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용화고 학생이 수업시간에 진로와 관련된 책을 읽고 학생들 앞에서 발표하고 있다. 임수진 교사 제공
국어 시간 하면 시와 문장을 외우고 내용을 분석해서 달달 외우던 옛날이 떠오른다. 삶과 진로를 담아 시를 짓고 동화를 쓰고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요즘의 국어 시간은 어떤 맛일까.
충남 온양용화고 임수진 교사는 국어 수업시간에 진로와 연계해 수업을 진행해 학생들의 흥미를 돋우는 한편, 장래 직업 선택에도 어느 정도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지난해 2학년 ‘언어와 매체’ 시간에 진로와 관련된 책 읽기 수업을 했다. 고교 국어 교육과정에 한 학기 한권 책 읽기라는 긴 프로젝트가 있는데 이것을 이용한 것이다.
수업 대상이 고등학생이라 주제를 진로로 잡았다. 수업시간에 읽기 활동을 하고 수행평가에도 반영함으로써 학생들이 과외로 책을 읽어야 하는 부담을 줄였다. 책은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있고 관심이 많은 학생들은 직접 사 오기도 한다. 임 교사는 학생들의 책 선택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책이나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을 가져와 제공한다. 요즘 학생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책들을 주로 고른다.
학생들은 먼저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한다. 그리고 피피티(PPT) 만드는 법을 배운다.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을 피피티로 만들어서 학생들 앞에서 발표한다. 직장이나 세미나에서 피피티가 일상화되어 있으므로 미리 맛보기로 배워두는 것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꼭 피피티만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등장인물별로 직접 만들거나 그린 인형을 가져와서 설명하는 학생도 있다.
또는 스케치북을 가져와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스케치북 고백 장면처럼 설명하는 학생도 있다. 임 교사는 기본적으로 테드(TED)의 강연처럼 내용, 작가의 의도, 자신이 배운 내용 등을 써서 외운 뒤에 연습해서 발표를 하도록 한다. 발표 뒤에는 질의응답을 한다. 질문이나 답변 태도도 중요하다. 상대를 존중할 줄 알고 바른말을 쓰는 것이 핵심이다. 임 교사의 세밀한 관찰을 통해서 이 모든 것이 평가를 받고 생활기록부에도 기록된다.
한 학생은 “짧은 시간에 발표 준비를 하다 보니 충분하게 내용 전달이 안 된 게 아쉬웠다”며 “스피치 울렁증이 있었는데 이 수업을 하면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던 게 큰 소득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독서 과정에서는 특이하게도 간호사가 되겠다는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나는 간호사입니다>라는 책이나 메르스 사태 때 간호사들이 겪은 이야기를 수기로 기록한 책이 주로 선택됐다.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 등 노동 현실에도 관심이 많았고 그런 현실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도 깊이 있게 찾아보기도 했다. 간호사를 주제로 선택한 학생이 여학생들이 주라고 생각하겠지만 남학생도 여럿 나왔다.
온양용화고 학생들이 컴퓨터 실습실에서 수업시간에 발표할 피피티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다. 임수진 교사 제공
임 교사는 “간호사의 현실을 알아보고 토론을 하면서 개선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학생들은 물론 나도 배운 게 많았다”며 “이런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면 한층 밝은 미래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를 배우는 단원에서는 인생을 음미하고 나만의 학급 시집을 만드는 시간을 가진다.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라는 시를 읽게 한 뒤 같은 주제로 모방 시를 10줄 이상 써보라는 주문을 했다. 몸이 아픈 학생은 자신의 고통과 그로 인한 변화를 썼다. 왕따를 당한 아이는 그 아픔을 진솔하게 묘사했다. 외할머니·외할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학생은 병고에 시달리는 외할머니의 모습을 눈물로 적었다. 교사와 다른 학생들도 따라 울었다.
임 교사는 학생들의 시를 미리 받아 복사를 한 뒤 모든 학생에게 나눠준다. 학생들은 다른 학생의 시를 공책에 붙이고 칭찬의 감상평을 붙인다. 목차·서문·감상평을 일일이 붙이면 학급 시집이 만들어진다.
학교에 약간 철이 없어 보이는 꾸러기 여학생이 하나 있었다. 그의 어머니가 학교에 와서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애가 너무 철이 없어 걱정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이 이 학생이 쓴 시를 보여주자 엄마의 걱정은 감동으로 바뀌고 눈물로 이어졌다. 그 학생은 성적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믿고 밀어주는 엄마에게 보답을 못 해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을 구구절절이 담았다. 학생은 당시 시를 발표하면서도 가슴에 감정이 복받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인생의 시를 쓰는 수업시간은 교사와 학생, 학생들 사이에 카타르시스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무대다. 학생들은 “친구들의 삶을 알고 이해를 하고 공감을 하게 되고” 교사는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구나” 하는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문법 관련 시간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이번엔 진로와 관련된 동화책을 쓰는 미션이다. 호텔리어가 되고 싶은 알파카의 이야기를 쓰거나,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을 담은 동화도 나온다. 유치원 교사가 되고 싶은 학생들은 ‘손을 깨끗이 씻어요’ 등 아이들과 같이 읽고 율동도 같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기도 한다. 그리고 문장별로 품사를 분석하는 작업을 하는데 학생들이 흥미 있어 하는 대목이 많다고 한다.
독특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토론 수업도 그의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전근 온 용화고에서는 아직 못 했는데 종전 학교에선 인기 있는 프로젝트였다. 주로 주제는 교복, 생활복, 페미니즘 등이 탁상에 오른다. 대체로 찬반 논란이 첨예한 것을 선택한다. 설득하는 법, 방어하는 법 등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토론이 모둠별로 진행되고 결론을 내리는 과정으로 평이하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임 교사는 모둠별로 토론을 잘하는 학생을 뽑고 또 이들 가운데 반에서 제일 잘하는 학생을 뽑는다. 이들이 모여서 다시 반별 대항 토론을 벌인다. 게임적 요소가 있고 성취욕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어 참가하는 학생들은 물론 보는 학생들도 스포츠 경기처럼 야릇한 경쟁심을 느낀다. 특히 반별 대항은 기말고사 이후 아이들이 붕 떠 있는 시기에 진행돼 열기를 더한다.
임 교사는 올해 3학년 ‘독서’ 과목을 맡았는데 요즘 코로나19 사태로 개학이 연기되는 바람에 온라인 과제를 내주고 있다. ‘거꾸로 수업’을 활용해 간단한 영상을 찍어 밴드에 올리면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학습 활동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사실적 독해’는 이런 거라는 내용의 10분짜리 동영상을 올려주면 학생들이 보고 사실적 독해를 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이다. “어서 개학이 됐으면 해요. 재미있고 유익한 국어 시간을 만들어야죠.”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