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건군(사진 오른쪽)과 동생 종보가 한 가족과 다름없는 개 ‘청풍’이랑 집 안마당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홈스쿨 제2의 대안교육 ① 세상이 학교다
나는 올해 열일곱살이다. 집은 경기도 가평 용문산 자락. 교사인 엄마와 작은 사업을 하는 아빠, 초등학교 5학년 동생 종보, 그리고 누렁이 개 세 마리랑 같이 산다. 취미는 놀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등산, 자전거 타기, 걷기, 거문고 연주, 책읽기, 만화 보기가 취미다.
학교엔 안 간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집에서 지냈다. 4년째다. 멀대같이 큰(176센티미터) 녀석이 학교에도 안가고 집에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쳐다본다. 하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다. 매일같이 즐겁고 신날 뿐이다. 난 학교를 뺀 모든 곳에서 배운다. 만화와 비디오를 보며, 백두대간 종주를 하며, 평화 캠프에 참가하며 배운다. 친구들과 공을 차며 동생과 눈썰매를 타며, 자원봉사를 하며 배운다.
홈스쿨러들끼리 모여 같이 공부도 한다. 영등포 하자센터에서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 연구수업, 철학 토론, 창조적 스토리텔링, 건축 등 4개 주제로 공동학습을 한다. 10명이 모여 3학기째 진행했고, 지금은 방학중이다.
요즘은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중국 쓰촨성 답사 준비에 바쁘다. 쓰촨성이 새 관광 코스를 개발하기 위해 외국인들을 초청했는데 발빠르게 정보를 입수해 나도 한 자리 얻었다. <삼국지>를 읽는 한편, 중국 현대사를 다시 살피고 있다. 몇년전 홈스테이로 우리 집에 머물렀던 베이징대 형이 한국에 유학와 있어, 그 형으로부터도 중국 정보를 얻을 생각이다. 중국에 다녀온 뒤에는 본격적으로 2006년 ‘홈스쿨 계획표’를 짤 것이다.
모든 것이 금지된 학교
부모님 허락 얻어 ‘집으로’
찾아간 역사·한문 공부 쏙쏙
만화·비디오 보고 자원봉사도 학교를 그만두기 전=어린 시절 부모님 덕을 많이 봤다. 부모님은 잘 노는 것이 무엇보다 좋은 공부이고, 평생의 자산이 된다는 믿음을 가졌고 나는 줄창 놀았다. 여덟살이 되자 서울의 거대 학교로 들어가 놀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학교는 놀지 못하게 했다. 하고 싶은 건 모조리 금지였고, 하기 싫은 것만 억지로 시켰다. 의미도 없는 숙제를 잔뜩 내주는가 하면 시시콜콜 매일같이 준비물을 가져오라고 했다. 한번은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라고 해서 한참 그리고 있는데 금이 넘어갔다며 그러지 말라고 했다. 넘어가면 뭐 어떤데? 그러다 종이 쳤다. 선생님은 스케치북을 덮으라고 했다. 다 그리지도 않았는데 시간 끝났다고 무조건 못하게 했다. 지우개 밥 안치운다고 뭐라 그런 적도 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죽겠는데, 쉬는 시간에만 갈 수 있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내 자유와 감성은 학교에서 철저히 갇혔다. 내 쌓이는 불만을 본 엄마는 아니다 싶은지 2학년 때 서울 외곽의 작은 학교로 전학시켰다. 어린이신문 강제구독, 전교생을 운동장에 세워놓은 채 이어지는 1시간짜리 조회 등 억압적 상황은 달라진 게 없었다. 고민 끝에 엄마와 아빠는 내게 ‘주1일 학교 안가기’를 권장했다. 산에 오르거나 연극, 영화를 보고 시장에도 가고 박물관, 유적지, 서점 등을 돌아다녔다. 즐거웠다. 내 얼굴에 어느새 생기가 돌았다. 새로운 학습의 경험이었다.
