 ‘도전과 위험’을 만나고 그것을 실험하는 곳으로 정의한다. 놀이가 가치 있고 재미있는 가장 큰 까닭은 ‘위험’이 놀이 속에 있기 때문이다. 위험은 또 아이들 성장에도 중요한 요소다. 아이들은 다치면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다. 안전한 놀이터는 가상이고 신화이고 판매를 위한 마케팅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우리 가까이에 있는 따분하고 안전한 놀이터는 아프고 쫓기고 지루함에 지친 아이들을 품을 수 없다. 위험에 대한 불안이 진짜 위험이고, 안전에 대한 집착과 맹신이 가장 심각한 위험이다.”
전남 순천시 기적의 놀이터 1호 ‘엉뚱발뚱’에서 아이들이 놀이를 즐기고 있다. 편해문 작가 제공
그렇다고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리거나 위험천만하게 키우자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안전과 더불어 위험이 무엇인지 알고 스스로 그 위험을 피하거나 넘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때론 정면에서 위험과 맞닥뜨리기도 해야 하고, 더 나아가 위험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위험과 도전이 없다면 놀이터가 아니다.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확인하고 그 경계를 넘는 곳, 자기 몸은 자기가 돌보며 맘껏 노는 곳, 놀이의 시작은 파괴임을 깨달아 가는 곳, 도전과 실험과 파괴가 넘실대는 곳, 그곳이 바로 편 작가의 모험놀이터다. 그의 모험놀이터에서는 다섯 가지의 모토를 실현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자신의 책임으로 자유롭게 논다 △망가뜨리거나 부숴도 좋다 △성공과 실패는 변화하는 것이며 오로지 도전만을 긍정한다 △놀지 못해 영혼이 다치는 것보다 놀다가 뼈가 부러지는 게 낫다.
그는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항상 따라오는 창의력, 상상력 등의 강박에서는 벗어날 것을 강조한다. 창의와 상상력이라는 당위적 명제로 포장하는 순간 놀이의 자유는 자리를 빼앗기고 만다는 것. 그는 “창의라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데서 나온다. 창의의 핵심은 위험에 있고, 위험을 피하려고만 하는 곳에 창의력이 깃들 수 없다”고 반박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한 어린이 놀이터의 모습. 편해문 작가 제공
편 작가가 귀촌해 14년째 살고 있는 경북 안동 집 앞마당은 그의 실험실이다. 그는 앞마당을 자신의 아이들을 포함한 동네 아이들에게 개방해 수년째 모험놀이터를 열고 있다. 아이들이 내키는 대로 놀이터를 구상하고 만들도록 했다. 공사장에서 쓰고 남은 합판과 목재, 장작 등을 가지고 못과 망치, 톱 등을 이용해 아지트를 만들거나 미끄럼틀, 누대, 암벽을 만들어 즐긴다. 그러다 재미가 없어지면 부수고 다시 만드는 작업을 계속한다. 판자가 좁고 두께가 얇아 위태위태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그런 아슬아슬함을 더 즐긴다. 어른은 아이들을 오며 가며 지켜보면서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재료와 도구를 찾고 쓰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언제든지 가고 싶을 때 가서 놀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편 작가와 같은 플레이워커는 그런 환경을 가꾸는 존재다.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이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존재다. 그는 앞마당에서 한 몇년 동안의 실험 결과,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부모들은 못 느끼겠지만 아이들이 해마다 달라지고 성장했다는 것을.
그런 그도 스마트폰이나 게임에는 다소 너그럽다. 놀이 운동을 20년 가까이 했으니까 부정적일 것으로 생각할 사람들이 있겠지만, 두 환경이 아이 가까이 실제로 존재하고 모두 필요하다는 중립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다만 위험한 놀이와 디지털 놀이 사이의 균형의 필요성에 무게를 싣는다. 그는 또한 부모는 아이들의 ‘디지털 모델’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편 작가는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를 쓰고 7년이 지나 세 번째 책이 나왔지만, 아이들의 놀이 환경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아니 되레 나빠졌다는 진단이 맞겠다. 어른들 삶이 점점 더 바빠지면서 아이들도 놀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아이들 자신도 “꼭 밖에서 놀아야 해? 안에서도 볼 수 있는 게 많아!”라며 논다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놀 시간이 이렇게 사라졌고, 그에 따른 아이들의 비만, 우울, 불안, 무기력이 늘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아이들의 자해도 늘고 있는데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 것이 쌓였기 때문이고 아이들이 만나야 할 위험을 미리 제거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아이로부터 위험을 숨겨 위험과 만날 수 없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위험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이 두려워 아이들로부터 놀이를 빼앗으면 아이는 한없이 무기력해질 것이다.”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