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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시골 어린이들의 상상력, 국제영화제 대상 휩쓸다

등록 2020-07-27 18:20수정 2020-07-28 09:17

[함께하는 교육] 적암초 ‘슬기로운 초등생활’ 동아리

교사와 어린이들 함께 작업
출품 영화 2편 모두 대상 받아
“참신하고 짜임새 있다” 평가

전교생 45명의 작은 시골학교
학교생활 길잡이 100여편 제작
“내년에도 또 대상 받고 싶어요”

경기 파주 적암초 어린이들이 지난해 만든 단편영화 <좀비 친구>가 제8회 서울구로국제영화제에서 키즈무비 부문 대상을 받았다. 사진은 아이들이 영화를 촬영하는 장면. 적암초 제공
경기 파주 적암초 어린이들이 지난해 만든 단편영화 <좀비 친구>가 제8회 서울구로국제영화제에서 키즈무비 부문 대상을 받았다. 사진은 아이들이 영화를 촬영하는 장면. 적암초 제공

다른 친구들은 내일이 어린이날이라 캠핑을 간다, 놀이공원을 간다 자랑인데, 인싸는 걱정이 태산이다. 이번에 본 수학시험에서 점수가 60점밖에 안 나왔기 때문이다. 작년 어린이날에도 엄마가 회사에 출근하는 바람에 어린이날을 함께 보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수학시험 탓에 말조차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결국 엄마는 인싸의 수학 점수가 60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린이날 집에서 수학 공부나 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인싸는 엄마가 내가 된다면 날 이해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날 밤 하늘에서 친 번개로 인해 인싸와 엄마는 몸이 바뀌게 되고, 엄마는 학교로, 인싸는 회사로 가게 되면서 작은 사건들이 벌어진다.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적암초등학교 동아리 ‘슬기로운 초등생활’ 어린이들이 지난해 어린이날 직전 만든 단편영화 <엄마가 나? 내가 엄마?>는 엄마와 초등학생 아이 사이의 껄끄러운 관계를 주제로 했다. 영화의 구성 방법으로 국내외에서 흔하게 쓰이는 몸이 바뀐다는 설정을 이용했다.

박상철 지도교사는 “엄마가 내 마음을 잘 몰라줄 때, 내가 엄마의 마음을 잘 모를 때 우리는 서로 오해하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해서 가족 관계가 나빠질 때가 있다. 엄마와 내가 바뀌어 서로의 삶을 살아보면 서로 이해할 기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가족 간의 사랑도 깊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영화로 만들었다”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이 영화는 이달 초 진행된 제8회 서울구로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중학교 이하 학생들이 직접 만든 영화를 대상으로 하는 키즈무비 부문 대상을 받았다. 동아리 어린이들은 이 영화와 함께 <좀비 친구>란 영화도 출품했는데 역시 대상을 받았다. 전체 출품 작품이 49편인데 12편이 본선에 올라갔고, 그중 5편이 대상, 7편이 재능상을 받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탓에 어린이 63명이 페이스북을 통해 영화를 보면서 온라인 심사를 벌였는데, 공감대가 높았던지 두 작품이 모두 대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좀비 친구>는 학교폭력을 당하는 친구를 보면서도 도와주면 스스로 피해가 올까 봐 그저 모르는 척하는 방관자로 남게 되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았다. 학교폭력을 모르는 척하는 행태가 좀비에 감염돼 확산하는 것과 같은 현상에 비유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너무 무섭지 않고 쉽게 볼 수 있도록 코믹 공포물로 제작했다. 원래는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고 나서는 꼭 물을 내리자는 뜻으로 박 교사가 아이디어를 냈는데,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학교폭력과 좀비를 추가하자는 의견을 내 줄거리를 바꾸었다고 한다.

경기 파주 적암초 어린이들이 지난해 단편영화 &lt;엄마가 나? 내가 엄마?&gt;를 촬영하고 있다. 적암초 제공
경기 파주 적암초 어린이들이 지난해 단편영화 <엄마가 나? 내가 엄마?>를 촬영하고 있다. 적암초 제공

서울구로국제어린이영화제 관계자는 “<엄마…>는 몸이 바뀌는 것을 표현하는 컴퓨터그래픽(CG)과 촬영 기술이 눈에 띄었고, 화면 전환과 음악 등이 몰입감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고, <좀비 친구>는 학교폭력에 대한 메시지를 좀비라는 소재로 엮어낸 것이 참신하고, 인물들 간의 호흡이나 스토리가 탄탄해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밝혔다.

박 교사는 “여러 다양한 학생 영화 중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돼 너무 기뻤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 아이들과 영상과 영화를 제작한 보람이 있었다”며 “어린이영화제가 국내에 별로 없는데, 영화제가 더 커져 많은 친구가 영화에 대한 꿈을 이룰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슬기로운 초등생활’ 유튜브에는 100여편의 작품이 올라 있다. 주로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올바로 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박 교사는 아이들이 유튜브를 많이 보는데 선정적·폭력적인 내용이 많아서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보는 것을 막을 수도 없어, 아이들에게 도움될 만한 내용을 만들자고 해서 시작했다. 쉬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 온라인 수업을 듣는 방법 등 어린이들이 학교생활을 알차게 하려는 교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 동영상을 만드는 과정은 아이들의 의견으로 채워진다. 아이들이 볼 것이므로. 배역이나 촬영 등도 아이들의 희망 사항을 최대한 반영한다. 주제가 정해지고 전반적인 틀이 짜이면 대본은 박 교사가 쓴다. 2018년 처음으로 동영상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작년에 5학년을 맡았고 올해 함께 6학년으로 올라오면서 2년째 공동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유튜브 구독자가 4000여명인데 수익이 조금 생겨 아이들 이름으로 유니세프에 기부했다. 아이들한테 나눔의 의미를 심어주자는 의도였다.

학교가 작아 전체 학생이 45명, 박 교사가 맡은 6학년이 13명이라 전원이 동아리에 참가하고 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동영상을 만들다 보니 시간이 부족하다. 한 아이라도 결석을 하게 되면 촬영 스케줄이 지연되고, 입은 옷 그대로 촬영을 하다 보니 중간에 옷이 바뀌는 등 ‘옥에 티’가 나오기가 일쑤다. 하지만 아이들이 2년째 작업을 같이하다 보니 서로 호흡도 잘 맞고 동영상 촬영 편집 등 기술적인 부분에도 능숙해졌다.

<엄마가 나? 내가 엄마?>와 <좀비 친구>에서 주인공을 연기한 신유찬 어린이는 “영화를 만드는 게 적성에 맞는지 아주 재미있다”며 “앞으로 영화에 대해서 좀 더 배우고 익혀 영화 쪽으로 나가는 것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다른 친구들도 “유찬이가 재능이 있고 잘하는 것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요즘에는 <피구왕>이란 작품을 만들고 있는데 촬영이 거의 끝나가는 상태다. 다음 작품도 구상 중인데 <게임 플레이>라는 가제로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박 교사와 어린이들은 내년에도 영화제에 나가 대상을 받을 꿈에 부풀어 있다. 박 교사는 아이들과 영화를 만들면서 많은 것을 배운다. “아이들과 힘을 합쳐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아이들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아이들이 서로 협력해 작업을 하면서 나날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의 보람이다.”

김학준 기자 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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