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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육

전통 도자예술 계승 위해 오늘도 물레를 돌린다

등록 2020-08-17 18:08수정 2020-11-30 17:41

도예과로만 이뤄진 특성화고
대학보다 나은 시설 갖추고
도자기 빚는 데 혼신 노력

국내에선 명장 기능 익히고
국외에선 새로운 흐름 배워
불확실한 미래 넘을 준비
도자기 특성화 한국도예고

도예과 단일 과로 구성된 한국도예고 학생들이 물레를 이용해 도자기를 빚고 있다. 한국도예고 제공
도예과 단일 과로 구성된 한국도예고 학생들이 물레를 이용해 도자기를 빚고 있다. 한국도예고 제공
“맘에 드는 작품이 나올 때까지 물레를 돌리고 또 돌려요.” 푹푹 찌는 한여름 날씨에 땀이 절로 흐르고, 코로나로 방학까지 늦춰져 짜증이 나지만, ‘고려청자’를 다시 빚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젊은 도공들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물레 옆에는 이들의 눈에 거슬리는 빚다가 중단한 찌그러진 작품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도자기로 거듭나고 있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한국도예고 실습장의 수업 풍경이다. 전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도예과 단일 과로 이뤄진 특성화고는 거의 유일무이하다. 한 학년에 세 학급씩 모두 아홉 학급, 전국에서 온 200여명의 학생들은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해 혼을 쏟아붓고 있다. 2002년 공립고로 설립돼 성년에 접어든 도예고는 이제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 도약을 시작했다.

한국도예고에서 전통가마 불 지피기 행사를 하는 모습. 한국도예고 제공
한국도예고에서 전통가마 불 지피기 행사를 하는 모습. 한국도예고 제공
■ 최고 수준의 시설에서 실험·연구하면서 성장

도예고의 한 실습실을 둘러보다 깜짝 놀랐다. 학생들이 만든 자기를 굽는 가스·전기 가마가 8개나 있다. 옆에는 학생들이 가마 만드는 법을 배우면서 만든 소형 가마도 나란히 놓여 있다. 작품이 완성되면 오래 기다리지 않고 바로 구워서 성공 여부를 알 수 있다. 야외에는 전통 장작 불가마가 3개 더 있다. 경북 문경에서 조선 사발을 재현한 천한봉 명장이 개교 때 직접 진흙을 쌓아 만든 전통 망댕이가마다. 전통 가마는 불이 도자기에 직접 닿기 때문에 자연의 맛이 있고 작품의 변화가 무쌍해 장인들이 특히 좋아한다. 옆방 산업도자실에서는 여학생 대여섯명이 취업과 창업을 위한 작업에 여념이 없다. 서로 사장이라고 부르는 등 이미 창업이나 취업을 한 양 깔깔대며 웃기도 한다. 도자기 회사에서처럼 물레로는 만들 수 없는 양념통 등을 틀에 슬러지 같은 점토를 부어 만들거나, 그릇을 찍어내거나 물레에서 손작업하듯이 기계화를 통해 컵이나 접시, 그릇을 만드는 과정을 실습하는 것이다. 3학년 최정임 학생은 “3년 동안 공장에서 하는 과정을 미리 배워서 이제는 숙달돼 나보다 늦게 이 과정에 들어온 친구들에게 가르쳐줄 정도가 됐다”며 “좀더 배우고 경험을 쌓아서 취업을 하거나 창업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포부를 얘기했다.

재료실험실에서는 점토, 유약 실험이 끊이질 않는다. 이 두가지는 도자기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재료다. 다양한 성분의 점토를 가져와 구성 비율을 일일이 바꿔가면서 배합해 리본만한 크기의 얇은 판을 만든다. 시험편을 가마에 구워서 파괴시험을 거쳐 최상의 배합 비율을 찾아낸다. 유약은 도자기의 색깔, 즉 예술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고유한 색깔을 지닌 청자와 백자가 이런 노력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이 과정은 도공이 함부로 내놓지 않는 비밀 중의 비밀에 속하는 부문이다. 이것도 여러가지 재료를 섞어서 실험을 거쳐 최적의 상태를 찾아내야 한다. 이 두 과정은 동시에 진행된다. 자기를 빚어 유약을 바르고 구운 뒤 상품화 여부가 결정된다. 하나라도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결함이 된다.

