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서일여고 박해인 교사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 계속되고 학교 폭력 예방책은 더딘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자 소설을 출간했다고 밝혔다. 박해인 교사 제공
“교사로서 치부를 드러내는 일이지만, 수그러들지 않는 학교 폭력에 대해 모두 관심을 갖자는 취지를 담아 소설을 썼다.”
대전 서일여고 박해인 교사는 최근 출간한 소설 <사랑, 그러나 슬픔…>을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이 소설은 2011년 대구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한 중학생이 일진들의 끊임없는 폭력과 금품 갈취를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그의 소설은 정의가 사라진 우리 학교의 황량한 단면을 묘사하고 있다. 가해 학생들은 반성 없이 되레 주먹다짐으로 같은 반 학생들의 침묵을 강요하고, 그들의 부모 역시 자기 자식이 폭력배로 낙인찍히는 것을 막는 데만 신경을 쓸 뿐이다. 교장은 노골적으로 사건을 덮으라고 교사들에게 지시하고, 담임교사는 사건의 내막을 알게 되고 고민을 하지만 끝내 정의를 버리고 만다. 소설을 읽고 나면 씁쓸함이 남는 이유인지 모르겠다.
그는 교직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창작활동을 해 여러 편의 소설을 썼다. <푸른나무 위로 날아간 새>에서는 1990년대 대학생들의 고뇌와 방황과 좌절을 그렸고, <복제인간의 죽음>에서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소설집 <음울한 내 영혼의 고백서>에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서민들의 힘든 삶을 그린 작품 등을 실었다.
교육부의 ‘학교 폭력 실태 조사’ 자료를 보면, 2018년 초·중·고생의 30.3%가 학교 폭력 피해를 경험했고, 24.2%는 가해 경험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예상 밖으로 많은 학생이 연루된 것이다. 하지만 밖에서 볼 때는 학교는 아무런 폭력 사태 없이 평온하게 지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신문이나 방송에 나오는 큰 사건·사고가 아니면 대부분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도 한 중학교 학교 폭력 예방 동아리 학생들의 증언을 들어보자. “겉보기와 달리 상당히 많은 학교 폭력 사례가 있다. 매일 얼굴을 보는 피해 학생들을 외면할 수 없어 예방 캠페인에 나섰다.”
박 교사는 당시 사건에 큰 충격을 받고 언젠가는 소설로 써야겠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그런 비극적인 사건이 왜 일어났고 막을 수는 없었는지 재구성해보자는 뜻이다. 30년 이상 교단에 서온 그는 크고 작은 사례를 직접 경험하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전해 듣기도 했다. 그는 소설 구성에 필요한 자료들을 모아왔고, 몇 년 전부터 학교 폭력의 실상을 드러내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사건과 비슷하게 비극적으로 마무리해 독자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며 “피해자보다도 가해자의 권리가 더 보호받는 사회의 왜곡된 일면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는 엄청난 고통을 받다가 끝내 목숨을 끊었는데도, 가해자들은 소년원에서 기껏 2~3년간 수형 생활을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너무 부당하다는 것.
학교 폭력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소설 속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은 초등학교 때 친한 친구였는데, 중학교에 가서 가해 학생이 일진이 되면서 운명이 갈리고 말았다. 일진 사이에서도 서열에 따라 다시 옛날의 ‘줄빠따’(매타작)가 행해진다. 또 가해 학생의 누나는 다른 여학생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것으로 나온다. 같은 반 친구가 왕따당하는 것을 보다 못해 학급회의 때 왕따를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마디 한 게 화근이었다. 그러자 아이들이 왕따시키기 시작했고, 벗어나려 몸부림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부모는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어찌 보면 단서는 많았지만, 무관심 또는 맹목적 자식 사랑이 나은 결과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건 뒤에 담임교사와 상담을 하면서 “성격이 그토록 온순한 우리 아이가 일진회 회원이라니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쓴웃음을 자아낸다.
박 교사는 청소년들의 게임중독에 많은 우려를 하고 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가해 학생들도 게임에 푹 빠진 것으로 나오는데, 피해 학생이 아무리 구타를 당해도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다시 살아날 것으로 생각하면서 별다른 죄의식도 없이 무자비한 주먹을 휘두른다. 또 게임의 점수를 높인다든지, 어떤 아이템을 얻기 위해 힘없는 학생들을 괴롭히기도 한다는 것이다. 돈을 빼앗거나 상납을 받기도 한다. 요즘 게임엔 선정적인 내용이 많은데, 그는 ‘엔(n)번방 사건’도 게임중독을 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내가 쓴 소설에서 나타난 사건의 발단도 게임중독이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학생들은 ‘디지털 시대 위기의 아이들’이라는 말이 있는데, 게임중독이 큰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그런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강산이 변할 만큼의 세월이 흘렀지만 학교는 바뀐 것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명문대에 더 많이 보내기 위한 입시 위주의 교육은 계속되고 있고, 예체능 과목은 자습 시간으로 대체되는 일이 잦고, 그런 학교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학교에 오기만 하면 엎드려 자기 일쑤고, 정부에서도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들어 중장기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지만 국회에서 법안이 낮잠만 자고 있다.
소설에서는 담임교사를 진실을 알고 갈등하다가 결국은 주위의 압력에 굴복해 덮어버리는 비겁한 인물로 그렸다. 아이들로부터 수업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하므로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나 학부모의 압력에 굴복할 때도 있다는 푸념이 변명처럼 깔렸다. “그게 어쩌면 35년 교직 생활을 한 내 모습일지도 모르지….” 박 교사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용감한 한 학생도 있었다. 피해자의 엄마에게 전화해 사건의 원인이 학교 폭력이었다며 학교로 찾아오면 친구들 몇몇이 모든 진실을 얘기해주겠다는 얘기를 했다. 아들을 가슴에 묻은 엄마는 희망을 가지고 학교를 찾아갔으나 일진의 서슬 퍼런 모습을 본 학생은 끝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사태를 막을 대책을 모르겠다. 모든 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김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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