3학년 때 우리는 “정말 서울은 놀 데가 못돼”하며 시골로 이사했다. 작은 학교, 자연속 학교에서 난 사계절 자연을 느끼며 ‘사람답게’ 살기 시작했다. 봄철 화전 놀이, 여름철 물놀이, 가을철 감 따먹기, 겨울철 눈싸움, 썰매타기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즐거움을 느끼게 했다. 6학년을 마치고 난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학교 안가고 집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더니 엄마, 아빠는 흔쾌히 허락했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온전한 나만의 시간으로 누리고, 나만의 정신을 키워나가게 되는 출발점이었다. 학교에서 가정으로 옮겨진 배움터=처음 홈스쿨을 생각하면서 뭔가를 꼭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책 읽고, 산에 오르고, 여행하면 좋겠거니 했다. 비디오와 만화책도 실컷 보고 가끔 봉사활동도 해보곤 싶었다. 계획을 수도 없이 세워보고 또 허물었다. 몇날 며칠 고민하고 부모와 상의한 뒤, 우선 역사와 한문을 공부해보기로 했다. 역사는 현대 사회의 시민으로서 세계 공민으로서의 기초 소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고, 한문은 한문 교사인 엄마의 권유가 강하게 작용했다. 나중에 들은 엄마의 생각. “한국사를 통사적으로 가볍게 한번 보고, 근현대사를 좀 집중적으로 보고 이어서 인류사, 세계사를 보다 보면 아이의 관심사에 따라 폭이 넓어지리라 기대했단다.” 초등학교 졸업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서점에 들러 일반교양 수준의 책을 둘러보고 목록을 작성한 뒤 도매상을 통해 택배로 100권의 책을 사들였다. 곧장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1,2>를 본 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의 역사 1,2,3>으로 한 단락씩 천천히 읽었다. <만화 한국사>와 <이야기 한국사 1~16>는 이야기책 읽듯 읽어 내려가면서 줄거리를 간추렸다. 한문 공부는 사서 등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 <중국고전>을 다시 읽어본 뒤, 몇 문장씩 쓰고 읽고 해석해봤다. 2~3시간 정도의 역사와 1시간 정도의 한문 공부가 끝나면 혼자서 점심을 준비해 먹었다. 오후는 자율학습. 놀기도 하고 청소도 하고 책도 봤다. 만화나 비디오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음악도 하니 볼 것도 할 것도 많기만 했다. 며칠에 한번씩 스크랩한 신문으로 ‘세상 읽기’를 시도했다. 주말은 휴일. 등산도 하고 한 주동안의 일을 기록했다. 물론 실컷 노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세상으로 뛰쳐나가다=학교에서 뛰쳐나온 이유는 공부는 책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책에만 빠져살 수는 없었다. 현장학습 거리가 필요했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던 중 환경운동단체인 녹색연합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리고 새만금으로 첫 야외학습을 나갔다. 간척 현장을 둘러보고 밤새 소모임 토론을 하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꼈다. 다녀온 뒤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 <지구가 만약 100명의 마을이라면> <떡갈나무 바라보기> <나무를 심은 사람>를 읽으니, 환경에 대한 내 나름의 시각이 세워지는 것 같았다. 비록 1박2일이었지만 집을 떠나 본 경험은 자신감을 키웠다. 좀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현장을 찾아나섰다. 집 근처의 화서 이항로 유적지, 양수리 고인돌을 둘러봤고 이어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 방이동 백제 고분로,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했다. 고창 고인돌, 선운사, 읍성, 경주 남산 등으로 거리도 시간도 점점 확대됐다. ‘땅을 디디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 모두가 더없이 좋은 공부’라고 느껴졌다. 월 1회 정도 계획됐던 현장학습은 2~3회로 늘더니 일주일에 한번꼴로 정착됐다. 물론 좋은 기회가 생기면 계획에 없어도 곧바로 가방을 꾸려 떠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여운형 추모회 참가, 5월 광주 순례, 나눔의집 방문, 강화도 유적답사, 종묘대제 참관, 꽃동네 봉사 활동…. 환경활동가 중심의 ‘녹색순례’에 참석해 열흘동안 백두대간을 걷기도 하고, 한북 정맥 탐사팀에 합류해 색다른 산행을 경험하기도 했다. 따져보니 무박산행만 20차례가 넘는다. 여기에 ‘수유+너머’의 한문 경전 세미나, 하자센터에서 진행된 새로운 생태주의 음악 허법 프로젝트, 십대들을 위한 평화 캠프, 대안교육 연합 캠프, ‘새로 펴냄’ 독서 소모임, 여러 형태의 여행, 대통령 탄핵반대 시위, 위안부할머니 수요집회 참석 등 숱한 배움의 장이 내 앞에 펼쳐졌다. 애초 계획대로 세상 모든 곳이 학교가 돼가기 시작했다. 매번 잘 아주 아주 잘 놀았고, 모든 현장학습은 신나고 특별하고 즐거웠다. 내 배움터는 나라 밖으로도 뻗어나갔다. 우리와 교육 현실이 비슷하고 우리보다 앞선 대안교육의 현장을 둘러보고 싶은 마음에 일본의 대표적 대안교육기관인 ‘도쿄 슈레’를 방문했고, 일본의 대안교육모임인 ‘프리다스’와도 정기적인 교류를 했다. 일본인 친구들이랑 같이 먹고 자며 노래부르고 역사에 대해 토론하며 난 너무도 큰 경험을 했다. 한독 청소년 교류 프로젝트 ‘동서남북’에 참가해서 분단과 통일에 전면적인 고민을 해봤고, 지난해 7월에는 중국과 스웨덴 사람을 홈스테이로 집에 초청하기도 했다.
