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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이범 “‘포용적 고교학점제’ 필요…대입 ‘소득별 쿼터제’ 도입해야”

등록 2020-06-26 18:02수정 2020-06-26 18:46

26일 한국교육개발원 주최한 교육포럼 발제
“학교 단위의 자율이 ‘교육 다양화’ 의미하지 않아
과목 선택권 획기적으로 넓히는 고교학점제 대안
내신 절대평가에는 격차 줄일 대입제도 필요”
지난 2018년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범 교육평론가의 모습. 그는 최근 포럼에서 ‘포용적 고교학점제’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추진해야 할 교육정책으로 제시하고, 대입제도에서 ‘소득별 쿼터제’ 도입을 주장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2018년 인터뷰를 하고 있는 이범 교육평론가의 모습. 그는 최근 포럼에서 ‘포용적 고교학점제’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추진해야 할 교육정책으로 제시하고, 대입제도에서 ‘소득별 쿼터제’ 도입을 주장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경쟁 교육의 병폐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여겨지는 고교학점제와 그 전제조건인 내신 절대평가를 실시하려면, 대입에서 소득 분위별로 합격자를 배분하는 방식의 ‘소득별 쿼터제’를 함께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상대평가는 학생들을 균등하게 선발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는데, 이런 효과가 사라지는 데 따라 발생할 교육 격차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26일 열린 한국교육개발원과 더불어민주당 교육특별위원회, 미래교육희망, 유기홍 의원실이 공동으로 연 ‘제150차 한국교육개발원 교육정책포럼 겸 교육특별위원회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범 교육평론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고교 체계의 방향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먼저 이범 평론가는 ‘고교 평준화’란 말에 두 가지 서로 다른 개념이 섞여 있다고 지적했다. 평준화가 ‘비선발적 배정방식’, 곧 학교가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 방식을 의미하기도 하고, ‘획일적 교육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 여론조사 등을 보면 ‘고교 평준화’와 ‘고교 다양화’를 동시에 지지하는 여론이 높게 나타나는데, 이는 “비선발 고교배정은 지지하지만, 획일적 교육과정에는 반대하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애초 외고·국제고·자사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려던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기 재지정 심사를 통한 ‘단계적 전환’으로 입장을 선회했던 것을 두고, 이범 평론가는 “평준화를 획일화로만 이해했던 것”이라고 풀이했다. 쉽게 말해, 학생 개인 차원에서 교육 다양성을 구현할 방안을 모색하기보단 학교라는 기관에 자율성을 부여하면 교육 다양성이 확보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치며, 정부는 다시 입장을 바꿔 2025학년도부터 외고·국제고·자사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기로 한 상태다. 그렇지만 이범 평론가는 ‘교실 붕괴’ 등 일반고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학문적(academic)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하는 ‘인문계’ 고등학교가 오늘날 ‘일반고’가 되어버린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체 고등학생 가운데 직업계 교육을 이수하는 학생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6%지만, 한국은 19%에 불과하다. 그는 “대학을 무분별하게 늘리고, 고등학교에서 유급과 낙제를 없애고, 인문계 정원 비율을 대폭 늘리는” 등 교육 수요자들의 욕망에 편승했던 “포퓰리즘 교육정책”이 이런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여름 서울 강남구 한 고등학교에서 열린 대입 관련 설명회에서 학부모와 수험생 등 참석자들이 입시 정보를 듣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해 여름 서울 강남구 한 고등학교에서 열린 대입 관련 설명회에서 학부모와 수험생 등 참석자들이 입시 정보를 듣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 때문에 ‘일반고 살리기’가 이뤄지려면, 무엇보다도 학생들에게 더 다양한 교육과정을 보장해주는 ‘포용적 고교학점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범 평론가의 주장이다. 수학을 공부하고 싶지 않은 학생에겐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고, 인문계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과목도 배울 수 있도록, 선택의 폭을 크게 열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고교학점제 시행 원년으로 예정하고 있는 2025년은 외고·국제고·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해 첫 입학생이 입학하는 시기, 곧 ‘학교별 다양화’에서 벗어나 ‘학생별 다양화’로 진입하는 패러다임 교체에 해당한다”고 짚었다.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려면 고교 내신에서 절대평가 도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기존의 내신 상대평가에는 학생들을 균등하게 선발하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는 점이다. 외고·국제고·자사고, 강남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명문’ 학교 등 학력 수준이 높은 집단에 속한 학생들에게 내신 상대평가는 불리한 대목이었다. 그런데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이런 불리함이 사라지므로 서울·강남·고소득층 등이 대입 등에서 더욱 유리해질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대해 이범 평론가는 대입제도에서 ‘소득별 쿼터제’ 도입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이미 ‘농어촌 특별전형’, ‘기회균형 전형’, ‘지역인재 전형’ 등이 있긴 하지만, 이보다 더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소득 분위별로 합격자를 일정 비율씩 우선 배분하여 선발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예컨대 100명을 선발한다면, 소득 분위와 관계없이 50명을 뽑고 소득 1·2분위, 3·4분위, 5·6분위, 7·8분위, 9·10분위에서 각각 10명씩을 선발한다는 것이다.

종합적인 차원에서, 이범 평론가는 “극심한 대입 경쟁 아래에서는 교육정책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는 ‘에듀폴리틱스’가 작동한다”고 지적했다. 일자리 양극화와 대학 서열화에 따라 과열된 대입 경쟁을 근본적으로 상당 수준 줄이는 것만이 교육을 선진화하기 위한 선결 과제라는 것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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