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공 같은 남자 중학생들
속엔 성장통으로 고민 가득
교사들, 경험과 지혜 모아
학생들 위한 길잡이 책 출판
독서하며 슬기로운 해결 유도
진심 전해져 공감 주길 기대
속엔 성장통으로 고민 가득
교사들, 경험과 지혜 모아
학생들 위한 길잡이 책 출판
독서하며 슬기로운 해결 유도
진심 전해져 공감 주길 기대
‘책 이야기 책’ 쓴 경희중 교사들
질풍노도의 시기, 우당탕탕 좌충우돌, 럭비공 같은 아이들. 남자 중학생들을 향한 외부 시선의 일부다. 남자 중학교인 서울 경희중 교사 26명이 모였다. 그리고 아무도 쓰지 않는 남중생들을 위한 책 이야기를 썼다.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책 이야기>. 교사들은 성장통을 앓고 있는, 감정의 변화가 심하고 행동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남중생들이 흔히 학교와 집 등에서 맞닥뜨리는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길을 알려줄 책을 골라준다.
책은 크게 ‘관계와 성장’ ‘세상 바라보기’ ‘꿈과 이상’ 등 9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그 안에서 ‘자기에게 닥친 문제를 회피하려고만 하는 학생에게’ ‘세상의 문제들에 대해 당당하게 맞서는 힘을 기르고 싶은 학생에게’ ‘이성 교제를 하는, 성에 관심이 많은 학생에게’ 등 좀 더 잘게 상황을 나눴다. 이렇게 나뉜 각각의 상황은 140여권의 책으로 연결됐다. 지난 한해의 프로젝트로 진행된 교사들의 사랑과 땀은 연말에 한권의 책으로 빛을 봤다. 교사들은 재학생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눠줬다. 올해 경희중으로 배정을 받은 학생들도 입학 기념으로 큰 선물을 받았다.
국어를 담당하는 안정선 교사와 홍봉여 사서 교사는 오랫동안 남중 학생들과 부딪히면서 그들의 열망과 고민과 좌절을 접하게 됐다. 이런 학생들을 책을 통해서 길을 찾게 해보자는 고민을 하다 ‘중학생을 위한 추천 도서 소개 책’을 써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안 교사는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가 수업 중에 쓴 글에서 ‘나도 아빠를 닮아 폭력적인 사람이 될까 봐 두렵다’는 대목을 읽고 마음이 아팠다. 도서관에 가서 사서 선생님께 ‘이런 학생에게 권할 만한 좋은 책이 뭐 없을까요?’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의논을 할 때마다 사서 선생님은 ‘딱이다’ 싶은 책을 권해주시곤 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들은 지난해 뜻을 같이하는 교사 10명으로 교원 학습 동아리 ‘너들이’를 만들었다. 첫번째로 전체 교사를 상대로 아이들이 읽을 만한 책을 추천받는 작업에 들어갔다. 추천받은 책을 추려보니 140여권에 이르렀다. 다시 글을 쓸 교사들을 물색했다. 동아리 10명 외에 16명의 교사가 추가로 참여했다. 교장, 교감 선생님도 빠질 수 없었다. 교사들의 선택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여 쓸 책을 26명에게 분배를 했다. 글쓰기 경험이 비교적 많은 교사들에게 무거운 짐이 실렸다. 안 교사와 또 다른 국어 교사인 박규태 교사, 그리고 시인인 정재학 사회 교사, 홍봉여 사서 교사 등이 그 무거운 짐을 자청했다. 안 교사는 학생 상담 관련 책 등을 쓴 경험이 있고, 정 교사는 2004년 박인환 문학상, 2015년 젊은 시인상을 받은 중견 시인으로 편집장까지 겸했다.
학창 시절 읽었던 책이거나 자신의 관심 분야인 경우가 많았지만 그것을 글로 옮긴다는 것은 역시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여름방학은 자신이 맡은 책을 읽고 추천의 글을 쓰는 고난의 시기였다. 더위와 땀과 아이디어와의 싸움이었다.
“어린 학생일 때 읽었던 것이라서, 다시 펼쳐보며 조금 다른 감상에 빠지기도 했고, 지금과는 달랐던 오래전의 나와 그 시절에 함께했던 기억 속의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다만 글을 쓴다는 부담감은 먹은 나이만큼이나 많아져서 마음 무더운 여름방학을 보냈다.”(김상희 교사)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권했고 도움을 받았다고 한 책을 골라 글을 썼다. 글을 쓸 때는 어렵다는 생각에 몇권 쓰지 못했는데 막상 책이 나오고 보니 더 많이 쓸걸 하는 후회도 되었다.”(김혜영 교사)
필명은 풀꽃, 이삐, 브로콜리, 손난로 등 친근한 단어들을 골라 썼다. 학생들에게 선생님 별칭을 찾아보는 즐거움을 주고 선생님들 사이의 나이나 직위에 따른 권위를 내려놓고자 하는 의미도 있었다고 한다. 아이들도 거리감 없이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편집과 교정도 교사들의 손으로 했다. 표지도 디자인을 맡은 양수빈 교사가 아이디어를 내서 출판사에 넘겼다. 책을 보면 전반적으로 투박하다는 느낌을 받지만 그 속에서 사랑이 솟아 나오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원고는 그야말로 24시간, 어느 공간에서도 생각이 날 때마다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며 적었다. 8월엔 왼쪽 손가락이 골절되어 병원에 입원했는데 수술 후 병원에서도 노트북을 열어 글을 쓴 적도 있다. 되도록이면 나의 경험과 생각, 인생의 이야기들을 많이 녹여서 글 속에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그렇게 글을 써야 그 속에 제 진심이 담길 것이고 학생들이 제 마음과 생각에 공감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박규태 교사)
애초 자료집으로만 만들려고 생각했다. 원고가 모이면서 책으로 만들기로 욕심을 부렸다. 자료로만 쌓아놓기에는 원고가 너무 좋았다. 단행본이 나온 뒤에는 정식으로 출판해 서점에서 평가받고 싶었으나 그 욕심은 접었다. 책 표지 사진의 저작권 등이 걸림돌로 나타났다.
“학생들과 함께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아이들을 너무 어리게만 생각했다는 점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내가 사고하는 것과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엄재홍 교사)
경희중에서는 책을 원하는 다른 학교 교사나 학생들이 있으면 기꺼이 나눠줄 계획이다. 글쓰기에 참여한 교사들도 책을 받아 들고 뿌듯함을 느꼈다. 앞으로 2∼3년 후에 새로운 책을 골라 다시 한번 더 쓰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은 어린이일까, 소년일까? 그들은 귀여울까, 징그러울까? 순수할까, 막돼먹었을까? … 아름다운 내 소년들. 그렇게 문학작품에 심취할 때엔 그토록 맑게 빛나건만, 쉬는 시간에 매점으로 달려갈 땐 왜 다들 멍냥이들 같은 게냐, 너희들? 이중성 쩐다, 증말….”(본문 중에서)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
서울 경희중 교원 학습 공동체 ‘너들이’ 선생님들이 작년에 출판한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책 이야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 너들이 제공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책 이야기>. 교사들은 성장통을 앓고 있는, 감정의 변화가 심하고 행동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남중생들이 흔히 학교와 집 등에서 맞닥뜨리는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나갈 길을 알려줄 책을 골라준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