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용두레질소리보존회 황길범 대표가 강화군 덕신고등학교 학생들에게 용두레질소리를 전수하고 있다. 상명대 제공
전남 보성군 노동초등학교는 유치원생을 포함해 전교생이 29명, 교사가 19명인 시골 마을의 작은 학교다. 이 학교는 지난해 5월부터 반년간 전북대의 도움을 받아 방과후 수업으로 전통놀이 교육을 했다. 이곳은 시골이어서 교과 이외의 활동을 하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게다가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 디지털 기기에만 빠져 교과서에 나오는 전통놀이조차 모르기 일쑤다. 이런 아이들에게 잘 노는 법을 알려주려 교육기부 모델학교 신청을 냈다. 놀이 교육을 해줄 교육기부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탓에 학교와 기부자를 연결하고 프로그램을 지원해주는 전북대 교육기부 지역센터가 애를 먹었다. 대부분의 교육기부자가 도시에 있어 멀리 있는 모델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전주에 있는 기부자들과 연결이 돼 예정보다 조금 늦게 첫발을 뗐다.
전남 보성 노동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전통놀이인 저포놀이를 배우고 있다. 전북대 제공
지난해 5월30일 오후에 시작된 첫 놀이시간에는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고누와 그물술래 놀이를 했다. 고누는 옛날 놀이가 많지 않았던 시절 운동장이나 마을 길에 앉아 땅에 금을 그려 쉽게 할 수 있었던 놀이 가운데 하나다. 노동초교 아이들도 이 놀이를 처음 접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놀이 방법을 쉽게 익혀 친구와 승부를 주고받는 새로운 놀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창 놀이에 빠져 승패에 따라 흥분하거나 아쉬움이 쌓일 즈음, 그물술래 놀이로 옮겨갔다. 아이들 3~4명이 술래가 돼 손을 잡고 그물을 만들어 달아나는 아이(물고기)를 잡는 놀이다. 고누가 간단한 머리싸움이라면 그물술래는 몸싸움이다. 달아나는 아이들이나 쫓아다니는 술래나 금방 온몸이 땀에 젖는다. 놀이가 끝나고 나면 서로 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런 놀이를 처음 배웠는데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친구들과 함께 뛰어노니 즐거웠고, 협동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아이들은 10월까지 오징어놀이, 널뛰기, 저포놀이, 딱지치기, 제기차기, 산가지놀이 등 텔레비전에서나 볼 수 있던 많은 전통놀이를 체험할 기회를 가졌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짬을 내 기부 활동에 동참한 박현순씨는 “먼 길을 오가느라 힘들었지만 놀이수업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보니 절로 힘이 났다”고 말했다.
■ 학교·학생들 다양한 활동에 만족
전북대는 2018년에 처음 전라제주권 지역센터로 선정돼 이제 3년차에 접어들었다. 지난해에는 7개 학교에서 모델학교를 운영했으며, 전통놀이, 한지 닥종이 인형 만들기, 드론, 코딩, 치어리딩, 4차 산업 관련 강의, 개인 상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찾아 지원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늦어지는 바람에 최근에야 학교로부터 신청을 받고 있다. 지역센터는 모델학교 외에 지역 학교와 아동센터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 개인 교육기부자 및 기관을 연결해주고, 교육에 필요한 사항들을 지원해 프로그램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실을 한다. 학교와 학생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은 다양하지만, 그런 프로그램에 적합한 기부자를 찾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또 기부자와 프로그램 제한 등으로 전체 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것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교육기부센터인 한국과학창의재단이 모델학교의 효과를 분석한 결과, 학생·교사·학부모 모두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생활 행복감 등 학생들의 전반적 만족도가 점차 상승하고 있다. 지난해 진로체험 모델학교로 참여한 군산 오봉초등학교 김광서 교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접하기 쉽지 않은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활동을 경험함으로써 전인적인 성장에 큰 도움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치어리딩 체험을 한 김제 용지초등학교 박덕기 교장은 “교육기부는 공교육과 지역사회를 긍정적으로 연결하며 전문 인적자원이 부족한 교육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평했다.
