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ㅣ최수일의 ‘웃어라 수포자’
초등학생 부모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려는데 낯익은 얼굴이 강연장을 가로질러 인사를 했다. 과학고등학교 재직 시절 가르쳤던 제자였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의대까지 진학했던 제자였다.
아이 수학 공부 때문에 고민이 되어 찾았다는 제자의 말은 충격이었다. “아이들은 저처럼 수포자가 되지 않았으면 해요. 선생님, 저 사실 그때 이해가 안 돼서 수학을 통째로 외웠어요.”
좋아하지도 않는 수학을 달달 외우느라 학창시절이 고역이었다는 제자는, 막상 아이들이 수학을 싫어하니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개념이야 어떻든 문제를 달달 외워 좋은 점수를 낼 수 있었던 시절은 지났다. 요즘 교육과정과 대입제도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런 변화는 알지만, 자기가 했던 대로 아이에게 훈련과 암기를 강요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이른바 ‘수포자의 대물림’을 끊어보고자 강연장을 찾은 것이다.
2015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36.5%, 중학생의 46.2%, 고등학생의 59.7%는 수학을 포기했다고 응답했다. 수학이 싫어진 원인을 물어보니 다수가 초등학교 때의 연산학습을 꼽았다.
시대가 바뀌어 사회에서 원하는 인재상도 바뀌고, 교육과정도 바뀌었는데 아이들이 처음 접하는 수학인 연산학습은 그대로다. 최근에 시중의 연산문제집을 분석·연구했다. 대부분이 ○○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수학 전문가가 아닌 편집자들이 출제한 문제로, ‘빨리’와 ‘많이’를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빨리’와 ‘많이’는 인지 발달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교육은 이해와 깊이를 기반으로 하는 것인데 ‘빨리’와 ‘많이’는 이것을 포기하라는 말이다. 속도나 양이 아니라 개념적으로 정확히 이해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초등학교 시절 초기 스키마(개념구조)는 이후에 바뀌기가 무척 어렵다. 이해 기반이 아닌 암기 기반으로 초기 스키마가 형성되면 고등학교 수학까지 이어져 ‘수포자’를 양산하게 된다.
반복 훈련이 부족하면 계산 실수가 잦다고 걱정한다. 하지만 실수의 원인은 훈련 부족이 아니라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천천히, 정확하게 이해하면 실수는 놀랄 만큼 사라진다.
개념적으로 이해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아이에게 왜 그렇게 계산했는지 설명해보라고 하면 된다. 이른바 ‘선생님 놀이’다. 부모가 아이의 설명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효과를 볼 수 있다. 덤으로 아이의 자존감과 부모와 자식 간의 친밀감도 높일 수 있다. 이렇게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면 속도는 자연히 따라붙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상은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창조적 역량을 가진 개인이다. 현재 교육과정의 연산교육만 해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 오히려 시중의 연산문제집들이 구태를 반복하며 이런 변화들을 수용 못 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수학은 계산을 빨리해야 하는 학문이 아니다. 철학이나 문학처럼 생각을 다양하게 하고, 어떠한 문제가 닥쳤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학문이다. 긴 시야를 가지고 아이가 수학과 친해지고, 수학의 효용성에 눈을 뜰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연산학습의 첫걸음이다.
최수일 ㅣ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

수학은 계산을 빨리해야 하는 학문이 아니다. 철학이나 문학처럼 생각을 다양하게 하고, 어떠한 문제가 닥쳤을 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학문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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