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경주 S공고 고 이준서 학생 사망사건 진상규명과 직업계고등학교 기능반 폐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기능경기대회 출전을 앞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직업계고 기능반 학생의 죽음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직업계고등학교 ‘기능반’ 학생이 기능경기대회 출전을 위해 합숙훈련을 하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과 관련해, 정부가 기능경기대회를 일반부와 학생부로 분리해 운영하고 학교 내 기능반은 동아리로 운영하게 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떨어지는 재탕 대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24일 오전 열린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기능경기대회 운영 개선 방안’을 논의한 뒤 발표했다. 국내에서 1966년 처음 열린 기능경기대회는 오랫동안 국가 차원에서 숙련기술인을 양성하는 구실을 해왔다. 그러나 학생들을 강도 높은 훈련에 내모는 등 지나친 ‘메달 경쟁’으로 부조리와 폐단이 많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올해 4월에는 경북 지역에서 3학년생 이준서(17)군이 지방기능경기대회를 준비하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여기에 더해 산업현장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취업률도 떨어지는 등 기능대회 자체의 구조적인 한계도 지적됐다.
이날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는 학생들의 학습권과 건강권은 보호하고, 기능경기대회의 과도한 경쟁구조를 완화하는 한편 운영방식 등은 개선하겠다는 취지의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중장기적으로 기능경기대회에서 학생부와 일반부를 분리해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기능경기대회에는 대부분 직업계고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학생 중심의 대회 운영이 과잉 경쟁을 부르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대회 참가에서도 불리하다는 판단이다. 기능경기대회에서 드론, 3D프린팅 등 신산업·디지털 분야의 직종들을 신설하고 사양 직종은 폐지해나가겠다는 계획도 내놨다.
현재는 지방대회 1~3위만 전국대회에 나가고 있는데 내년부터 지방대회 우수상 입상자도 전국대회에 출전토록 하고, 대회를 여는 시기도 방학 중인 2월말(지방)과 8월말(전국)로 옮기겠다고 밝혔다. 중장기적으로는 지방대회와 전국대회를 통합하고, 산업별·업종별 대회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시·도별 종합순위 발표를 없애고, 비슷한 점수의 선수들에게 공동으로 메달을 수여하겠다는 방안도 냈다.
직업계고에서 특별반 형식으로 운영 중인 기능반에 대해서는, ‘정규 전공심화 동아리’로 구성해 운영하도록 한다는 대책을 냈다. 동아리 운영 계획에 따라 창의적체험활동 시간과 방과 후에 운영되어야 하며, 학생들의 자율적인 가입과 탈퇴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밤 10시 이후 야간, 휴일 교육, 합숙 교육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폐쇄적인 기능반 활동에만 갇혀, 학습권과 건강권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한 대책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대책에 대해 교육 현장에서는 “본질은 그대로 두고 잔가지만 손봤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능경기대회에 학생들이 출전하고 경쟁하고 있는 틀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는 현실을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능경기대회에서 학생부-일반부를 분리하기로 한 대책이 대표적이다. 현재 기능대회 출전 선수의 95%가량이 직업계고 학생들인데, 학생부-일반부를 분리해봤자 학생들 사이의 과잉 경쟁을 줄이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직업계고 기능반 문제도 마찬가지다. 현재 기능반도 이미 ‘교육과정 내 동아리’인데, 이를 ‘전공심화 동아리’로 규정한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비판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직업교육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어, “기존 지침을 재탕한 발표를 철회하고 기능경기대회 운영에 대한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기능경기대회 입상 성적을 실적으로 삼고자 하는 학교 현장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엔 부족한 대책이라는 지적이다. 김경엽 전교조 직업교육위원장은 “정부가 체육 분야에서 학생선수의 인권 보장을 위한 대책들을 내놓은 바 있는데, 직업교육 분야에서도 학생들의 학습권·건강권을 침해하는 방식의 기능경기대회 출전은 원천 금지시키는 등 비슷한 수준의 대책이 나와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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