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곡성군 삼기초등학교 김점선 교사와 아이들이 지난달 출판된 책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점선 교사 제공
전남 곡성군 삼기초등학교는 전교생 33명의 조그만 학교다. 웬만한 도시의 한 학급 규모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엄청난 일을 해냈다. 전교생이 한 아이도 빼놓지 않고 자신들의 체험과 경험을 책으로 만들어내 작가가 된 것이다. 동화작가이기도 한 김점선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써낸 또 다른 동화 속으로 들어가 본다.
이들의 이야기는 작년부터 시작된다. 김 교사는 3학년 아이들 9명과 함께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연계하여 감정 그림책, 사회 그림책, 수박 그림책 등 15권을 만들었다. 수박 그림책은 학교 텃밭에서 수박을 키우는 얘기를 담았다. 아이들은 수박씨에서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수박이 열려 커가는 모습을 매일매일 관찰했다. 열심히 물을 주면서 하루빨리 수박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김 교사와 아이들은 수박 농사를 마친 뒤 아이들의 체험을 그림책으로 남기기로 했다. 아이들이 직접 경험과 느낌을 글로 쓰고, 그림으로 그렸다. 그리고 동시도 지었다. 그렇게 그들의 학교에서 키운 꿈이 <삼삼 수박이 자라면>이라는 책으로 탄생했다.
“아이들이 정성을 다해 수박을 키우고, 열심히 책을 만들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가장 능동적인 독서는 창작이라고 했는데, 독서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직접 창작의 경험으로까지 이끌면 자신과 우리, 세상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요.
”
김 교사는
그런 행복을 3학년만이 아니라 전교생이 맛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판된 책을 본 아이들과 다른 교사들의 요구도 많았다. 그러나 한 학급이 아니라 전교생이 참여하다 보니 인원이 많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모든 교사가 팔을 걷어붙였다. 작업을 도와줄 윤미경 동화작가도 초빙했다. 독서 활동과 글쓰기 교육도 꾸준히 하면서 책을 만드는 작업을 병행했다.
모든 아이가 다 스토리를 잘 쓰는 것은 아니다. 김 교사는 아이들이 이야기를 잘 풀어내도록 이끌어주는 데 집중한다. 아이들은 자기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잘 쓸 수 있다.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 있지만 아이들은 각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에겐 주위의 아무렇지 않던 것들이 특별한 경험이 된다.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아이도 있었고, 신나게 놀고 싶은 학교를 그려낸 아이도 있었고, 아이들이 관심 있는 게임 이야기도 소재로 올랐다. 또 아이들 주변에 흔한 축구공, 부엌의 도마 이야기를 그린 아이도 있었다.
삼기초등학교 아이들이 만든 책의 표지 사진. 김점선 교사 제공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과 아이디어를 나누고 스토리를 짜는 과정은 교사와 아이들에게 정말 재미있는 시간이다. 초고를 쓰고 나서 아이들은 자기의 스토리를 친구들과 이야기한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들이 쏟아진다. 다른 아이들의 생각이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다.
“아이들의 생각은 예상할 수 없거든요. 어른들이 생각하는 범위를 넘어서는 반짝반짝한 아이디어를 만나는 순간은 짜릿하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것에 대해 써봐’라고 할 때보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을 마음껏 써보라’고 할 때 재미있고 신기한 이야기가 나오죠.”
하지만 아이들에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쉽지만은 않다. 중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쓰겠다고 절반이나 완성한 글과 그림을 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 학생들도 있었다. 몇 달 동안 이어진 작업이 힘들고 고되지만, 완성된 책을 받아본 순간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낱장인 글과 그림을 볼 때와 완성된 한 권의 책을 보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지난해부터 서너 권의 책을 낸 아이도 있다. 아이들이 갑자기 작가가 되었다고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는 건 아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자신과 주변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게 된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떨 때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김 교사는 아이들이 책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이 책을 쓰는 작가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이 책을 만들면서 얼마나 많은 수고가 담겼을까? 자신도 작가라는 생각에 책을 즐기고 사랑하며 성의 있게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림책 1호 작가도 탄생했다. 올해는 학생 작품 수가 많아 편집업체에 의뢰했는데, 업체에서 5학년 김승찬 학생의 <비위 약한 도마>를 보더니 어른이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에 놀랐다며 정식 계약을 제안했다. 비위가 약한 도마가 두리안과 생선을 피해 가출한다는 이야기다. 승찬이는 평소 요리를 좋아했는데, 생선이 올려진 도마를 보며 “도마의 마음은 어떨까” 하는 상상을 이야기로 엮었다고 한다.
올해 9월에 전학 온 2학년 양희재 학생은 <신기한 학교에 전학 왔다>라는 책을 썼다. 8월에 책을 만드는 과정이 끝났기 때문에 희재 혼자만 책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됐는데, 김 교사는 개인지도를 해서 책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저는 순천에서 전학을 왔어요. 우리 반은 34명이었어요. 삼기초등학교는 네 명이에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지금은 신나요. 닭장에서 닭이 알을 낳아요. 아침에 닭장에 들렀다 와요. 우리 초등학교는 재미있고 신기한 일이 엄청 많아요.”
지난달 삼기초등학교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온 학부모들이 아이들이 만든 책을 살펴보고 있다. 김점선 교사 제공
승찬이의 책뿐만 아니라
나머지 32명의 그림책도 전자책으로 제작돼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삼기초는 지난달 8일 ‘앗, 눈부셔! 33명의 빛나는 작가들’ 그림책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아이들의 감동은 남달랐다. 각자 무대에 올라 자기 책을 소개하고 사인회도 가졌다. 아이들은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부쩍 커졌다.
김 교사는 올해의 경험을 모아 이런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있는 교사들의 안내서가 되도록 <아이들과 함께하는 신나는 책 쓰기 수업>이란 책을 냈다. “행복한 학교와 학급을 꿈꾸는 교사로서 아이들과 행복해지는 소중한 길을 발견했어요.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줄 아는 아이로 성장한다는 것은 교사로서 뿌듯하고 행복한 순간인 것 같아요. 아이들도 저도 모두 함께 작지만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