전남 장성 월평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컴퓨터 프로그램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전북대 제공
센터장인 박병기 전북대 교수는 “직접 팀을 꾸려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 지역 학교와 학생들의 요구 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교육기부 운영이 초기 단계라 어려움이 있지만 프로그램을 더욱 늘려나가기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센터는 3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경상권은 한동대가 맡고 있고, 충청강원권은 카이스트 다음으로 올해 상지대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지난해 모델학교에는 전라제주권 7개교(1961명), 경상권 6개교(5561명), 충청강원권 7개교(5172명)가 참여하였다. 그동안 2016년부터 2019년까지 66개교에서 3만8천여명의 학생이 교과서와 학교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체험했다.
전북 김제 용지초등학교 어린이들이 치어리딩 연습을 하고 있다. 전북대 제공
■ 프로그램·기부자도 갈수록 다양화
교육기부의 성패는 콘텐츠에 달려 있다. 학생들이 요구하는 내용과 수준에 맞춰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게 관건이다. 콘텐츠의 다양화는 문화·예술·체육·커뮤니케이션·교육심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팀을 꾸린 상명대 문화예술형 교육기부컨설팅단의 활약이 돋보인다. 컨설팅단은 사업 1년차인 2018년에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12개 기관을 발굴했으며, 지난해에도 13개 기관을 찾아 교육기부 행렬에 참여시켰다. 강화용두레질소리보존회를 비롯한 전통문화예술기관과 해양경찰청 관현악단, 국립산악박물관, 국립등산학교 등이 그들이다. 컨설팅단은 또 기존 수도권에 집중되었던 교육기부 문화를 전국 단위로 넓혀나가고 있으며, 수혜 대상도 교육기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장애인, 교육복지우선학교, 교육 취약계층(다문화가정, 차상위 계층)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참여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거나 접하기 어려운 체험 중심의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 및 직업 세계 탐색을 통해 문화적 소양과 창의, 인성, 심미적 감성 역량 등을 배양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업 3년차를 맞은 컨설팅단은 다양한 문화예술기관 및 프로그램 발굴, 수혜 대상 확대, 수혜 지역 전국단위화의 목표와 더불어 4차 산업혁명, 포스트 코로나, 언택트 시대를 맞아 문화예술과 최첨단 정보기술(IT), 드론,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과의 융합을 도모하여 선진적이고 풍성한 문화예술 교육기부 프로그램 운영으로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또 입체(3D)프린팅을 활용한 예술품과 사진예술 교육, 증강현실·가상현실(AR·VR)을 활용한 전통문화예술 체험을 확대하고, 비대면 문화예술 공연, 드라이브인 공연 등이 가능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의 변화도 준비하고 있다.
해양경찰청 관현악단이 인천영종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오케스트라 교육을 하고 있다. 상명대 제공
상명대 컨설팅단은 2년 연속 매우 우수하다는 평을 받으면서 전국 확산의 모델이 되고 있다. 컨설팅단장인 양종훈 상명대 교수는 “컨설팅단은 교육기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기업과 단체, 개인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도움을 제공한다”며 “학생들이 문화예술 등의 경험을 통해 인성과 창의성을 높이고 행복한 삶을 개척해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 지역 간 교육 격차 해소 위해 도입
교육기부가 본격화한 것은 2011년부터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이 교육부로부터 교육기부센터로 지정받고 포털사이트를 구축하면서 다양한 사업을 펼친 데 힘입었다. 교육기부 활동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지역센터에서 읍·면·도서벽지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교육기부 모델학교다. 정규수업, 자유학년제, 동아리 활동, 방과후 학습 등 학교의 사정에 맞게 그리고 학생들의 교육 수요를 고려하여 유연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런 수요를 맞추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컨설팅단과 대학생들의 재능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한 체육예술 거점대학이 세 축으로 돌아가고 있다.
교육기부의 핵심적인 또 하나의 축은 교육기부기관과 개인 교육기부자들이다.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 열의와 책임의식을 가지고 청소년 교육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들이다. 지난해에 새로 발굴한 개인 교육기부자만 모두 141명(전라권 35명, 충청강원권 92명, 경상권 14명)에 이른다.
황태진 과학창의재단 선임연구원은 “이제 교육기부 10년차에 접어들면서 교육기부가 점점 생활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며 “자신의 재능을 썩히지 말고 더 많은 국민들이 참여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학준 기자
kimh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