너무도 재미있는 공부=학교 공부의 목적은 1차적으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그래서 장장 12년간 책과의 긴긴 전쟁을 벌인다. 그런데 학교를 벗어나고 나서 내가 한 모든 공부는 재미있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음에는 부모님이 추천한 책들을 주로 읽었다. 1년 정도 지나면서 나름대로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부모님 서가에 꽂혀 있던 <백범일지> <아리랑> <돌베개> <여운형 평전> <구술 한국사> <의열단> <상록수> <네가 하늘이다 1,2> <압록강은 흐른다> 등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근·현대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어 <토지> <우리 역사 아웃사이더-세상은 그를 잊으라 했다> <우리 역사 속에 왜?> <거꾸로 읽는 한국 현대사> <한국사 산책 60~80년대> <대한민국사 1,2,3> 등을 독파했다. 역사에 관심이 커지자 KBS <인물현대사>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영화 <송환> <레드헌터> 등으로 볼거리쪽으로 영역을 넓혔다. 다큐멘터리 자료 화면 <격동의 80년대>도 구해서 봤다. 만화 <오! 한강>은 내가 본 최고의 역사책이었다. 역사 공부는 세계사로 이어졌다. <인류이야기 1,2,3> <교실 밖 세계사 여행>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 <교실 밖 지리여행> <세계화 시대의 지리 읽기>등을 읽었고, 더불어 <그리스 로마 신화>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이슬람 바로 알기> <굿바이 바그다드> 같은 책도 봤다, 만화 <북해의 별>이나 <글래디에이터> <아미스타트> <잔다르크> <기사 윌리엄> <모던 타임즈> <알리> <애나 킹> 등의 많은 역사 비디오들을 그냥 재미있게 봤다. 중국사 관련 장정 부분에서는 <주덕 평전-한 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르다>와 <중국의 붉은 별>을 놀라움으로 읽었다. 가족 여행으로 중국에 가서는 나름대로 자료집을 만들고 사전에 <하루 밤에 읽는 중국사> 등의 책을 보고, 방문했던 하룡공원, 천안문 등과의 관련 역사를 떠올렸다. 관련 영화 <인생>을 보면서 나름대로 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 현상과 이면, 다양한 시각이 있음을 알게 됐다. 철학책도 읽었다. <생각은 힘이 세다> <아주 철학적인 하루> <마음을 여는 철학 이야기> <삶의 철학 산책> <철학의 기초>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철학의 역사> 등을 탐독했다. 특히 <아주 철학적인 하루>라는 책을 읽으면서 정말로 내가 알아야 할 학문이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책들을 내가 다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철학하는 자세를 배우고 공부는 해볼만하다고 생각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노는 것도 프로젝트로=사는 게 공부다. 여행이나 공모전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사전에 준비하고 자료집을 만들거나 기획서를 써보는 것도 공부다. 캠프에 참가하고 스스로 열어보기도 하는 것 역시 좋은 공부다. 일을 마무리하면 보고서나 후기를 쓰는 것도 알찬 학습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처음부터 기획하고 준비하기 위한 모든 것이 공부가 되는 것이다. 심지어 친구와 노는 것도 공부다. 물론 이 모든 공부는 재미있고 보람있다. 한번은 홈스쿨러 캠프에서 만난 가까워진 부산의 한 친구집에 놀러가기로 했다. 일단 양쪽 집의 부모님께 허락을 얻은 뒤 뭘 할지 계획을 세웠다. 난 며칠에 걸쳐 ‘거친 파도 소리 들으러’라는 제목을 붙이고 부산 개관, 일정 잡기, 가보고 싶은 명소 등에 대해 자세하게 정리했다. 기차시간과 삯을 알아보고 선물도 구입했다. 그리고 3박4일 정말 잘 놀다 왔다. 돌아온 뒤 사진을 곁들인 소감문을 기록하니 전 과정이 괜찮은 프로젝트였다. 양평/글·사진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늦은 밤 침대에서 만화를 보고 있는 종건군.
