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을 위한 교실 속 역사 영화 읽기>를 펴낸 유득순 교사(경북기계공업고)는 “역사 공부야말로 차이를 긍정하는 습관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역사 공부를 통해 ‘나 혹은 우리’와 다른 시대·문화를 긍정할 수 있도록 사고력을 키우게 되는 과정 자체가 역사 공부인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수능 필수 과목, 성인들에겐 교양과 상식이다. 외워야 할 것 많고 지루하기도 하다. 한데 이야기로 들으면 폭 빠지기도 한다. ‘역사’ 하면 생각나는 말들이다.
역사 공부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10여년 전 국사는 문과생, 그중에서도 특정 대학을 가려는 학생들만 선택해 공부하던 과목이었지만, 2016년부터 수능 필수 과목으로 지정됐다. 문·이과 관계없이 모두 배워서 시험까지 치러야 하는 주요 과목이 된 것이다. 학생이라면 좋든 싫든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한국사를 배워야 했는데, 2019년부터는 ‘2015 개정교육과정’이 시행되면서 그 시기가 2년 더 앞당겨졌다. 열 살 때부터 10년간 한국사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학교 시험으로든 성인 교양으로든, 피할 수 없는 게 바로 역사 공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보자. 쉴 틈 없이 방영되는 사극 드라마, 역사를 다룬 다양한 영화와 다큐멘터리, 박물관, 웹툰으로 재탄생한 실록, 아이 책상 위에 놓인 지구본이나 세계지도까지, 주변의 모든 것들이 ‘역사적’ 대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 영화라는 창구 통해 재밌게 배워보자
우리는 왜 역사를 배워야 할까? 역사 공부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그 의미와 필요성을 묻는 사람도 많이 늘었다. <선생님들을 위한 교실 속 역사 영화 읽기>를 펴낸 유득순 교사(경북기계공업고)는 “역사 공부야말로 차이를 긍정하는 습관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연대표를 외우거나 특정 시대의 예술‧문화를 암기하는 것도 물론 역사 공부법 중 하나다. 다만 궁극적으로는 역사 공부를 통해 ‘나 혹은 우리’와 다른 시대·문화를 긍정할 수 있도록 사고력을 키우게 되는 과정 자체가 역사 공부인 것이다.
‘장영실’ ‘허준’ 등 학생들은 대체로 위인전을 통해 역사 속 인물을 처음 만난다. 이때 책에 담긴 이야기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면, 책 내용으로만 인물의 모습을 기억하며 그것이 오래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이때 부모가 먼저 책을 살펴보고 인물의 위대성뿐 아니라 다양한 모습을 입체적으로 다룬 책을 골라 아이와 함께 읽으면, 자연스럽게 인물에 대한 작은 토론도 할 수 있고, 아이가 한 인물에 대해 하나의 인상만 가지고 책을 덮는 일을 막을 수 있다.
보호자들은 텔레비전에서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 드라마가 방영될 때 “저게 정말 있었던 일이냐”고 묻는 아이의 질문을 피하지 않는 게 좋다. 온 가족이 역사에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함께 책을 찾아보고 검색한 뒤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그 짧은 한두 시간이 아이에겐 역사를 외우지 않고 이해하는 습관을 기르는 훌륭한 계기가 된다. 중심이 되는 사건을 여러 인물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며 대화를 시작하면 모든 일에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평가할 수 있다는 생각의 힘을 기를 수도 있다.
■ ‘보고 읽고 팩트 체크’ 나만의 공부법
영화로 역사를 공부할 때 순서는 ‘보고, 읽고, 팩트 체크하기’ 3단계로 나뉜다. 예를 들어 영화 <신기전>에는 첨단 무기를 만들어 명나라로부터 조선을 지키려는 세종대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와 영화를 본 뒤 도서관에서 관련 실록을 찾아 읽어보거나 역사 칼럼을 검색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역사 영화 기록장’ 혹은 ‘역사 영화 포트폴리오’라는 노트를 한 권 만들어 직접 적고 스크랩해가며 ‘나만의 역사책’으로 정리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노트 한 면을 가로로 세 부분으로 나눠 첫째 칸에는 영화 <신기전>을 감상한 뒤 간단한 평가를 4~5줄 써본다. 영화 혹은 인물평도 좋고 그 시대에 관한 감상평도 좋다. 둘째 칸에는 도서관이나 서점 등에서 찾은, 해당 시대에 관한 책을 읽어본 뒤 영화와 책을 비교해 팩트 체크를 해보는 것이다. 이를테면 한글을 만든 ‘문과형 왕’인 줄 알았던 세종대왕의 호전적 면모를 알게 됐다거나, 당시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를 다룬 책을 추가로 찾아 읽어보는 것도 좋다. 그 시대의 외교관계까지 톺아보며 시대 흐름을 보는 눈을 키울 수 있다. 셋째 칸에는 그 시대 왕의 계보를 간단히 그려 넣거나 당시 세계사의 흐름은 어땠는지 직접 찾아 써넣어보자. 이렇게 역사 영화 한 편으로 재미와 교육,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영화 <명량>은 선조 재위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왜군의 침략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왕마저 백성을 버리고 피신한 와중에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협에서 단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을 무찌르게 된다. 영화를 통해서 혼란스러운 전쟁 시기에 이순신 장군의 인간적 고뇌를 엿볼 수 있고 멋진 해전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임진왜란(선조 25년, 1592)과 정유재란(선조 30년, 1597)의 역사적 아픔도 마주하게 된다.
