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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학생도 정치 주체인데...‘교실 정치화’ 우려는 시대 역행

등록 2020-01-20 05:00수정 2020-03-23 11:08

[18살 선거권, 교실로 간 민주주의]
학교 현장 혼란만 부각하는 건
민주시민으로 커갈 토론 막는 것
교사의 정치적 중립 우려도 딴지
2004년 8월5일 청소년 20여명이 서울 영등포구 열린우리당 당사를 찾아 ‘총선에서 공약한 만 18살 선거권을 보장하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2004년 8월5일 청소년 20여명이 서울 영등포구 열린우리당 당사를 찾아 ‘총선에서 공약한 만 18살 선거권을 보장하라\'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연령을 만 18살로 낮추도록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자마자, 일부에선 ‘교실의 정치화’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를 높여 왔다. 하지만 이런 우려들은 학생들에게 정치와 선거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를 키울 수 있는 데다, 교사들에게 아예 “입을 닫으라”는 식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로 지적된다.

대표적으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고3 학생들이 학교 안팎에서 선거운동, 정치활동이 가능해져, 교실의 정치장화와 학생들의 선거법 위반 등 갈등과 피해로 학교 현장이 혼란에 휩싸일 상황”이라며 “학교에서 누구든지 선거운동·정치활동을 금지·제한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지난 12일 “고등학교의 정치화 및 학습권·수업권 침해 등 교육 현장의 혼란이 우려된다”며 개정 공직선거법에 대한 ‘입법 보완’을 주문해 논란을 키웠다.

그러나 ‘교실의 정치화’란 말은 그 실체가 모호하다. 논란을 키운 ‘입법 보완’ 주문과 관련, 선관위 쪽은 “선관위가 개정 등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것은 아니다. 다만 언론 보도를 비롯해 사회적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높으니, 관련 법 조항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사실관계를 제시한 것일뿐”이라고 설명했다. 선관위도 무엇이 ‘교실의 정치화’인지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해당 용어를 썼다는 얘기다.

교육 현장에선 “‘교실의 정치화’ 담론은 기본적으로 ‘학생 유권자’를 미성숙한 존재로, 또 정치를 혐오의 대상으로 보는 기성 세대의 시각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한다. 허진만 학교시민교육전국네트워크 대표는 “교사들이 (정치화 운운하는 소리를) 듣게 되면 자신들에게 ‘입을 닫으라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고, 논쟁적인 이슈를 가르칠 때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서울시교육청이 3~4월에 모의선거 교육을 진행할 40개 학교의 명단을 당분간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이 무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서도, 교육 현장에서는 “정치와 선거에 대한 무관심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한다. 드러내놓고 토론할 수 있는 공적인 장이 없으면, 학생 유권자들이 왜곡되거나 편향된 정보만 습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허 대표는 “독일의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잘 지키는 것으로 교사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교사에 의해 강압적인 정치적 교화를 금지하고, 논쟁적 주제를 회피하지 않고 토론하고, 판단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치적 중립’을 빌미로 삼아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는 법·제도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토론의 주체는 학생이고 교사는 단지 ‘촉진자’(facilitator) 구실을 한다”는 것이 교육의 큰 흐름인데, 법·제도는 ‘교사가 학생에게 어떤 생각을 주입할 수 있다’는 낡은 틀로만 교육을 가두려 한다는 것이다. 윤상준 양명고 교사는 “정치적 중립성이 ‘정치 이야기는 안한다’는 식의 소극적 해석에 머물러 왔는데, 앞으로는 학생들의 정치적 판단 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교사가 균형잡힌 정보를 제공한다는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학생 유권자들이 다른 성인 유권자들과 달리 학교라는 공간에 속해있다는 조건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필요는 있다. ‘학생 유권자는 성인 유권자에 견줘 미성숙하다’거나 ‘학교가 정치와 선거의 공간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시각에서가 아니라, 학교라는 공간 속에서 다른 동료 학생들과 함께 교육과정을 이수해야 하는 등 교육기관으로서 학교와 그 속에 속한 학생 유권자의 특수성을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교육계에서는 “적어도 3월 전에 선관위가 학생 유권자와 관련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충분히 전파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선관위는 최근 “교육현장에 맞춘 운용기준과 사례 중심의 선거법 안내자료를 작성해 제공하고, 교육기관·학부모단체와 연계해 입체적 안내·예방 활동을 펴며, 정당·후보자 대상으로도 선거운동 안내자료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최원형 이유진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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