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경주 S공고 고 이준서 학생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직업계고등학교 기능반 폐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기능경기대회 출전을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직업계고 기능반 학생의 죽음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직업계 고등학교에서 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던 고등학생(17)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해, 학생들을 메달 경쟁으로 내모는 기능경기대회와 기능반 운영이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주 S공고(신라공고) 고 이준서 학생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직업계고등학교 기능반 폐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그동안 벌여온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군은 코로나19로 다른 학생들이 학교를 가지 않는 상황에서도 지방기능경기대회 출전 준비로 학교에서 합숙훈련을 하다 지난 4월8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날 유족과 시민사회단체들은 “학교 실적을 위해 기능반 학생들을 메달 경쟁으로 내몬 것이 이군 죽음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조사단장인 권영국 변호사(정의당 노동본부장)는 “이군이 기능반을 그만두려던 자신의 요구와 계획이 끝내 실패로 돌아가자 절망감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군은 기능대회에 함께 출전해야 하는 친구와 잘 맞지 않았던데다, 기능반 활동과 훈련에 회의를 느껴 그만두겠다는 뜻을 꾸준히 표시했으나, 학교는 “회유와 지도”로 이군을 주저앉혔다고 한다.
이들은 이 학교가 기능반을 메달이라는 실적을 가져다주는 도구로 운영하는 등 “구조적인 부조리와 폐해”가 있다고 지적했다. 유족과 학교, 학생, 교육청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군은 1학년 때 선배의 정액을 강제로 마시는 등 폭력과 성희롱을 경험했다. 이군 역시 후배들에게 행한 폭언·폭행 등으로 학교에 진술서를 제출하는 등 학교폭력이 대물림된 정황이 있었다. 그러나 학교는 기능반이라는 이유로 이런 상황을 묵인했고, 이군이 기능반을 그만두려 하자 되레 이를 협박·강요의 수단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기능반 학생들이 기능반 활동만을 강요받아 각종 활동과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는데 학교생활기록부와 출석부에는 참석·출석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거나, ‘기능(반)어머니회’ 활동에 따라 학부모들이 매달 간식비를 납부하거나 식사당번을 종용받는 일이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로나19로 등교가 중지된 상황에서도 “학교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동의서를 내고 새벽 3시까지 합숙훈련을 해야 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이군의 아버지는 “지난해 전국기능대회 출전을 앞두고 선임 학부모로부터 심사위원 포섭용으로 300만원을 입금하라는 요구를 받아 입금한 적이 있다”, “준서가 동메달을 수상해 상금으로 300만원을 받았는데, ‘학교 관례’라는 이유로 상금 중 200만원을 기능어머니회에 송금했다”고도 주장했다.
유족과 시민단체들은 직업계고 기능반을 폐지하고, 메달 경쟁을 조장하는 기능경기대회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이군 죽음의 진상을 교육부가 조사하라고도 촉구했다. 교육부는 조만간 고용노동부와 함께 학생들의 학습권과 건강권을 보호할 수 있도록 기능대회와 기능반 구성·운영 개선 방안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이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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