유광렬 도자기 명장이 한국도예고에서 기능 전수 수업을 하고 있다. 한국도예고 제공
유광렬 도자기 명장이 한국도예고에서 기능 전수 수업을 하고 있다. 한국도예고 제공
■ 마을교육, 새로운 패러다임에 도전

오후에 수업이 끝나도 미래 도예가들의 수련은 멈추지 않는다.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한 주문형 강좌, 대학 강사들이 와서 미술 드로잉 등의 교육을 하는 ‘꿈의 대학’, 창업을 위한 동아리 활동 등 수업시간에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는 과정이 있다. 교사들도 돌아가면서 기술적인 지원 등을 한다.

학생들은 방과 후에 지역의 도자기 명장들로부터 직접 장인의 기능을 물려받고 있다. 해를 거듭하면서 성과가 높아져 지난해에는 교육부로부터 우수학교 표창을 받았다. 명장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이들을 찾아가 일대일로 기능이나 창업 노하우를 익힌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학생들의 물레 능력이 크게 향상됐고 지난해엔 3학년 전원이 도자기공예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또 지방기능경기대회를 비롯해 각종 대학 또는 지역 축제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고 있다. 대회나 도자축제에 참가하는 것은 내가 만든 작품이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가늠하는 기회다.

학교 근처에 도자기 명장이나 장인들이 살면서 공방이나 가게를 운영하는 도자기예술마을, ‘예스파크’(藝’s park)가 있다. 학생들의 현장 체험을 늘리고 더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예스파크와 업무협약을 체결할 참이다. 학생들이 가면 현장 체험 작가들 중심으로 멘토·멘티를 맺어 기능과 창업기술을 가르쳐주고 취업도 알선해주게 된다. 교사들만으로는 학생들의 역량을 키우는 데 한계가 있어 지역과 협력해 마을교육을 활성화하려는 야심 찬 계획이다.

도자기 예술에도 이미 입체(3D) 프린터가 들어왔다. 아직은 물레를 돌려서 만든 작품과 차이가 나지만 요즘 대세인 인공지능(AI)이 더해지고 기술이 세밀해진다면 사람의 영역은 더 좁아질 수도 있다. 도예고 학생들은 방학을 이용해 코딩을 배우고 4차 산업혁명의 기술을 익히는 등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고 있다.

한국도예고 학생이 졸업작품으로 만든 주전자와 컵. 한국도예고 제공
한국도예고 학생이 졸업작품으로 만든 주전자와 컵. 한국도예고 제공
■ 대학으로, 세계로 활동무대 넓혀 조선에서 일본에 도자기 제조법을 전해준 아리타에 있는 아리타공고와 자매결연을 하고 10년 넘게 해마다 학생 작품 교류 전시를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일본 학생들이 5점을 보내왔고 도예고 학생들도 6점을 보냈다.

세계 도자의 메카인 중국 징더전과도 교류를 하고 있다. 학생들은 징더전대학과 그곳의 예술마을로 수학여행을 가거나 체험활동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한다. 도예고는 징더전대학과 교류협력을 증진하기 위해 양해각서(MOU)를 맺기로 약속을 했다. 이미 징더전대학으로 유학을 가 공부를 하는 선배도 2명이나 있다.

올해 졸업생 68명 중 5명이 취업을 하고 62명이 대학에 진학했다. 학교에서 배운 기능만으로는 취업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에 전문성과 경험 등을 키우기 위해 진학을 하고 있다. 한국전통문화대학의 경우 1학기 수시에 7명이 합격했는데, 실력을 인정받아 정원이 4명인데 3명이 더 합격했다. 이 대학엔 해마다 2명 이상씩 가고 있다. 2012년에 도예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나와 모교로 온 배송이 교사는 “대학에 가서야 도예고의 시설이 훌륭한 줄 알게 됐고 여기서 배운 게 얼마나 많고 깊고 소중한지 깨달았다”고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김학준 기자 kimh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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