적의 대선단이 가까이 왔다는 첩보에 동요하는 부하들을 독려하기 위해 주둔지를 불태우고 더는 물러설 곳도 없다며 그 유명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명언을 외치는 장면도 나온다. 이를 통해 이순신 장군의 용맹스러운 모습은 선조의 무능한 모습과 대비되어, 진정한 리더는 어떤 모습인가에 대한 생각도 해볼 수 있겠다.
역사 영화를 시대별로 묶어 보는 것도 추천한다. <영화, 한국사에 말을 걸다>를 펴낸 박준영씨는 “조선 후기라면 <대립군> <명량> <사도> <역린> 등이 있고, 일제강점기를 다룬 영화로는 <밀정> <암살> <동주> <군함도> <항거: 유관순 이야기> 등이 있다”며 “1940년대 후반 해방 정국 및 한국전쟁, 민주화운동 등을 다룬 영화로는 <태백산맥> <태극기 휘날리며>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화려한 휴가> <남영동 1985> 등을 추천한다”고 했다.
■ 수업에 활용할 때 어떻게?
실제 수업 현장에서도 영화와 역사를 접목해 가르칠 수 있다. 고교 1학년 한국사 ‘국외 민족 운동의 전개’를 보면 학습 주제를 ‘독립운동 영화 시놉시스 작성하기(과정 평가 연계 수업)’로 잡고 수업을 설계해볼 수 있다.
유득순 교사는 “역사를 영화로 완벽히 배울 수는 없다. 다만 영화 등 창작물을 통해 역사가 어떻게 기록돼 있고 평가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관점을 보여줄 수 있어 활용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역사를 한 가지 관점의 ‘절대 진리’로 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재평가’해볼 수도 있다는 것이 영화로 역사 수업하기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학생들도 자기 생각으로 표현하고 싶어 하거든요. 팩트를 토대로 하되 역사 역시 영화, 소설 등을 통해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공부라고 여기면 수업이 살아납니다.”
지난 2018년 8월30일 유득순 교사(왼쪽 세번째)가 ‘영화로 역사 읽기’ 공개수업을 하고 있다. 유득순 교사 제공
유 교사는 수업을 설계할 때 역사 영화를 단순한 흥미의 대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역사적 진실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영화 <밀정>을 예로 들면 허구 속에 내재된 역사적 진실을 찾아가는 작업에서 사고력을 확장시킬 수 있다. 유 교사가 만든 활동지에는 영화 전체 줄거리를 요약한 뒤 인물 관계도를 직접 그려보는 칸이 있다. ‘영화 대 역사’라는 표가 있어 실제 역사와 영화 속 내용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 쓰는 칸도 있다.
탐구 주제로는 <밀정> 속 인물들의 삶,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하면서 의열단 활동 등 주요 사건의 배경이 되는 시기와 공간을 직접 찾아내 쓰도록 한다. 마지막으로는 영화 속 인물의 입장이 되어 ‘경성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지 그 이유와 함께 적어보자’ 등의 과제를 준다. 조사 내용의 출처 또는 근거는 항상 활동지에 적게 한다. 역사는 팩트 체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 교사는 영화로 역사 공부하기에 관해 “우리가 살면서 고민스러운 순간들, 앞을 잘 모르겠는 순간들에 관해 역사는 힌트를 준다”며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내가 교훈을 느낄 수 있는 지점 등을 찾아가다 보면 역사 공부 자체가 흥미로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유 교사는 “역사 공부가 적을 만드는 방식이어선 안 된다. 순국선열에 대해서도 학생들이 죄책감을 느끼는 방식은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역사는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게 매력이지요. 이분법적 구분, 선과 악의 구도로만 역사를 접하면 국수주의나 민족주의로 빠지게 될 염려도 있습니다. 영화로 역사를 공부할 때에 구조적이고 세계사적인 통찰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지요.”
김지윤 기자
kimjy13@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