부모님 허락 얻어 ‘집으로’
찾아간 역사·한문 공부 쏙쏙
만화·비디오 보고 자원봉사도 학교를 그만두기 전=어린 시절 부모님 덕을 많이 봤다. 부모님은 잘 노는 것이 무엇보다 좋은 공부이고, 평생의 자산이 된다는 믿음을 가졌고 나는 줄창 놀았다. 여덟살이 되자 서울의 거대 학교로 들어가 놀기를 이어갔다. 그런데 학교는 놀지 못하게 했다. 하고 싶은 건 모조리 금지였고, 하기 싫은 것만 억지로 시켰다. 의미도 없는 숙제를 잔뜩 내주는가 하면 시시콜콜 매일같이 준비물을 가져오라고 했다. 한번은 미술 시간에 그림을 그리라고 해서 한참 그리고 있는데 금이 넘어갔다며 그러지 말라고 했다. 넘어가면 뭐 어떤데? 그러다 종이 쳤다. 선생님은 스케치북을 덮으라고 했다. 다 그리지도 않았는데 시간 끝났다고 무조건 못하게 했다. 지우개 밥 안치운다고 뭐라 그런 적도 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죽겠는데, 쉬는 시간에만 갈 수 있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내 자유와 감성은 학교에서 철저히 갇혔다. 내 쌓이는 불만을 본 엄마는 아니다 싶은지 2학년 때 서울 외곽의 작은 학교로 전학시켰다. 어린이신문 강제구독, 전교생을 운동장에 세워놓은 채 이어지는 1시간짜리 조회 등 억압적 상황은 달라진 게 없었다. 고민 끝에 엄마와 아빠는 내게 ‘주1일 학교 안가기’를 권장했다. 산에 오르거나 연극, 영화를 보고 시장에도 가고 박물관, 유적지, 서점 등을 돌아다녔다. 즐거웠다. 내 얼굴에 어느새 생기가 돌았다. 새로운 학습의 경험이었다.
3학년 때 우리는 “정말 서울은 놀 데가 못돼”하며 시골로 이사했다. 작은 학교, 자연속 학교에서 난 사계절 자연을 느끼며 ‘사람답게’ 살기 시작했다. 봄철 화전 놀이, 여름철 물놀이, 가을철 감 따먹기, 겨울철 눈싸움, 썰매타기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즐거움을 느끼게 했다. 6학년을 마치고 난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학교 안가고 집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더니 엄마, 아빠는 흔쾌히 허락했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을 온전한 나만의 시간으로 누리고, 나만의 정신을 키워나가게 되는 출발점이었다. 학교에서 가정으로 옮겨진 배움터=처음 홈스쿨을 생각하면서 뭔가를 꼭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책 읽고, 산에 오르고, 여행하면 좋겠거니 했다. 비디오와 만화책도 실컷 보고 가끔 봉사활동도 해보곤 싶었다. 계획을 수도 없이 세워보고 또 허물었다. 몇날 며칠 고민하고 부모와 상의한 뒤, 우선 역사와 한문을 공부해보기로 했다. 역사는 현대 사회의 시민으로서 세계 공민으로서의 기초 소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고, 한문은 한문 교사인 엄마의 권유가 강하게 작용했다. 나중에 들은 엄마의 생각. “한국사를 통사적으로 가볍게 한번 보고, 근현대사를 좀 집중적으로 보고 이어서 인류사, 세계사를 보다 보면 아이의 관심사에 따라 폭이 넓어지리라 기대했단다.” 초등학교 졸업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서점에 들러 일반교양 수준의 책을 둘러보고 목록을 작성한 뒤 도매상을 통해 택배로 100권의 책을 사들였다. 곧장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1,2>를 본 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의 역사 1,2,3>으로 한 단락씩 천천히 읽었다. <만화 한국사>와 <이야기 한국사 1~16>는 이야기책 읽듯 읽어 내려가면서 줄거리를 간추렸다. 