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승의 날, 정부에서 대한민국 스승상과 홍조근정훈장을 받은 신동필 서울 한영고 1학년 부장이 교무실에서 교직 30년의 감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김학준 기자
“교사 임용 뒤 기본을 지키자는 생각만 가지고 앞으로 달려왔다. 줄곧 담임을 맡으며 바쁘게 지내온 세월이 어느덧 30년이 됐다.”
올해 스승의 날, 정부에서 대한민국 스승상 대상과 홍조근정훈장을 받은 신동필 서울 한영고 역사 교사는 세 번 강산이 변할, 한 세대의 시간이 담긴 세월을 담담히 되새겼다. 교직 30년 가운데 올해까지 28년간 연속 담임을 맡았다. 제자들과 마음을 모아 장학회를 만들어 운영해왔는데 6년이 됐다. 다부진 몸집처럼 힘들어도 힘들다 하지 않고 묵묵히 세월을 어깨로 받쳐온 뚝심이 이런 큰 상의 바탕이 된 듯했다. 그는 2년 전에는 교육부 장관상을 받은 바 있다.
―교직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훈장을 하시던 외조부 밑에서 소학 등 한학을 익혔다. 어린 마음에 막연하지만 교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후 사범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을 준비하던 중 교사 모집 공고를 보고 원서를 냈다.”
―담임은 언제부터 맡기 시작했나?
“대학원을 마친 1993년부터 담임을 맡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28년이 됐고, 그중 3학년 담임이 18년이나 된다.”
―담임이 힘들다고 꺼리는 교사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처음 담임을 맡았을 때 학생들과 아주 잘 지냈고 아이들이 좋아서 계속 담임을 맡게 됐다. 옛날부터 조회와 종례가 길었다는 평을 받는다. 열정과 소신은 있었는데 테크닉이 약했던 것 같다. 초창기 졸업생들이 찾아오면 그때는 내가 부족해 너희들에게 많이 못 해줘 미안하다고 얘기하곤 한다. 요즘 세대 교사들은 담임을 맡으면 책임만 커지고 골치 아프니 꺼리는 것 같다.”
―아이들과 잘 지내는 비결이 있는가?
“마음을 주며 다가서고 많은 시간을 함께한다. 나는 매 쉬는 시간에 교실에 머문다. 점심시간도 절반은 학생들과 교실에서 함께한다. 많은 시간 머물수록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이해하는 통로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공부 잘하는 아이보다 꼴찌를 더 챙긴다. 자신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되면서 아이가 변화하는 것 같다.
또 소통을 위해 새 학년이 시작되면 1시간 정도 아이들과 개별 상담을 한다. 아이들이 나를 자기편이라고 느끼도록 노력한다. 이렇게 하니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내게로 와서 상의한다. 또 각자 자기 꿈을 발표하는 시간도 갖는다. 나와 학생, 학생들끼리 서로 알고 이해하고 존중하는 과정을 갖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에 미래의 삶에 대한 가장 많은 것이 구체화되고 결정된다는 것을 잘 알기에 아이들은 절실하고 간절함이 있다. 따라서 자기편이 누구인지 잘 안다. 아이가 마음에 담은 같은 편은 특별한 관계로 인연이 계속 이어진다. 그때부터 자신이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말을 하는 제자들이 많다. 이런 게 교사의 보람이 아닐까.
학습과 관련해서는 멘토-멘티 체제를 운영하기도 한다. 상위권 학생과 하위권 학생이 사이가 나쁘기 마련인데,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관계없이 좋은 친구가 되는 것이다. 학급 전체의 분위기도 말할 나위 없이 좋다.”
―수업 외에 다른 활동은?
“20여년간 ‘맹자 강독반’ 동아리 지도교사를 하고 있고, 방과 후 수업도 하고 있다. 방과 후 수업은 인기가 좋아 온라인으로 접수할 때 3초 넘으면 수강을 못 한다 하여 나에게 ‘3초 강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맹자 강독은 초반 몇 개의 장을 읽고 토론을 하거나 좌우명이 될 만한 글귀를 찾아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진행한다. 맹자를 읽었다고 하면 대학교수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데 입시에 긍정적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신동필 서울 한영고 교사가 지난달 22일 대한민국 스승상 대상을 받은 뒤 함께 받은 홍조근정훈장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신동필 교사 제공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을 듯하다.
