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희 충남교육청 장학사(왼쪽 둘째)와 문금자 천안제일고 교장(오른쪽 둘째), 교사들이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제일고 스마트 팜 제어시스템을 보고 있다. 천안제일고 제공
‘스마트 팜’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농어촌 인구 감소와 노령화에 따른 필연적인 흐름이다. 스마트 팜은 농수산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환경 자동제어 프로그램에 따라 농업이나 양식업을 운영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농수산업처럼 오래된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 결과를 종합하고 빅 데이터까지 활용한 과학적인 농수산업이다.
최근 스마트 팜이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첨단기술의 활용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 할 수 있다. 스마트 팜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작물이나 어패류의 생장 등에 영향을 주는 환경 변수를 정확하게 제어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빅 데이터가 부족하고 분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마트 팜을 자동으로 관리하는 복합환경제어시스템(소프트웨어)도 많이 나와 있으나 말 그대로 저절로 돌아가는 데이터 기반의 자동제어는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 스마트 팜 활용 걸음마 단계
따라서 현 단계에서는 운영자 자신이 체계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온실이나 비닐하우스의 크기, 그 지역의 기후, 작물의 종류, 생육 상태 등이 다 다르기 때문에 스마트 팜마다 제어 방법도 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쌓아서 환경 변수들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스마트 팜의 이점을 제대로 향유할 수가 없다. 자동제어를 못 한다면 스마트 팜이 아니라 그저 값비싼 온실이나 비닐하우스일 뿐이다. 농협이나 연구원 같은 곳에서 스마트 팜 시스템 운영 교육을 하고는 있지만, 대체로 집합교육이라 수용 인원이 적고 스마트 팜을 운영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실습이 이루어지는 곳은 몇 곳 안 된다. 또 이 실습마저도 작물을 대상으로 다양한 환경제어를 실험할 수는 없으며 운영기술을 익히거나 시설을 견학하는 정도이며, 반복적이지 못하고 일회성에 그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충남교육청과 농업계 특성화고인 천안제일고는 요즘 방학기간에도 스마트 팜 교육 혁신을 하느라 분주하다. 교육청과 학교, 업계 대표자가 만나 연구하고 실습하기에 여념이 없다. 교육청과 제일고는 먼저 농업에 가장 중요한 스마트 팜 온실을 마련했다. 지난 2018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1500㎡ 정도의 대규모 시설을 새로 지었다. 온실을 자동제어하기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스템도 마련했다.
또한 농업계고의 발전 방향을 재설정하기 위해 서울대에 연구를 맡겨 스마트 팜, 식품바이오, 반려동물 등 세 트랙으로 결정했다. 이 중에도 특히 도시농업과 관련이 깊은 스마트 팜을 제1의 목표로 추진키로 했다.
2년 동안 운영하면서 드러난 스마트 팜 온실의 문제점도 개선키로 했다. 스마트 팜에 대한 전반적인 진단 결과, 이산화탄소 발생기·냉난방시스템·환기시스템 등이 미비해 발생하는 생육 부진 등을 해결하기 위해 추가로 설비를 도입하거나 기존 설비의 개선도 진행한다.
이와 함께 스마트 팜의 교육 활성화를 위해 스마트 팜 실습 교육시스템도 구축한다. 제일고는 스파트 팜의 기본 시설은 구축했지만 학생들이 환기창을 여닫거나 급수나 영양공급 등 실습을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작물을 키우면서 시스템을 잘못 운영하면 작물에 심각한 영향을 끼쳐 모든 작물을 하루아침에 다 죽이는 상황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각각의 변수들을 제어하고 그에 따른 결과를 예측하고 분석하면서 실질적인 운영 노하우를 쌓는 것이다. 이렇게 빅 데이터가 쌓이면 이 교육 시스템을 통해 데이터 기반의 스마트 팜 교육이 가능해진다. 이 시스템으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은 졸업 뒤 곧바로 스마트 팜 농업 창업을 할 수도 있고, 취업을 할 경우 즉시 스마트 팜 운영에 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천안제일고 교사들이 지난해 여름 제일고 스마트 팜에서 상추를 키우는 방법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천안제일고 제공
제일고는 학과와 교육과정 개편도 아울러 추진하고 있다. 기존의 학과와 교육과정은 미래 시스템인 스마트 팜 교육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안에 교육시스템 구축과 학과 개편을 마치고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스마트 팜 교육을 시작할 예정이다. 올해엔 과도적으로 스마트 팜과 직접 관련이 있는 원예조경과뿐만 아니라 농공과와 유통과를 합쳐 융합과정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새로운 시스템에 맞춘 교사들의 연수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스마트 팜의 구조와 운영 방법 등을 알기 위해 농업전기 분야 연수를 실시한 데 이어 올해 초엔 스마트 팜의 자동제어 원리인 시퀀스제어에 관한 교육을 했다. 그리고 올해엔 온실 사물인터넷(IoT) 및 제어장치 실무에 필요한 프로그램 교육의 일환으로 아두이노 실습 연수를 실시할 계획이다.
■ 전국 특성화고에 확산 가능성
혁신을 지휘하고 있는 공정희 충남교육청 장학사는 “정부의 확산 정책 등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스마트 팜은 잘 지어졌으나 시설만 번지르르하고 운영이 제대로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우리 교육청과 천안제일고가 힘을 합쳐 전국에서 처음으로 학생들을 상대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론 교육과 실습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교육시스템 구축을 시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스마트 팜이 처음이기 때문에 운영 과정에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며 “앞으로 교사와 학생이 함께 문제점을 연구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라고 덧붙였다. 문금자 천안제일고 교장도 “기존 시설 중심의 스마트 팜을 ‘실효성 있는 교육 중심’의 스마트 팜으로 개선할 수 있어 다행이고 아울러 올해 학교 인근에 지어지는 특허청의 미래교육원(창업발명교육센터)과 천안아산역에 들어설 충남도, 천안시, 아산시가 함께 추진하는 창업단지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농업계 특성화고의 스마트 팜 교육 도입이 가능하게 된 것은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인 황주홍 민주평화당 의원의 역할이 컸다. 그는 고교 교육의 현실을 깨닫고 지원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2019년 초 농어업인 지원 특별법 개정을 밀어붙여 관철했다. 이에 따라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이 특성화고에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농업계고의 가상 시뮬레이션과 빅데이터를 연계한 스마트 팜 교육 시스템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전망이다. 김천생명과학고도 천안제일고와 같이 올해 스마트 팜 교육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이미 천안제일고 등 3개 농업계 고교에 스마트 팜 구축 사업을 위해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지원한 대·중소기업·농어업협력재단은 농업계고에 대한 지원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