한문 공부는 사서 등 어렸을 때 보았던 만화 <중국고전>을 다시 읽어본 뒤, 몇 문장씩 쓰고 읽고 해석해봤다. 2~3시간 정도의 역사와 1시간 정도의 한문 공부가 끝나면 혼자서 점심을 준비해 먹었다. 오후는 자율학습. 놀기도 하고 청소도 하고 책도 봤다. 만화나 비디오도 보고 친구도 만나고 음악도 하니 볼 것도 할 것도 많기만 했다. 며칠에 한번씩 스크랩한 신문으로 ‘세상 읽기’를 시도했다. 주말은 휴일. 등산도 하고 한 주동안의 일을 기록했다. 물론 실컷 노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세상으로 뛰쳐나가다=학교에서 뛰쳐나온 이유는 공부는 책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책에만 빠져살 수는 없었다. 현장학습 거리가 필요했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하던 중 환경운동단체인 녹색연합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리고 새만금으로 첫 야외학습을 나갔다. 간척 현장을 둘러보고 밤새 소모임 토론을 하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꼈다. 다녀온 뒤 <녹색시민 구보씨의 하루> <지구가 만약 100명의 마을이라면> <떡갈나무 바라보기> <나무를 심은 사람>를 읽으니, 환경에 대한 내 나름의 시각이 세워지는 것 같았다. 비록 1박2일이었지만 집을 떠나 본 경험은 자신감을 키웠다. 좀 더 적극적으로 새로운 현장을 찾아나섰다. 집 근처의 화서 이항로 유적지, 양수리 고인돌을 둘러봤고 이어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 방이동 백제 고분로, 서대문 형무소를 방문했다. 고창 고인돌, 선운사, 읍성, 경주 남산 등으로 거리도 시간도 점점 확대됐다. ‘땅을 디디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 모두가 더없이 좋은 공부’라고 느껴졌다. 월 1회 정도 계획됐던 현장학습은 2~3회로 늘더니 일주일에 한번꼴로 정착됐다. 물론 좋은 기회가 생기면 계획에 없어도 곧바로 가방을 꾸려 떠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여운형 추모회 참가, 5월 광주 순례, 나눔의집 방문, 강화도 유적답사, 종묘대제 참관, 꽃동네 봉사 활동…. 환경활동가 중심의 ‘녹색순례’에 참석해 열흘동안 백두대간을 걷기도 하고, 한북 정맥 탐사팀에 합류해 색다른 산행을 경험하기도 했다. 따져보니 무박산행만 20차례가 넘는다. 여기에 ‘수유+너머’의 한문 경전 세미나, 하자센터에서 진행된 새로운 생태주의 음악 허법 프로젝트, 십대들을 위한 평화 캠프, 대안교육 연합 캠프, ‘새로 펴냄’ 독서 소모임, 여러 형태의 여행, 대통령 탄핵반대 시위, 위안부할머니 수요집회 참석 등 숱한 배움의 장이 내 앞에 펼쳐졌다. 애초 계획대로 세상 모든 곳이 학교가 돼가기 시작했다. 매번 잘 아주 아주 잘 놀았고, 모든 현장학습은 신나고 특별하고 즐거웠다. 내 배움터는 나라 밖으로도 뻗어나갔다. 우리와 교육 현실이 비슷하고 우리보다 앞선 대안교육의 현장을 둘러보고 싶은 마음에 일본의 대표적 대안교육기관인 ‘도쿄 슈레’를 방문했고, 일본의 대안교육모임인 ‘프리다스’와도 정기적인 교류를 했다. 일본인 친구들이랑 같이 먹고 자며 노래부르고 역사에 대해 토론하며 난 너무도 큰 경험을 했다. 한독 청소년 교류 프로젝트 ‘동서남북’에 참가해서 분단과 통일에 전면적인 고민을 해봤고, 지난해 7월에는 중국과 스웨덴 사람을 홈스테이로 집에 초청하기도 했다.
