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시 통진고 에이럴(AIral) 팀 학생들이 지난해 12월 열린 현대모비스 주최 ‘청소년 공학 리더 자율주행차 경진대회’에서 자율주행차 코딩을 하고 있다. 통진고 제공
읍 단위 농촌 고등학교의 반란이다. 경기도 김포시 통진읍 통진고 에이럴(AIral) 팀의 영화 같은 이야기다. 에이럴 팀은 지난해 말 열린, 현대모비스와 한국공학한림원이 공동 주관한 ‘청소년 공학 리더 자율주행차 경진대회’에서 쟁쟁한 상대들을 물리치고 대상을 차지했다. 역전에 역전이 거듭된 그야말로 극적인 경기였다. 에이럴 팀도 놀랐지만 다른 우승 후보팀들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에이럴은 인공지능(AI)과 바이럴(Viral)의 합성어로, ‘인공지능이 대세’라는 뜻이다. 영어를 담당하는 황인철 지도교사의 아이디어다.
2018년 3개 학교로 처음 시작된 이 대회는 지난해 전국 8개 고등학교 45개 팀이 참여했다. 각 학교를 돌며 예선을 치러 그중 성적 상위의 16개 팀이 한자리에 모여 실력을 겨뤘다. 현대모비스가 제공한 자율주행차로 신호등과 차단기가 있는 정해진 트랙을 누가 빨리 탈선하지 않고 도느냐로 승부를 가린다.
지난해 12월21일 인천 하늘고에서 열린 본선 토너먼트. 에이럴 팀은 2차전에서 동화고 이놈(Inno. M) 팀에 지는 바람에 패자부활전으로 밀렸다. 경험도 많지 않은데다 처음 출전하는 팀이라 크게 아쉬움은 없었다. 욕심을 내려놓은 것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듯하다. 한 팀만이 결승에 오르는 패자부활전도 아슬아슬했다. 에이럴 팀은 초반에 한 번 탈선을 해서 98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예선에서 1위를 했던 하늘고 햄이사(Prominent Hamisha) 팀이 속도도 빠르고 실수도 하나 없이 결승선으로 내달리면서 에이럴 팀 멤버들은 ‘이제는 탈락이구나!’ 하면서 낙담 분위기였다. 그런데 햄이사 팀이 결승선 직전에 설치된 신호등에서 멈추지 않고 지나가는 바람에 5점 감점을 당했다. 에이럴 팀이 극적으로 결승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에이럴 팀은 패자부활전에서 1위를 하면서 토너먼트 결승 진출 두 팀 하나고·동화고 등 세 팀이 겨루는 결승전에서 다시 진검승부를 벌이게 됐다.
결승전은 토너먼트나 패자부활전과 달리 결승선을 지난 뒤 오른쪽 트랙가에 차를 세우는 새로운 과제(돌발 미션)가 나왔다. 코드를 짜거나 수정하는 시간은 30분. 에이럴 팀은 코딩을 새로 해서 경기에 나섰다. 이들은 논의해서 차선 인식 관련 코딩을 단순화시키고 정지 알고리즘을 추가하는 전략으로 결승전에 나섰다.
결승전의 경기 순서는 에이럴 팀이 마지막이었다. 1라운드에서 동화고와 하나고 팀이 잇따라 탈선을 하고 돌발 미션에 실패하면서 경기장에서는 재경기 우려가 커졌다. 모든 팀이 돌발 미션에 실패할 경우 재경기를 하겠다는 주최 쪽의 사전 공고가 있었다. 에이럴 팀마저 돌발 미션에 실패할 경우 돌발 미션의 코딩이 전체 코딩을 꼬이게 했을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경기장의 분위기와는 달리 에이럴 팀은 다소 안도감을 느꼈고, 우승에 대한 기대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장내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에이럴 팀의 자율주행차가 출발했고, 감점 없이 돌발 미션을 무사히 마쳐 만점을 기록했다. 2라운드도 1라운드와 비슷하게 진행되면서 에이럴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에이럴 팀의 자율주행차가 트랙을 완주하자 체육관을 울리는 박수가 터졌다.
팀의 리더인 안중원 학생은 “이렇게 큰 대회에 출전하는 것만으로 감격스러웠는데 대상까지 받게 되어 굉장히 기뻤다”고 당시 소감을 밝혔다. 이승현, 김진석 학생은 “팀원 5명이 밤늦게까지 모여서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빛을 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유일한 여학생인 채종은 학생은 “우리는 자율주행차 키트를 받은 그대로 조립해 사용했는데 다른 팀들은 무선 안테나를 두 개 사용하거나 차량 외부로 옮기는 등 개선 작업을 한 것을 보고 배운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현대모비스 자율주행차 경진대회에서 김포시 통진고 에이럴(AIral) 팀 김진석 학생이 트랙 옆에서 자율주행차가 주행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통진고 제공
에이럴 팀의 우승 배경에는 분업과 협동, 양보가 자리했다. 각자의 능력을 살려 코딩·하드웨어·주행 등으로 분담했다. 문제가 생기면 모두 모여 다시 한번 브레인스토밍을 거쳤다. 또 두 팀이 본선에 올랐으나 최상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한 팀으로 통합했다. 협업을 통해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라는 학생들의 서로에 대한 이해와 양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체육관이 없어 기숙사에 있는 다목적실에서 연습을 했는데 실제 경기는 넓은 체육관에서 이뤄져 연습에 불리한 측면이 있었으나 땀과 노력으로 극복했다. 박진 학생은 “알고리즘과 코드를 잘 짜는 사람이나 하드웨어를 잘 만지는 사람과 같이 각자의 장점을 잘 활용하여 협력한 결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며 “이번 경진대회에서 이러한 분업의 효율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팀을 이끌어온 황인철 교사는 “학생들에게 도전정신과 자신감을 심어주고 우리에게 기회가 드문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기술인 코딩을 학생들에게 경험하게 하려고 팀을 꾸려 경기에 참여했는데, 연습도 많이 못 한 첫 출전에서 뜻밖에 우승까지 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팀들의 코딩은 한국공학한림원이 발행하는 학술지 <청년공학>에 실릴 예정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알고리즘을 소개하는 논문을 써야 하는데 한림원의 교수가 논문 작성을 도와줄 예정이다.
트랙과 자동차가 똑같기 때문에 코딩을 잘한 팀이 우승할 것이라는 예상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경기장마다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코드를 수정해야 한다. 자동차에 달린 센서가 빛이나 경기장 주변의 사람 수 등에 따라 달리 반응하기 때문이다. 또 라이다 센서, 카메라와 컴퓨터가 데이터를 주고받는 반응 시간도 달라진다. 이런 변수에 대해 제대로 코드를 수정하느냐가 승부의 열쇠다.
이 대회는 공학한림원이 현대모비스와 함께 진행해온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주니어 공학교실’을 고등학생으로 확장한 것이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자율주행차 연구가 활발하지만 고교생들은 장비 등이 비싸 일부 도시 학교에서만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해온 김보훈 한국공학한림원 책임연구원은 “자율주행차는 인공지능, 통신, 코딩 등 신기술의 융합체로서 학생들에게 교육적 효과가 크다”며 “정부와 기업 등이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늘려 전국으로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김학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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