“2학년까지는 중위권이었던 학생이 1등을 하고 명문대에 간 일이 있었다. 3학년 초 첫 상담을 길게 하면서 첫 중간고사에 올인한 뒤 결과를 보고 평가하자고 제안했다. 그게 주효해 성적이 크게 올랐다. 자부심을 갖게 되고 동기부여가 된 것이다. 요즘도 항상 첫 중간고사가 끝나면 학교에서 고기 파티를 한다. 성적이 큰 폭으로 향상된 학생에게는 문화상품권을 준다. 중하위권 아이들에게 자극을 주자는 뜻이다.”
―장학회는 언제 만들었나?
“초창기 3년간 담임을 맡았던 졸업생들 중심으로 17년 전부터 스승의 날을 전후해서 모임을 가져왔다. 그러다가 6년 전 후배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자는 의견이 나와 장학회를 만들게 됐다. 내 이름을 따서 동필장학회라고 정했다. 참여 졸업생이 120여명 정도 되고, 1년에 6만원씩 내서 매년 600여만원이 쌓이고 있다. 학교에서 선정해주는 학생 6~8명에게 매년 50만원씩 주고 있다.”
―이들과는 특별한 정이 쌓인 것 같다.
“교사 말고는 숙맥이어서 토·일요일에도 학생들을 불러내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공부를 시켰다. 아이들을 설득했더니 잘 따라왔다. 길을 잘못 든 아이는 매를 대서라도 바로잡았다. 매를 맞은 아이를 붙잡고 함께 울기도 했다. 대학에 들어간 뒤 1학년 동안에는 학교에 와서 후배 3~4명의 멘토 역할을 했다. 진로 가이드도 되고 학습의 조력자가 되기도 했다. 선후배 관계도 좋아졌고, 그게 일종의 전통으로 계속 이어져오고 있다. 설날이면 졸업생들을 모두 불러 떡국을 같이 먹기도 했는데 지금도 ‘그때가 좋았다’고 추억하는 제자들이 있다.”
―지금도 사랑의 매를 사용하는가?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다. 하지만 잘못한 사람에게는 꼭 벌을 준다. 잘못을 고치도록 하려는 뜻이다.”
―이번 스승의 날은 더 특별한 날이 됐을 텐데.
“30년 근속에, 대한민국 스승상 대상 수상과 출판 기념을 겸해서 모였는데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제자가 찾아와 너무 기분이 좋았다. 일일이 사인을 해서 제자들에게 책을 나눠주었다.”
―무슨 책을 썼는가?
“<창업>이란 역사소설인데 지난 3월에 출간됐다. 첫 역사 수업 시간에 정몽주, 정도전, 이방원 가운데 누구를 지지하느냐로 토론회를 한다. 나는 조선의 정치 철학을 세운 정도전을 지지하고, 그의 얘기를 많이 들려준다. 온몸을 던져서 조선을 세운 지식인, 혁명가로 매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를 제대로 평가해보자는 의미에서 책을 쓰게 됐다.”
―역사를 전공했으니 책 쓰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 듯한데….
“쉬울 줄 알았는데 5년이 걸렸다. 자료를 모으는 것도, 옥석을 구분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쓰는 것은 더 힘들었다. 소설 쓰는 법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고, 평택에 있는 정도전 사당인 문헌사에도 여러 차례 갔다. 제대로 쓸 힘을 달라고 기도했다. 사실에 초점을 두고 쓰려고 노력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4년 남았다. 남은 세월도 계속 담임을 맡으며 종전과 같이 교직 생활을 이어나가겠다. 제자들도 장학회를 더 키우고 모임도 활성화하길 바라는데 힘닿는 데까지 돕고 싶다. 학교 역사가 87년이 됐고 명문고라는 평가를 받는데 졸업생들의 구심점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김학준 기자
kimh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