거문고는 종건군이 가장 아끼는 보물 가운데 하나다.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배운 거문고 연주 실력은 수준급이다.
너무도 재미있는 공부=학교 공부의 목적은 1차적으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그래서 장장 12년간 책과의 긴긴 전쟁을 벌인다. 그런데 학교를 벗어나고 나서 내가 한 모든 공부는 재미있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처음에는 부모님이 추천한 책들을 주로 읽었다. 1년 정도 지나면서 나름대로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부모님 서가에 꽂혀 있던 <백범일지> <아리랑> <돌베개> <여운형 평전> <구술 한국사> <의열단> <상록수> <네가 하늘이다 1,2> <압록강은 흐른다> 등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근·현대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어 <토지> <우리 역사 아웃사이더-세상은 그를 잊으라 했다> <우리 역사 속에 왜?> <거꾸로 읽는 한국 현대사> <한국사 산책 60~80년대> <대한민국사 1,2,3> 등을 독파했다. 역사에 관심이 커지자 KBS <인물현대사>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영화 <송환> <레드헌터> 등으로 볼거리쪽으로 영역을 넓혔다. 다큐멘터리 자료 화면 <격동의 80년대>도 구해서 봤다. 만화 <오! 한강>은 내가 본 최고의 역사책이었다. 역사 공부는 세계사로 이어졌다. <인류이야기 1,2,3> <교실 밖 세계사 여행> <청소년을 위한 세계사> <교실 밖 지리여행> <세계화 시대의 지리 읽기>등을 읽었고, 더불어 <그리스 로마 신화> <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이슬람 바로 알기> <굿바이 바그다드> 같은 책도 봤다, 만화 <북해의 별>이나 <글래디에이터> <아미스타트> <잔다르크> <기사 윌리엄> <모던 타임즈> <알리> <애나 킹> 등의 많은 역사 비디오들을 그냥 재미있게 봤다. 중국사 관련 장정 부분에서는 <주덕 평전-한 알의 불씨가 광야를 불사르다>와 <중국의 붉은 별>을 놀라움으로 읽었다. 가족 여행으로 중국에 가서는 나름대로 자료집을 만들고 사전에 <하루 밤에 읽는 중국사> 등의 책을 보고, 방문했던 하룡공원, 천안문 등과의 관련 역사를 떠올렸다. 관련 영화 <인생>을 보면서 나름대로 모든 것에는 빛과 그림자, 현상과 이면, 다양한 시각이 있음을 알게 됐다. 철학책도 읽었다. <생각은 힘이 세다> <아주 철학적인 하루> <마음을 여는 철학 이야기> <삶의 철학 산책> <철학의 기초>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철학의 역사> 등을 탐독했다. 특히 <아주 철학적인 하루>라는 책을 읽으면서 정말로 내가 알아야 할 학문이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책들을 내가 다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철학하는 자세를 배우고 공부는 해볼만하다고 생각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노는 것도 프로젝트로=사는 게 공부다. 여행이나 공모전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사전에 준비하고 자료집을 만들거나 기획서를 써보는 것도 공부다. 캠프에 참가하고 스스로 열어보기도 하는 것 역시 좋은 공부다. 일을 마무리하면 보고서나 후기를 쓰는 것도 알찬 학습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처음부터 기획하고 준비하기 위한 모든 것이 공부가 되는 것이다. 심지어 친구와 노는 것도 공부다. 물론 이 모든 공부는 재미있고 보람있다. 한번은 홈스쿨러 캠프에서 만난 가까워진 부산의 한 친구집에 놀러가기로 했다. 일단 양쪽 집의 부모님께 허락을 얻은 뒤 뭘 할지 계획을 세웠다. 난 며칠에 걸쳐 ‘거친 파도 소리 들으러’라는 제목을 붙이고 부산 개관, 일정 잡기, 가보고 싶은 명소 등에 대해 자세하게 정리했다. 기차시간과 삯을 알아보고 선물도 구입했다. 그리고 3박4일 정말 잘 놀다 왔다. 돌아온 뒤 사진을 곁들인 소감문을 기록하니 전 과정이 괜찮은 프로젝트였다. 양평/글·사진 박창섭 기자 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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