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고 개교 때부터 학교를 지켜온 금일철 교장이 학교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한민고 제공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기숙형 사립학교 한민고. 대한민국의 가운데 두 글자에서 이름을 따왔다. 교명에서 얼핏 짐작하는 사람도 있겠는데, 이사를 자주 다니는 군인 자녀들의 안정된 학교생활을 위해 국방부가 2014년 설립했다. 예전엔 서울의 중경고와 춘천제일고가 한민고 같은 역할을 했는데, 군사정부에서 문민정부로 바뀐 뒤 일반고로 편입됐다.
학교 설립 전해인 2013년에 교감 공모를 통해 발을 들여놓은 뒤 산파역을 했고 2018년부터는 교장을 맡고 있는 금일철 교장은 “군인들은 거의 1년에 한번 정도 전근을 가기 때문에 자녀들의 생활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생 자녀들의 안정된 학교생활을 위해 이 학교를 설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방부가 주도하는 것이라 국공립으로 만들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할 경우 군인 자녀만 뽑을 수는 없기 때문에 사립학교라는 형식을 선택했다. 군인 자녀를 70% 뽑고 나머지 30%는 경기도에 사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준다. 전국의 군인 자녀 가운데 중3 학생은 5000~5500명에 이르는데, 이 중 200명 남짓을 뽑는 셈이다. 전체 학생 수는 1000명을 약간 넘는데 모든 학생에게 저렴한 비용의 기숙사를 제공한다.
군 생활을 20년 했다고 하면 평균 18번 이동을 한다고 한다. 초등생은 5번 전학을 다니고, 30% 정도는 가족이 떨어져 산다고 한다. 한민고가 파주에 자리잡은 이유는 이 부근에 군부대가 밀집해 있어 군인 자녀도 많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전국에서 오고 육군뿐만 아니라 해·공군 자녀들도 있다.
예전 같으면 시골에 있는 학교를 찾아가기가 쉽지는 않았겠지만, 요즘은 내비게이션이 있어 별 어려움 없이 학교를 찾았다. 곧 도착한다는 메시지를 듣고 고개를 돌려보니 산자락의 넓은 터를 차지한 커다란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앞뒤로는 산과 들이 펼쳐져 있어 전원 마을을 연상케 한다. 한민고의 부지는 2만평인데, 보통 도시 학교가 4000평이라고 하니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겠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복도가 넓은 게 인상적이다. 학생이나 교사나 복도를 다닐 때 답답함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느낀다. 복도뿐만이 아니고 교실도 넓고 교실 이외의 도서관, 면학실, 시청각실, 동아리방 등 공간도 많고 널찍하다. 기숙사에는 학생들을 위한 헬스장도 마련돼 있다. 굳이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다양한 운동시설을 이용해 체력을 단련하고 몸매 관리도 할 수 있게 하려는 배려다. 학교 뒤 산 밑에는 학생들이 경작하는 밭이 있다. 그 옆에는 양서류 서식장이 있는데 개구리, 두꺼비, 맹꽁이가 무리 지어 살고 있다. 산 주변에 먹이가 풍부해 고라니 3마리도 가족처럼 생활하고 있다. 그 주변에는 생태탐방로가 뒷산으로 이어져 있다. 캠퍼스 외에 주변의 산과 들도 내 것인 양 사용할 수 있으니 부지가 2만평의 몇배는 됨직하다. 금 교장은 “전국 최고 수준의 학교 시설”이라고 자랑이 대단한데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학교는 특이하게도 학생들의 휴대전화 소지를 금하고 있다. 대신에 노트북 컴퓨터를 가져올 것을 권한다. 보통 초중고에서 학교 내 와이파이를 금지하는데 한민고에서는 기숙사를 제외한 모든 공간에서 와이파이를 허용한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고 수업 시간에도 활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학교 곳곳에는 스마트 영상 공중전화가 설치돼 있다. 전화도 할 수 있고 문자도 보내고 받을 수 있다.
기숙사 생활은 만만찮아 보인다. 새벽부터 자정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다. 오전 6시 기상, 6시~6시30분 아침 체력단련, 밤 11시~11시30분 점호 준비, 11시30분~12시 점호 및 취침 준비…. 토요일, 일요일도 비슷하다.
학생들은 한달에 한번 정도 주말에 외출이 허용된다. 남쪽 끝에 사는 학생의 경우 오고 가는 시간이 오래 걸려 외출이 고행이기 때문에 목요일 수업이 끝나면 일요일까지 집에 다녀올 시간을 준다. 횟수는 적지만 먼 데 있는 집을 다녀올 충분한 시간을 주기 위한 것이다. 집이 가까운 학생들은 자주 갈 수 있지만 먼 지역에서 온 학생들을 위해 한달에 한번의 귀가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학생들은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아 외로운 적이 있지만 매년 어디로 이사할까 걱정을 안 해도 돼서 좋다”며 “한달에 한번 집에 가면 가족의 정이 더 돈독해지는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기숙학교라 교사들에게도 많은 역할을 요구해 교사들의 짐도 커 보인다. 교사들의 3분의 1만 출퇴근을 하고, 3분의 1은 가족과 함께 관사에서, 나머지 3분의 1은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다. 관사나 기숙사에 있는 교사들은 항상 가까이서 학생들을 지켜본다. 교사들은 학교나 재단에서 일방적으로 뽑지 않는다. 경기도교육청에 1차 선발권을 주고 자체적으로 2차 면접을 거쳐 최종 선발을 했다.
금 교장은 방과후 수업을 자랑거리로 꼽았다. 모든 수업이 끝난 뒤 오후 4~6시 사이에 할 수 있고 학생들이 원하면 7~9시에도 강좌를 개설한다. 교과보다는 교과와 연계된 독서수업, 미디어 리터러시, 문학작품 이해 등이 주를 이룬다. 그는 특히 ‘1인 2기’ 교육을 강조했다. 모든 학생이 예술과 스포츠에서 각각 하나의 기예를 익히자는 것이다. 화·목요일로 정해서 연습을 한다. 일례로 오케스트라의 경우 100명 정도의 학생이 참여하고 있는데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를 할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 욕심 많은 학생들은 방과후 수업으로 부족하면 주말에도 연습을 계속한다고 한다.
올해로 4회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학생들의 진학 성적이 날이 갈수록 향상되고 있는 것도 자랑거리다. 금 교장은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사교육 없이도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새로운 공교육의 모델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